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 시인/화가

네바강 우측 강변에 3층짜리 미술 아카데미가 웅대한 모습으로 버티고 있다. 또한 예술광장을 지나면 푸쉬킨 동상을 만난다. 푸쉬킨은 러시아어에 문학적 품격을 높인 최고의 시인으로 꼽힌다.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픔의 날을 참고 견디면 행복의 날은 오리니……"을 창작한 푸쉬킨의 표현에는 인생을 성찰하는 온기가 배여 있다.

이 시인의 아내는 깐차로바, 황제까지도 반할 정도로 당대 최고의 미인이었다. 허나 그리 현명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런데 깐차로바를 연모하던 공작 단테스는 '꿩 대신 닭'으로 그녀의 여동생과 결혼을 했고 깐차로바와의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러니까 깐차로바를 얻기 위한 전략적 결혼이었던 셈이다.  이를 보다 못한 다혈질의 푸쉬킨이 동서 단테스와 합법적 결투를 제의하고 그 총격으로 죽었다. 이때가 푸쉬킨의 나이 38세였다. 푸쉬킨이여, '신은 심장에서 온다'더니 어이없게도 그 심장을 가진 인간에게 넘어졌구려. 아이러니하지만 '푸쉬킨'은 '대포'의 의미이다. 푸쉬킨은 아내 깐차로바와 결혼할 때 형언할 수 없이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다고 한다. 남편의 사망 이후 깐차로바는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 평생을 참회하며 살았다 한다. 모스크바에도 고리키 극장의 오른쪽 산책로에 푸쉬킨 동상이 있다. 아내와의 단란한 한때의 모습을 조각한 것이다.

빼째르부르그에는 216개의 박물관이 있다. 이중 일반적 박물관이 150여개이며 나머지는 황실이나 사원에 딸린 특별한 기능의 박물관이다. 또한 바가노바 발레스쿨은 최고의 무용명문교이다. 이 학교는 학생을 선발할 때 외조모의 혈통과 신체조건까지를 테스트한다는 것. 러시아인이 한국인과 차이난 점은 역사에 대한 지식과 판단력이라 한다. 러시아인들은 언제 어디서 누구와 마주쳐도 자국의 역사에 정통하다. 거기에다 자신의 정확한 판단력까지를 곁들일 수 있다 한다. 부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제 잘난 맛에 이 머나먼 러시아까지 날아왔건만 정작 일본과 중국에 휘둘린 우리네의 영혼과 정신은 속빈 강정이나 아닌지?

이 나라에서 지하철 표지는 Metro의 약자인 'M'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국민 평균수명은 남자 59세에 여자는 72세이다. 남자의 단명은 잦은 내외전이 가장 큰 원인이라 했다. 멀리 금색 철탑을 세운 피터폴 요새가 한눈에 들어 왔다.

빼째르부르그에는 365개의 다리가 놓여있다. 이중 14개가 네바강을 가로지르며 모두가 개폐식이어서 12시 55분부터 새벽 5시까지 거대한 가슴처럼 열리고 닫힌다. 옛날 부산의 영도다리의 낭만이 한 순간에 아른거린다.

저녁시간에 호텔 6층 홀에서 생맥주 파티가 있었다.

아침에 기상하고 새삼 긴 내의를 챙겨 입었다. 견딜 만 했지만 한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호텔 주변을 걷다가 개나리가 피고 있는 것을 목격하였다. 러시아는 지금 제국주의 유산으로 재미를 보고 있다. 대부분 2-300년은 됨직한 석조건물과 얼마간 흐린 날씨와 사람들의 굳은 표정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불현듯 해양성 바람을 느끼며 사회주의와 독재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독재'시절의 유산으로 밥 먹고 사는 나라가 지금 러시아가 아닐까?

여름궁전 분수공원 가는 길에 스탈린 동상을 지나쳤다. 일반 서민들의 아파트에 녹지가 계속되었다. 외곽쯤 된다 싶은데 주말 농장격인 ‘다노’가 옹기종기 군집성 짐승들처럼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한국 같으면 재건축에 들어갔어야 할 건물들이 버젓이 가슴을 펴고 있었다. 개를 데리고 산책 나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어린아이까지도 하루 2번 이상은 산책한다는 러시아. 여름은 30℃를 오르지만 겨울 또한 반대로 영하 30℃쯤 내린다고 했다. 그야말로 기온 차에서 천국과 지옥과의 차이쯤 된 달까. 중심가에는 없던 전봇대가 도시 변두리를 지키고 있었다.

문득 푸틴 대통령의 지도자론이 나왔다. 푸틴은 주도면밀하지만 문예에도 조예가 깊다한다. 공원 개념의 초원을 지나 1905년에 지었다는 피터폴 성당을 보았다. 러시아인들의 평일 미사장면을 보았고 성호 긋는 방법이 위아래 오른쪽 왼쪽이어서 신앙의 방식에서 우리와 반대되는 것을 알았다. 재래시장으로 옮겨서 또 다른 풍경과 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