▲ 김종 시인

'사람은 던져진 존재일 뿐이다.' 하이덱거의 말이다. 나는 오래 전부터 이 말이 풍겨주는 의미적 표폄에 대해 많이도 궁구했었다. 사람이 던져진 존재라!  그 누구든 어머니로부터 탯줄을 가르고 이 세상에 나온 뒤 자신의 환경과 생각 아래서 자신만의 세계를 찾아 가고 만들어 간다. 정말 사람은 자신만이 찾아 가고 만들어 가는 세상이 있다. 악인도 선인도 그러할 것이며 장수와 단명도 그러할 터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더욱 찾아 가고 만들어 가는 세계란 사람들이 보고 느끼고 체험하는 심정적 세계가 아닐까. 그 심정적 세계에서 수수께끼를 헤엄쳐 가듯 우리는 밀림처럼 하늘 가리게 우거진 오욕 칠정의 세계를 감득하고 꽃피운다.

욕망은 사람의 기질에서 나온다. 강하고 약한 것, 길고 짧은 것, 높고 낮은 것, 가늘고 굵은 것……. 정감은 사람의 느낌에 이어져 좋고 나쁜 것, 아름답고 추한 것, 밉고 고운 것 등등이 하나의 그물망에 담겨 있다. 그러나 욕망이든 정감이든 알고 체험한 것만큼 보고 나아갈 수 있다. 그래서 순전히 원시상태처럼 손질이 가지 않는 관념으로 부터 고도의 기교와 두뇌를 투입한 감각의 세계가 존재한다. 감각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얻어낸 획일적인 세계를 개별화된 세계로 만든다.

그래서 나의 작업에는 내심 내 스스로의 의욕과 자랑이 넘실거린다. 넋 나간 사람처럼 바보스럽기도 하고 절벽을 맞대면하는 청맹과니이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나 혼자 웃고 울며 득의만만하기도 하고. 제 잘난 맛에 취한 내 예술에의 노동은 심연 저 아스라이까지 지칠 줄 모르고 삽질해 들어간 참호파기였다. 시로 그림으로 글씨로 죽어 자빠지게 열애한 눈빛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미쳐서 두들긴 대장간의 담금질 같은 신명난 잔치마당의 젓가락 장단이었다.

하늘 열리던 날의 꽃송이처럼 눈부신 말들을 빚겠습니다.
산맥이 뻗어나가던 날의, 강물이 바다에 이르던 날의
그 쉴 새 없는 탐색의 눈빛으로 궁리궁리 접근하면서
생수처럼 샘솟아난 내 전설 같은 꿈틀꿈틀한 물길 하나 얻자고
이 많은 세월에 이 많은 실수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든 예술은 일면에서 노동이며 일면에서 작업이다. 허나 예술은 눈부시게 샘솟는 일을 목표하는 한편 자신을 불 켜는 부싯돌 같은 번쩍임이고 어깨 들썩이며 지피는 춤사위 같은 영광이다. 그래서 어린 아이처럼 다짐이나 자랑 단지를 쑥스러운 줄 모르고 읊어댄 세월이 여기까지 길어졌고 그러다 보니 나는 어둑서니 같은 농판으로 잘도 살았다. 산이 있다면 오르면 그만이다. 내 영혼을 점령한 활화산의 불길을 항아리 가득 넘치듯이 마시다가 다시 활화산 같은 불길로 타오르면 그만이다. 그런데도 정작 타오르지 못하고 주춤주춤 이날 평생을 너스레나 떨어가며 제 잘난 장단에 취해 지냈으니…….

나는 ‘이제는 사람이다’를 작품의 주제로 놓고 사람의 개별적인 미감을 어떻게 수렴할 것인가로 돌아와 '하늘 만지는 사람들'곁에 다가갔다. 우리가 바람처럼 형태는 비산되고 느낌만 간직된 세계를 형태와 느낌이 구체화된 세계로 찾아내고 만들어 가면서 미적으로 볼만한 풍속 하나를 창조해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흡사 유토피아에서 지상적 사물까지를 의미적 포폄위에 펼쳐가는 것이다. 속세의 먼지 가운데서 별무리처럼 무수히 반짝이는 감각들을 우리네 시각·촉각·후각·청각 안에 끌어들여 볼만하게 쌓아올린 미감의 성채에 어디서 듣고 왔는지 '하늘 만지는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있다.

그래, 나도 한 사람의 던져진 존재에서'하늘 만지는 사람들'과 식구가 되고 바다 같은 푸른 숨결로 퍼져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