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숙

내 껍데기의 치수는 얼마일까
껍데기를 벗고 
훌쩍 여행을 떠나게 되면
아무라도 내 껍데기를 뒤집어썼을 때
남의 것이라고 표 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의 심장에도 그의 간에도
그의 각막에도 그의 피부에도
거부반응 때문에 고통 겪지 않도록
고무줄바지처럼 대충 들어맞았으면 좋겠다

나는 그 날을 위해
둥글넙적벙벙한 프리사이즈가 되리라
누구나 한 번쯤은 맛보았을
쓴약 같은 저 그믐달의 어둠을 견뎌보리라
금성산의 외로움과 영산강의 눈물과
브레이크가 고장 난 내리막의 공포를
뱃살 속에 얼추 챙겨넣으리라
그리고 저 폭염의 불삽질에도 두어 달 헐떡거려보리라
껍데기의 여기저기에 속주머니를 달아서
그 모든 것 담아두리라

시접을 듬뿍 넣은 우리 한복처럼
생의 주머니 주렁주렁 달아두면
껍데기의 형질도
적확하고 예리한 잣대처럼 날 서지 않고
어리벙벙한 사이즈로
누구에게라도 대충 맞으리라

문득 눈을 내리깔고 지나치려던
검은 구름이 길을 멈추더니 뒤돌아본다
아무래도 소낙비 한 줄금 나누어줄 기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