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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를 읽고
김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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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회 나주시 독서왕 수상자
김현경씨. |
| 한비야씨는 '오지여행가', '국제NGO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의 직함말고도 네티즌이 만나고 싶은 사람
1위이자 여성특위가 뽑은 신지식인 5인중의 한 명이며 최근에는 평화를 만드는 100인등에 선정되었다. 2004년 'YMCA 젊은지도자상'을
수상하기도 한 그녀의 저력은 무엇일까?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이나 「한비야의 중국견문록」,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등에서 그녀의
행적을 쫓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에서는 오지 여행을 넘어서서 한비야씨의 또 다른 인생을 엿보게 된다. 더
이상 한비야씨는 '바람의 딸'이 아니었던 것이다.
제일 처음에는 한비야씨가 또 어디를 다녀 오셨나보군 하고 책을 집어 들었지만 책장을 넘기는 순간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표지에 실린 그녀의 사진에선 더 이상 '관념을 사는' 여행자의 무던함이 아닌 세상 그 어딘가에서 '현실을 살고 있는 자'의
생명력이 느껴졌다.
이 책은 한비야 씨가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으로서 해한 지난 5년 간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한 중년 여성이 꿈과
의지와 활약이 눈으로 그려볼 수 있을 만큼 생생하다. 여기에서 긴급구호 현장이란 사람들이 재난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는 곳을 말하며, 긴급구호는
생명을 구하는 것은 물론 그 생명이 최대한 빨리 일상에 복귀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조건을 만들어 주는 것을 말한다.
첫 파견근무지였던 아프가니스탄! 그곳에서 한비야씨는 굶주림으로 죽어 가는 아이들을 위해 영양 죽을 공급하고 식량을
배분하며 오지여행가의 습관을 버리고 긴급구호 요원으로서의 첫 발을 내딛는다.
독수리도 기는 법부터 배우지 않느냐며 자신의 실수를 질책하지 않고 베테랑과 비교하며 괴로워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만을 비교하자는 작가의 투지를 통해 그녀 특유의 자신감과 진중함을 느끼게 된다.
나보다 더 잘 나가는 친구들이 마냥 부럽고, 시샘이 나기도 했었는데 그런 내가 얼마나 옹졸하고 작은 사람이었는지...
한비야 씨의 말대로 나아감이란 내가 남보다 앞서 나가는 것이 아니고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보다 앞서 나가는데 있는 것인데
말이다.
한정된 구호물자 때문에 한 마을은 씨를 배분하고 한 마을은 주지 못했는데, 비록 비가 오지 않아서 파종한 씨앗은 싹을
틔우지 못했지만 씨를 나누어준 사람들은 씨를 심어놓았다는 사실만으로 수확기까지 한 명도 굶어죽지 않았지만 옆 마을은 아사자가 속출했다는 아프리카
말라위와 잠바위에서의 이야기에서 '희망'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달았다.
똑같이 비가 오지 않는 조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씨앗을 뿌렸다는 사실, 즉 희망이 사람들을 살려 놓은 것이다.
그리고, 내게는 보잘것없어 보이는 것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큰 희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어느 곳보다도 숨막히는 긴장감으로 가득한 이라크! 언제, 어디에서 소리 없이 무장 군에게 납치될지 모르는 긴박한
현장 속에서도 한비야 씨는 마을 사람들에게 식수대를 놔주는 것과 더불어 사랑을 나눠주고 돌아왔다. 더군다나 월드비전 한국 53년 역사상 처음으로
프로젝트 매니저가 되어 맡은 임무를 성공적으로 끝마친 그녀의 투지에 다시 한번 감동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새로운 일을
하기에는 너무 늦은 거 아니에요?" 이런 질문에 한비야 씨는 사람의 인생을 하루 24시간이라고 치면 그 절반인 마흔 살은 겨우 오전 12시,
정오에 해당하고, 자신의 나이 사십대 중반은 이제 점심을 먹은 후 커피 한잔 마시는 시간에 와 있는 것이라며 아직 충분히 많은 시간이 남아있어
문제되지 않는다고 자신한다.
이 얼마나 멋지고 적절한 비유인가! '스물 여덟, 스물 아홉, 서른...' 영원할 것만 같았던 이십대도 끝나고 서른의
문턱에 다다른 요즘, '나는 이제껏 무얼 하며 산 걸까' 하는 지난 세월에 대한 허망감과 여전히 불안한 미래 때문에 조급함으로 전전긍긍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동안 나는 전혀 성장하지 않았고, 여전히 망설이고 있었으며, 약간 절망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모든 나의 조급함, 불안감을 단번에 날려버리고 "그래, 이제 시작인 걸"하고 주먹 불끈 쥐고 외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나는 이제 막 기지개를 펴고 하루를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을 8시를 조금 넘은 시간에 있기 때문이다.
가슴 뛰는 삶을 살고 싶어졌다. 누가 시켜서 시작한 일이 아니라 내 스스로 선택한 길을 주저 없이 달려가고
싶다. 한때는 아무리 노력해도 결과가 없는 내 삶이 너무 막연하고 추상적인 것 같아서 포기할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한비야 씨가 99도와
100도의 차이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물이 끓는데 필요한 1도가 부족한 99도에서 내가 성급히 포기하고 돌아서는 것은 아닐지 자문해보게 되었다.
99도에서 100도로 올리는 에너지가 부족한 것은 아닐까. 1%의 악착이 결여되어 있음을 느낀다. 건전지가 다 닳아빠진
장난감 같던 나에게 이 책은 백만 스물 하나, 백만 그물 둘, 백만 스물 셋... 꿈을 향한 에너지와 꿈꾸는 자의 즐거움을 선물해주었다. 더불어
내가 1도의 마지막 에너지를 쥐어 짜내서 종국에는 내 열정을 맘껏 발산할 수 있는 삶이기를 기원하게 되었다.
또한 이 책은 나에게 '나' 아닌 '타인'을 향한 따뜻한 사랑이 이 세상을 얼마나 행복하고 충만하게 만드는지에 대해
가르쳐주었다. 그녀의 책 한 권에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지금도 지구 반대편 어디에선가 일어나고 있을 전쟁과
그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솔직히 슬픔보다는 죄스러움이 더 크게 느껴졌다.
내 밥 한 끼니가 지구 반대편 누군가에게는 일주일의 생활비가 된다는 것도 까맣게 잊고 나 혼자만의 고민에 빠져 있을
때, 그녀는 국경과 국경, 인간과 인간 사이의 경계를 뛰어 넘어 치열하게 '사랑'과 '희망' 이라는 씨앗을 뿌리고 있었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생명의 위협을 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가슴 아픈 일이지만 지진이나 홍수 같은
천재(天災)보다 전쟁 같은 인재(人災)가 많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김혜자씨의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가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는 나라는 상황에 대해 서술되었다면 한비야씨의 이 책은 같은
나라에서 펼친 구호활동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한 사람은 홍보대사로 한 사람은 긴급구호팀장으로 역할을 다 한 셈이다.
정해진 인생의 행로를 따르지 않고 자신의 마음이 동하고 열정이 이끄는 바에 따라 삶을 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국제 홍보학을 전공하고, 세계오지를 여행하고, 이제는 긴급구호팀장으로서의 길을 가고 있는 한비야씨의 인생행로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고 응원을 아끼지 않게 되는 것 같다.
나 역시 한비야씨 만큼은 아니더라도 내 나름대로의 방식을 통해 이웃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와 용기가 생겼다.
우리나라에도 어려운 사람들이 많은데 굳이 해외로까지 눈 돌리 여유가 어디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국제원조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고 도움에 국적을 나눌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두 '우리'라는 범주 안에 묶여 있다는 것을 말이다. 가진 것 많은 부자보다 가진 것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더욱
자신의 것을 쪼개어 주위 사람들과 나눠먹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아직은 내가 젊어서, 그리고 가정이 없어서 좀 더 이웃을 돌아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기를 바란다. 40이 되고, 50이
되어서도, 그리고 내가 돌보아야 할 가정이 있더라도 '우리'의 범위를 계속 확장시키는 내가 되고 싶다.
인생이란 산맥을 따라 걷는 것이라고 한비야씨는 말한다. 국제 홍보라는 산, 세계 일주라는 산, 중국어라는 산을 넘어
지금은 긴급구호라는 산을 오르고 있다는 한비야씨! 어느 순간 긴급구호산을 정복하고 다른 산에 오르고 있을 한비야씨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를 외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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