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개인의 삶에 투영된 한국 현대사의 질곡”

지난해 10월 갑작스레 훌쩍 떠나버린 언론인 성유보의 회고록이 책으로 나왔다. 지난해 전반기에 한겨레신문에 ‘길을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들을 담은 책이다. 한국 언론 민주화 운동의 한 가운데 서 있던 저항의 아이콘, 성유보의 삶을 통해 한국 역사상 가장 뜨겁게 타올랐던 저항의 시대, 그의 삶과 한국현대사를 조명한다.

이 책은 자유언론선언 40돌을 맞은 2014년, 평생을 언론인으로 살아온 성유보가 지난 50년의 삶을 되짚어 본 것이다. 그의 기록은 현대사의 주요 역사적 사건들을 큰 줄기로 삼고, 개인의 삶은 잔가지로 삼아 우리 현대사를 오롯이 보여준다. 이 책은 단순한 개인의 ‘삶’이 아니라 이 시대를 함께 살아온 우리들의 이야기다. 바로 우리 역사와 언론의 살아 있는 이야기이다.

이 회고록은 집필자의 주관적 기록들이 주조를 이루는 통상적인 회고록과는 모양새가 좀 다르다. 회고록인 만큼 이야기를 끌어가는 주체는 당연히 ‘나’이지만, 그가 쓴 문장들은 ‘나’보다는 ‘그’ 또는 ‘우리’로 시작되는 경우가 더 많아 보인다. 이는 자신을 내세우지 않았던 삶의 자세와도 무관하지 않다. 그보다는 회고록에서 그가 무슨 얘기를 하고 싶었는지, 그 내용과 더 깊은 연관이 있을 것 같다.

책에는 2살 때 광복을 맞았고, 5살 때 대한민국 국민이 됐으며, 7살 때 한국전쟁을 겪었고, 고고 2년 때 4,19 혁명, 대학 1학년 때 5,16 쿠데타, 21살 때 굴욕적인 한일국교정상화 협상 반대시위로 처음 투옥, 그 10년 뒤 〈동아일보〉 언론자유수호 투쟁의 최전선에서 박정희 유신체제와 정면충돌한 이후 40여 년 언론자유와 민주화운동 일선에서 한 길을 걸었던 성유보의 일대기가 순서로 펼쳐져 있다.

이 일대기 구성에서, 그 중심은 필자 자신이 아니라 당대의 사건들과 그 사건 주역들 얘기로 옮겨간다. 이런 형태는 서울대 민족주의비교연구소(민비연) 가담에서부터 동아투위,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민주언론운동협의회, 〈말〉지 창간과 그 이후 마지막까지 멈추지 않았던 언론자유 및 민주화 운동 등 그 자신이 중심에 섰던 역사적 사건들 묘사에서도 대체로 관철된다. 

그렇다고 이 회고록이 객관적 사건들의 나열인건 물론 아니다. 그가 셀 수 없이 많은 사건들 속에서 골라내어 이 회고록의 씨줄과 날줄로 삼은 사건들과 관련자료 선별 자체가 주관적 개입의 결과다. 그래서 그의 삶의 중심무대였던 박정희 시대에 대한 평가와 비판, ‘박정희 신화’ 허구성 폭로도 그가 선택한 사건들과 자료를 통해서 보면 색다르다.

5,16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한 박정희가 미국이 강요한 굴욕적인 한일협정을 통해 집권기반을 마련하고 영구집권으로 가는 과정에서 저지른 민청학련, 인혁당 사건,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사건 날조와 전태일로 상징되는 노동자와 농민, 학생, 언론운동 탄압의 야만, 거짓과 위선, 이를 성유보의 선택적 시선으로 재구성할 경우 부녀 2대에 걸친 한국 현대사가 매우 달라 보일 수 있다.

최대 100만에 이른다는 ‘보도연맹’ 학살과 3,15부정선거 등의 끔찍한 사건들을 통해 재구성된 이승만 신화의 허구성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언론 민주화 운동의 한편에는 항상 그가 있었다. 언제나 중심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보다는 주변에서 제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는 것이 그의 모습이었다. 이런 그의 성정은 개인사가 아니라 동시대가 함께 겪은 우리들의 이야기를 정리 하고 싶었다는 이 책의 집필 의도에서도 드러난다.

잔인한 왜곡과 거짓이 만무한 세상, 정부의 품에 안긴 언론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그가 바라던 자유언론의 꿈은 아직도 미완으로 남았다. 그러나 그가 걸어온 길, 그의 존재는 우리에게 소중하다. 오늘날의 언론이 있기까지 그의 한숨과 피와 땀이 새기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가 걸어온 길속에서 우리는 한국 언론의 미래를 꿈꿀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