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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 윤영근의 영산강이야기25-풍수지리 발상지 월출산(상)
신광재 기자  |  sjs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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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호] 승인 2006.08.1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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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출산은 아름다운 산세와 중요한 문화재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의 풍수지리가 최초로 발상된 곳이기도 하다. 삼국시대에는 월라산 또는 월라악이라 불렀으며 고려시대에는 월생산으로 불렀다. 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 월출산으로 불러오고 있다. 소백산맥의 끝에 우뚝 솟아있는 월출산은 최고봉인 천황봉(해발 809m)을 비롯해서 구정봉(738m), 장군봉(510m), 향로봉(743m), 사자봉 등 기암괴석이 장관을 이룬다.

달뜨는 산…기기묘묘 바위 조각품 장관

대부분의 산들이 흙으로 이루어 졌지만 설악산, 주왕산과 함께 월출산은 거대한 바위덩어리로 만들어진 산으로서 힘이 넘치고 화기가 팽만해서 남자의 산 또는 양기 산으로 부르기도 한다. 스카이라인에 걸친 바위들은 타오르는 불꽃처럼 울퉁불퉁한 톱날처럼 뾰쪽해서 항상 긴장하게 만드는 산이 월출산이다.

먼 곳에서 쳐다보는 산은 불쑥 솟은 바위들의 모습은 수많은 병사들이 창과 칼을 치켜들고 서 있는 모습이다. 월출산은 담담하고 유유한 영산강이 산자락을 끼고 흘러 보여 주는 모습이 상큼하고 깨끗하다. 영산강변의 너른 평야지대에 삼각 고깔을 거꾸로 엎어놓은 것 같은 월출산은 산과 함께 강과 바다를 동시에 볼 수 있는 남도의 산이라 하겠다. 영산강의 뱃길이 활발했을 때는 월출산을 쳐다만 보아도 감탄했다는데 이미 사라진 물길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우리나라는 3면이 바다고 만조 때는 바닷물이 강 길을 따라 상류까지 흘러간다. 특히나 영산강은 간만의 차가 심해서 바닷물이 내륙 깊숙이 영산포까지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에 하천과 바닷길을 통한 운송시스템이 활발했었다. 강은 자연적 조건들이 악화되어가면서 불편했음에도 나라의 중요물자운반의 중추적 신경역할을 해왔다. 다산 정약용은 ‘경세유표’에서 뱃길의 활용은 나라 살림을 일으켜 세우는 일이라고 하면서 수로의 중요성을 주장했다.

조선은 3면이 바다이다. 록수(압록강), 살수(청천강), 패수(대동강), 저수(예성강), 대수(임진강), 열수(제령강), 사비수(금강), 영수(영산강), 잔수(섬진강), 한수(한강), 람수(낙동강)가 씨로 되어서 강과 바다에 큰 배, 작은 배가 천척, 만척 떠다닌다. 무릇 곡식, 생선, 소금, 제목, 땔감 따위를 다 배로 운반할 수 있다. 나라에는 수레가 없고 암소가 흘레붙이고 망아지가 치달리는 풍속도 없다. 모든 일용 백물의 운반을 배가 아니면 사람들이 등에 메어 나르는 두 가지 방법뿐이니 배의 쓰임이 전적으로 긴요했던 것이다.

산과 강이 함께 붙어 만든 낱말이 산천, 산하이다. 그러나 강은 산을 넘지 못하고 산[龍]은 물을 건널 수없다. 즉 산은 경계를 의미하고 물은 흐르고 흘러 한곳으로 모여들어 통합을 나타낸다.
지역간에 교류가 증대하고 유통경제가 빠르게 발전되어감에 따라 분리의 기능이 컸던 산보다 사람과 물자, 정보와 지식이 오가는 통로가 되면서 분리보다는 통합의 역할이 컸던 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만 간다.

 

켜켜이 포개진 거대한 바위문화

이상에서 강과 바다는 식량을 생산하는 젖줄로서 뿐만 아니라 영양분을 운반하는 핏줄과 같은 역할을 해준다. 따라서 영산강도 전남의 젖줄일 뿐만 아니라 숱한 사연과 애환이 깃들어 있는 남도의 핏줄로서 몫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영산강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서부 전남권의 문물연구와 더불어 삶의 터전에 대한 현실적용의 통합적 고찰을 깊이 해야 할 것이다. 인류의 문명발달과 함께 이는 늘 숙제로 남아있는 영산강유역에 대한 문화모체를 캐내는 키포인트라 하겠다.

오 백리 물길 영산강을 하구 쪽에서 지켜주는 월출산은 국립공원으로서 가장 작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지만 가장 역동적이고 기막힌 절경과 함께 사람들을 끌어 모은다. 월출산은 첩첩 켜켜이 포개진 거대한 바위문화이다. 월출산 주변은 기름진 평야지대로 넉넉한 먹거리를 생산할 수 있고 주변의 산도 부드러운 육산으로 평범한 모습이다. 그렇지만 월출산은 펄펄 넘치는 기운으로 피 끓는 젊음과 대담함으로 청년기의 기상이 넘치는 골산이다. 그리고 골산의 내부는 기암괴석과 엉킨 듯 흩어진 수많은 바위봉우리들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이도 펼쳐졌다.

“월출산!”
큰 소리로 산을 불렀을 때 선뜻 떠오르는 이미지는 한마디로 말해서 위풍당당한 굳건함이다. 자신의 모습을 조금도 감추려 하지 않고 온전히 자신의 모든 것을 세상에 드러내는 월출산은 어떤 고난과 역경의 질곡도 꿋꿋하게 걸어가며 당당히 설 수 있는 강인한 장군 같은 바위 상들이다. 현대인들이 즐겨 찾는 맥반석으로 이루어진 바위산, 월출산의 강건한 이미지는 황토 땅으로 이룩된 영암의 청정하고 깨끗한 순결함이 깨끗해서 신선하기만 하다.

월출산은 정상인 천황봉과 구정봉으로 연결하는 동서축과 같은 능선을 경계로 해서 북쪽인 영암과 남쪽인 산세는 너무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데 하나의 산이 동시에 품고 있는 음과 양이라 하겠다. 영암 쪽의 산세는 너무 기가 세고 자못 웅장하여 무인적인 양의 기질이다. 이와는 반대로 강진 쪽의 부드러운 곡선미와 푹신한 흙산은 순탄한 산세로 문사적인 음의 기풍을 보여준다. 결국 월출산은 음양의 통합된 기운이 여러 방면에 걸쳐 다양한 문화를 꽃피게 했다.

 

조화롭고 품위 넘치는 거대한 조각예술품

월대암이 있는 달맞이 산, 기기묘묘한 절경의 신비한 바위산의 실루엣 위로 휘영청 떠오르는 달은 우리들을 꿈에 젖게 한다.

차갑게 흐르는 달빛에 젖어 꿈을 꾸며 미래를 그리고 가슴을 펴게 하는 질리도록 거대한 산이 월출산이다. 월출산의 다양하고 넉넉한 문화는 항상 달과 함께 해왔다.

빛은 빛이로되 결코 눈부시지 않는 은은한 달빛은 모든 이들의 가슴속 바닥까지 드러나게 밝히며 사로잡는다.

월출산은 그냥 산이라기보다는 조화롭고 품위 넘치는 거대한 조각예술품이다. 여러 신들이 모여 최고의 걸작품으로 빚어낸 황홀한 미술품이다. 그래서 남도지방의 창작인들은 월출산의 그림자와 평생을 두고 이야기하기를 즐겨했었다.

예로부터 문인, 화가, 조각가, 사진가 등 많은 예술인들이 월출산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많이 남겼다. 월출산의 뛰어난 예술성 때문에 국내의 산들 중에서는 가장 많은 예술로 표현되어진 산이 월출산이다.

월출산과 함께 영산강은 비옥한 땅에 물을 대주어 쌀을 생산하게 해주었다. 지구상에 있는 생명이 달린 모든 것들은 그 삶의 원천을 물에 두고 있다. 따라서 물은 땅의 어머니고 우주의 근본이라고 했다. 철학자들은 물은 만물의 근원이라고 했으며 물은 모든 물건의 근본이 되고 모든 생명의 바탕이라고 했다. 사람도 맨 처음 삶터로 꾸미기 시작한 곳은 물이 있는 곳에서 시작했다. 시냇가의 양지쪽에 옹기종기 모여 살며 보금자리를 틀고 살림살이를 키워갔다.

사람들은 물을 단순히 마시기만 한 것이 아니라 물 속에서 식량을 구하고 곡식을 재배하기 위해 육지로 물을 끌어 들였다. 뿐만 아니라 물고기처럼 강속에 몸을 맡기고 물을 길로 이용하기도 했다. 배를 만들어 타고 다닌 것이다. 어쩌면 인간은 수상동물로 태어난 것인지 모를 일이다.

 

예술적 소재로 활용 잦아

월출산을 가운데에 보듬고 있는 영암에는 세 개의 흔들바위가 있다.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 의하면 그중 하나는 운무봉에 있고 또 하나는 구정봉 아래에 있고 도갑봉의 용암에 있다고 했다.

용암의 동석은 높이가 1m쯤 되며 둘레는 열 아름쯤 되는 큰 바위인데 서쪽은 석골 뿐인 산머리에 붙어있고 동쪽은 끝없는 절벽에 걸려있다. 이 동석은 한사람이 흔들어보거나 열 사람이 흔들어보거나 같은 폭으로 흔들거린다. 이러한 동석 때문에 영암에 큰 인물이 난다하여 이를 시기한 중국 사람이 바위 세 개를 모두 떨어뜨려 버렸는데 묘하게도 그중 하나가 스스로 혼자서 처음의 제자리로 올라갔다고 한다.

그 바위는 신령스런 바위라 하여 바위가 있는 산과 함께 고을이름을 영암(靈巖)이라 부른다고 한다.

 

나주 중앙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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