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맛있는 곰탕
김 용 갑
얼마 전 도백이 자리한다는 나주 곰탕집 모임에 참석 했었다. 장년을 맞는 지금까지 나는 발전이 멈추어 버린 내 고향 영산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20대 초반
주경야독으로 방통대에 다니면서 나주농지개량조합에 농사지도원으로 재직했었다. 그 시절 나주 목사관아 금성관 주변 사매기 길로 출근하며 공직생활
4년여 간 줄곧 점심으로 자주 먹었던 것이 곰탕이었다.
내가 즐겨 먹었던 곰탕은 그때까지 먹어 왔던 그 어떤 음식 보다 최고로 먹음직스럽고 담백한 맛이었다. 갈색 천엽이 둥둥 떠 있는 노란국밥을
보면 저절로 침이 흘러 나왔었다. 그 먹음직스럽던 맛을 어찌 말과 글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그 시절의 곰탕 맛을 보고 느낄 수 없는 현실
앞에 지금은 서운하고 너무나 그립기만 하다. 입맛이 세월 따라 변해 그렇게 느껴지는지는 모르나 아무튼 그때의 곰탕 맛은 이제 어디를 가도 제대로
맛 볼 수가 없으니 안타깝기만 하다.
소도 사람들도 예나 지금이나 똑같건만 곰탕 맛은 덧없이 흐르는 세월 따라 많이 변해
버렸다. 나름대로 곰탕의 옛 맛을 내기위해 장인들은 노력했으리라, 풀만 먹여 키우는 소가 지금은 사라진 게 가장 큰 이유가 되지
않았을까?
60, 70년대 초반에 가난했던 시절의 가마솥 속에서 끓여진 그 감칠맛 나는 곰탕 맛을 많은 사람들은 잊지 못하고 있으리라. 1968년
극심한 한해를 맞았던 우리들은 그때가 무척 힘들고 살기 어려웠던 세상인지라 곰탕 맛이 내게는 더욱 맛있었다.
사회에 나온
신출내기는 곰탕 맛에 취해 거의 매일 곰탕으로 점심을 때우고 자전거 타고 논두렁으로 출장을 나갔었던 그 시절의 푸르른 청춘이 오늘따라 그립기만
하다. 하루라도 곰탕을 먹지 않으면 뭔가 서운할 정도로 쌈박한 곰탕 맛에 인이 박혔었다. 오죽했으면 월급의 30-40%의 돈을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할머니 곰탕집에 지불할 정도였다.
그 시절 지금은 은퇴해 고향에서 건강하게 노후를 보내고 있는 직장 선배인
김아무개가 나주곰탕에 관해 들려주었던 말이 아스라이 기억난다. 나주곰탕은 우리 나주인의 삶과 한이 숨어있는 서민이 먹었던 민중의 음식이었다는
사실이다.
성안 시장 저잣거리에 새벽 일찍 땔감나무를 팔기 위해 보왕굴, 문평 동막골, 신광리 등지에서 참나무숯,
장작나무, 갈퀴나무(소나무 잎) 등을 지게에 한 짐 가득 지고 금성산 재를 몇 번 넘어와야 했던 우리의 선조들이 있었다. 금성관 주변에 받쳐
놓고 양반집에 팔리면 집으로 배달해 사랑채 가에 쌓아주고 몇 닢의 엽전을 받아 지금의 매일시장에서 가족들이 주문한 생필품과 고등어 한손 갈치
둬마리 돼지고기 한두 근 등을 지개발에 꿰매어 놓고 시작한다. 시원한 막걸리 한 사발과 소뼈다귀(올갱이) 국물 뚝배기에 보리밥 주걱 말아 먹고
나면 힘든 것을 다 잊고 다시 돌아온 재를 넘어 기다리는 가족에게 발걸음을 옮겨야 하는 사연 많고 애환서린 밥이 나주곰탕의 시발점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 구수한 입담에 가슴이 뭉클했던 기억이 새롭기만 하다. 그렇다면 나주곰탕은 나주 4대 성 밖 민초들과 성안
양반들의 교류를 이어주는 우리 서민들의 한과 희망의 밥이었다는 사실에 왠지 숙연해진다.
단발령에 의연히 봉기했던 우리
할아버지도 광주학생운동의 동기를 만들었던 우리 할머니도 수세거부 투쟁을 했던 아재, 아짐들도 암울했던 한 시대의 정권퇴진운동 등을 보면 우리
나주인들의 기개 높은 의연함은 이 곰탕을 즐겨 먹었던 우리 선조들의 힘의 원천에 기인한 것이라 판단된다.
그런 면에서 보면 나주곰탕은 우리 나주인의 삶의 역사와 궤적을 같이한 자랑스러운 토속음식이라고 생각된다.
이 나주
곰탕 뒤에 숨어있는 우리의 가난한 선조들. 소외받은 서민과 소통되는 교감을 느끼면서 오늘도 나는 맛있는 곰탕을 먹으러 가야겠다.
◆ 프로필
-전남대 대학원(석사)
-나주 농조 근무
-국회의원 비서
-광주매일 사회부기자
-영산강라이온스클럽 회장
역임
-현 한중문화교류회 나주지부장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