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수히 많은 색깔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주변을 둘러보면 수백가지의 다양한 색이 우리를 공유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19세기 이후 화학염료 공업의 발달로 많은 화학인공 염료가 개발되어 다양한 색을 접하게 되었다.

그 이전에는 몇 가지 색에 의존하여 지위 신분이나 상위층 계급을 상징하는 존재가치를 표기하는 것으로 사용되었다. 특히 일반 대중에게는 의복이든 실내 장식이든 화려한 색깔은 거의 접하기 힘든 사치중 하나이거나 아예 법으로 사용이 금지되어 있었다. 색은 단순히 눈으로 감지하는 감각 이상의 의미를 띠고 있다.

▲ 장홍기 관장

고대 인도에서는 색깔마다 특별한 상징성이 깃들어 있었다. 노란색은 ‘바잔트(vasant·봄)’의 색으로 꽃들의 색이며 남풍(南風)의 색이다. 인디고(닐라)는 힌두 신 크리슈나의 색으로서 비를 머금은 구름을 상징한다.

 ‘하리 닐라’라는 또 다른 표현의 푸른 인디고는 하늘이 비치는 물의 색이다. 사프란(게루아)은 요기(요가 수도자)의 색이요 땅을 거부하는 시인과 예언자들의 색이다. 19세기 이전에 이런 색들은 어떻게 얻었을까?

붉은 자주색 염료로는 대표적으로 3가지 원료를 사용하였는데, 이것이 티리언 퍼플, 꼭두서니, 코치닐이다. 고대의 가장 귀중한 염료가 조개에서 생산되는 “티리언 퍼플(Tyrian purple)”이다.

고대 페니키아에서 생산되던 최고급 자주색 염료로써 페니키아인들은 지중해 전역에서 교역을 하였고 여러 곳에 식민 도시들을 건설했는데, 그중에서 상업적으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곳이 티레(Tyre)이었다.

오늘날 레바논의 도시인 티레에서 생산된 염료가 바로 “티리언 퍼플”이며, 이 염료로 물들인 자주색 고급 직물은 페니키아인들이 거래하는 대표적 상품 중 하나였다. 티리언 퍼플은 무렉스 브란다리스(Murex brandaris)와 푸르푸라 하이마스토마(Purpura haemastoma)라는 두 종류의 조개에서 얻는데, 아주 짙은 자주색을 띤다.

그리스인들은 이 색을 포이닉스(phoinix)라고 불렀으며, 페니키아라는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했다. 전설에 의하면 이 염료를 발견한 것은 다름 아닌 헤라클레스였다. 헤라클레스는 조개를 씹어 먹은 자기 개의 주둥이가 자주색으로 물든 것을 보고 염료 물질을 찾아냈다고 한다.

이 귀한 염료는 이집트의 파라오나 로마 황실, 혹은 유럽의 왕실이나 귀족 같은 최상층 신분들만 사용할 수 있는 값비싼 물질이어서 ‘임피리얼 퍼플(황제의 자주색 염료)’이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시절(4세기), 이 염료로 염색한 최상품 옷감 1파운드는 로마 은화 5만 데나리온으로 같은 무게의 금값에 해당했다. 약간 저렴한 임피리얼 퍼플도 파운드당 1만6000 데나리온에 달했다.

당시 석공의 일당이 50 데나리온이라는 점을 놓고 보면 이것이 얼마나 비싼 물품인지 알 수 있다. 네로 황제는 자신만이 이 색깔을 사용할 수 있으며, 다른 누구든 이 염료를 쓰다가 발각되면 사형에 처한다고 선언하였다.

그리하여 이 색은 곧 고귀한 혈통과 동의어가 되다시피 했다. ‘자주색 속에서 태어났다(born in purple)’는 표현이 한 예인데, 이 말은 비잔틴 제국에서 황녀가 자주색 옷감을 두른 방 안에서 아이를 낳는 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재)나주시천연염색문화재단 관장 장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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