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또는 주중이라도 풍광 좋고 운치 있는 찻집이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거리에 관계없이 비싼 기름 태워 가며 다닌 지 수 세월.

봄을 찾기 위해 온 세상을 헤매다 지쳐 돌아와 앞마당에 피어있는 활짝 핀 매화꽃을 보고 봄을 찾았다는 어느 시인의 독백처럼, 시도 때도 없이 소문을 좇아 찾아다닌 찻집 순례는 그 곳이 ‘저기’(there)가 아닌 바로 ‘여기’(here)에 있음을 깨닫기 위한 예비 코스였는지 모른다. 혹은 눈앞의 것을 보지 못하는 원시(遠視)를 치료하는 과정이었는지도.

얼마 전 누군가로부터 영산포에 멋진 찻집이 있다는 말을 어렴풋이 들었다. 내가 알고 있는 영산포엔 그럴만한 풍광과 운치를 갖춘 장소가 없는데 한 번 가보란다. 의아해 하는 내 표정을 나무라는 듯이 ‘가보면 안다’는 것이다. 영산포 본토박이로 구석구석을 누구보다 훤히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입장에서 그것도 시내와 인접한 영산강변에 자리 잡고 있다니 믿기지 않았다.

그래서 날로 퇴락해가는 영산포의 열등감을 만회하려는 맹목적인 ‘영산포 사랑’이 확대포장 된 억지쯤으로 여겼다.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어느 토요일, 후배와 점심을 먹던 중 까맣게 잊고 있었던 영산강변에 있다는 찻집이 갑자기 떠올라 후배에게 물었더니 금시초문이란다.

그도 영산포 토박이인데 모른다고 했다.

▲ 100여년전에 지어진 동양척식회사 문서고(왼쪽)

영산나루는 100년 전에 지어진 건물로 한국근현대사의 문화유산

점심을 마치고 ‘가보면 안다’는 뉘앙스가 이상스럽게 귓전에 맴돌아 기대 반 호기심 반으로 밑져야 본전(거리가 지척咫尺이라)이라는 생각에 찾았는데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영산포에도 이렇게 아름답게 잘 가꿔지고 꾸며진 그러면서도 운치가 있는 멋진 곳이 있었다는 문화적 충격이었다. 그리고 명색이 3대째 영산포에 살아온 사람으로서, 지역언론을 한다는 사람으로서 여기를 몰랐다는 것에 대한 ‘무능’에 대한 충격까지 한마디로 멘붕이었다.

▲ 100여년전에 지어진 동양척식회사 문서고(왼쪽)

더불어 봄을 찾기 위해 먼 길을 돌고 돈 원시(遠視)에 대한 자책감까지….

「영산나루 찻집」은 그렇게 거기에 자리 잡고 있었다.

홍어의 거리에서 등대 쪽으로 300여m를 가다보면 왼쪽에 ‘영산나루 찻집’이라는 자그마한 간판과 함께 일층 건물이 보인다. 오른쪽으로는 4대강 사업으로 강폭이 훨씬 넓어져 수량이 풍부해진 영산강이 한눈에 들어와 뭔가 모를 풍요로움이 다가온다. 환경문제가 끊임없이 대두되고 있지만 일단 시각적으로는 좋다. 하지만 첫눈에 들어온 찻집 건물은 실망이다. 그렇다고 그냥 되돌아가기도 뭐해 ‘그러면 그렇지 영산포에 무슨 멋들어진 공간이 있겠어’라는 독백과 함께 들어선 찻집 안 분위기와 풍광은 순간 나를 압도했다. 고급스로우면서도 화려하지 않고 그러면서도 절제된 아름다움이 묻어나는 온돌로 꾸며진 다실(茶室) 3개와, 각종 차 재료와 고급 찻잔이 주방과 함께 교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홀 분위기 등이 한껏 찻집의 자태를 뽐내고 있다.

▲ 찻집에서 바라본 200년된 팽나무

정원에는 200년 된 팽나무가 이곳의 역사를 보듬어 주고 있다

여기에다 눈앞에 펼쳐진 천 여 평에 달하는 녹지공간은, ‘영산포에 이런 곳이 있었어!’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영산포 이창택지지구가 개발되기 전에는 정면으로 영암 월출산이 한눈에 들어 왔다는 성류정 정자, 마당 한 가운데 우뚝 버티고 서 있는 수령이 200 된 팽나무, 지금도 고색창연한 붉은 벽돌이 아름다운 빛을 발하는 ‘동양척식회사 문서고’ 건물, 그리고 잘 단장된 잔디와 분수 등이 한 폭의 수채화다.

영산동 306-3번지(찻집 건물)와 이창동 559번지(녹지공간) 위에 자리 잡은 ‘영산나루 찻집’은 지난 6월 9일 성류정 현판식을 시작으로 문을 열었다고 한다. 이곳은 광주 백운동에서 반이비인후과를 운영하고 있는 영산포 출신 반재철씨의 소유지로 부인 이희정씨가 대표로서 이곳을 운영하고 있다. 

다양한 문화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명소

대표 이희정 여사는 영산나루 찻집을 열게 된 배경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1978년도에 시집을 왔는데 영산포는 그때나 지금이나 공간적으로나 시각적으로나 변한 게 없다. 아니 더 못해졌다”라며 오죽하면 영산포 신랑 친구들을 보면 “당신들 뭐하고 있어요? 영산포가 이 모양인데”라며 푸념을 늘어놓은 적이 있다며 이곳을 영산포 사람들 더 나아가 나주인들의 문화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문을 열었다고 했다.

그의 영산포 사랑이, 나주 사랑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이 대표는 이곳을 앞으로 찻집, 펜션, 연회장, 하우스 웨딩, 포럼, 학술 세미나, 각종 문화예술행사 등을 치르는 문화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라며 이를 위해 동양척식회사 문서고를 원형을 변형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펜션으로 개조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미 공연이나 각종 문화예술행사를 할 수 있는 기반시설은 어느 정도 갖췄다고 했다.

연회장, 하우스웨딩, 포럼, 각종 세미나, 문화예술행사 시설 갖춰

이 대표는 앞으로도 필요한 시설을 계속 갖춰 나주의 문화공간으로 손색이 없는 장소를 만들어 가겠다며 많은 분들이 부담 없이 찾는 공간이 됐으면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 찻집내부, 이희정대표가 직접 차를 만들고 있는 모습

이 대표는 영산나루 찻집이라는 공간을 통해 예를 들어 ‘차 동아리’ 같은 것을 만들어 일주일에 한번 정도 여러 나라의 차도 소개하고 차에 얽힌 얘기 차 예절 등을 서로 나누는 등 여러 방면과 각도에서 많은 이들이 문화적 갈증을 해소하는 방안 등을 고민하고 있다고도 했다. 비즈니스가 아닌 문화 공간 제공자로서의 품격이 느껴진다.

영산나루 찻집은 매일 11시에 문을 열고 저녁 8시에 문을 닫는다. 지금 이곳은 아직까지 나주에서 별로 알려지지 않은 까닭도 있겠지만 이희정 대표가 주로 광주에서 문화 활동과 봉사활동을 했던 관계로 나주 사람들보다는 광주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다.  

이희정 대표는 이미 이곳으로 주거지를 옮긴지 오래며 앞으로 직원이 확보되면 죽이나 전 등 가벼운 음식도 판매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영산포를 비롯한 나주인들이 부담 없이 영산나루를 이용하기를 바란다며 앞으로 작은 음악회 등 여러 문화행사를 개최해 열어 나주인들의 문화갈증을 해소하는데 일조를 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사진 정재우기자 jjw8315@nat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