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갑

내가 정치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은 20대 초반이었다. 당시의 기관장들은 정치인 출신이 많이 임명되었던 시절이었고, 나의 부친 역시 정치적으로 모조합장을 하였던 관계로 나는 자연스럽게 정치에 관심을 가졌고 남달리 친밀감을 느끼지 않았나 생각된다.

언감생심 국회의원을 해 멋진 정치를 한번 해보겠다는 나만의 원대한 꿈을 그 시절부터 나는 꾸기 시작 했다.

30대 후반 1987년, 지역 국회의원의 보좌관 제의를 받고 정치에 몸을 담으면서, 이제는 나의 업보가 돼버린 나의 정치 역경이 시작되었다.

▲ 김용갑

꿈과 희망을 갖고 정치에 뛰어들었지만 현실의 벽은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설파했던 권모술수의 연속 이었다.

지방자치가 실시된 첫해, 당시 지역 국회의원이었던 이모 의원이 나주 제2선거구 도의원 출마를 제의해 공천을 신청했으나 나의 부족한 대처였는지 아니면 그 분의 전략이었는지 막판에 공천에 탈락했다. 아마도 그분의 뜻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때 난 무소속 출마를 위해 고군분투 하였으나, 너무나 완고한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혀 ‘벽보’를 붙일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무소속으로 출마를 했어야 했는데 후회스럽다. 어쨌든 그때부터 나의 정치인생은 꼬이기 시작했다.

2대 지방선거에서도 정치 신의와 도의가 실종되는 바람에 낙천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당시  나주시장 공천 신청자가 시장공천에 낙천되면 도의원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번복하고 당시 김모 국회의원과 야합해 다시 제2선거구에 도의원공천을 신청하는 바람에 경선에서 또 다시 낙천, 치사한 나주 정치판의 희생자가 돼버렸다.

이제는 안 되겠다 곧바로 무소속 출마를 위해 착실히 준비를 하고 출발 하였으나 고집스런 아버지를 비롯해 변함없는 가족들의 극심한 반대로 출마를 포기해야 했다.

지금에서야 하는 이야기지만 난 정말 출마해 지역민의 공정한 심판을 받고 싶어 아버님과 아내와 싸웠고 눈물로 설득했었다. 하지만 불가항력이었다.

끝내 아버지와 아내를 설득하지 못한 용렬(庸劣)함이 결국에는 내가 정치에 발목이 잡혀 업보에 시달리는 삶을 살아야 했다.

이런 가슴 아픈 현실들은 1997년 11월 내게 위암 3기에 3개월 시한부라는 혹독한 시련을 안겨줬다.

하지만 아내를 비롯한 가족들의 극진한 간호, 그리고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다는 피눈물 나는 투병 생활 끝에 기적처럼 새 삶을 찾았다. 또 다시 꿈을 이루고자 하는 집념과 지역민과 함께 살고자하는 나의 희망이 정치의 망년(忘年)으로 내게 찾아왔었다.

그리고 다시는 후회하지 않기 위해 열심히 부족한 면을 채우고 노력 했었다. 그러나 “공정하게 하겠다”, “체육관 경선을 하겠다”는 말은 이상한 여론조사로 변질시켜져 무소속 출마도 못하고, 다시 한 번 되살아난 야바위 같은 정치판의 미아가 되어 바보가 되고 말았다.

절대로 악몽 같았던 지난날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던 굳은 다짐도, 뼈를 깎는 노력도 야비한 권모술수의 정치판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난 또 당하고 만 것이다. 두 번 다시 생각하기도 싫은 이 더러운 정치판에서 이제 내 소중한 30여년의 삶은 마음과 육신에 상처만 안겨주고 사라졌다. 정치에도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는 그레샴의 법칙은 적용되는지, 정치가 뭐 길래 나는 계속적으로 이 판에 집착해야만 했던 것인지, 그리고 사랑스럽고 한없이 좋기만 한 내 고향과 지역민들을 떠나서 난 어떻게 살 수 있을지 자문해 본다.

오늘도 난 그들과 함께하고 싶은데, 정치만을 위해 젊은 날을 살아 왔는데 이제 자의든 타의든 이 판을 떠나야 할 시간이 오지 않았는지 역시 자문해 본다.

“인생은 끝없는 도전과 응전의 연속이다“라는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박사의 말을 평생의 좌우명처럼 살아왔지만 난 아무것도 한일이 없었으니 난 참 한심한 바보였던가 보다.

이제부터 나는 나의 건설적인 후반의 이야기를 쓰려고 다짐한다.

오늘아침 내 집 앞 아스팔트위에 오월의 봄비는 아주 천연덕스럽게 내리고 있다.

조금은 막혀있는 내  가슴을 씻어 주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