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종/시인

송홧가루 날리는 오월이다. 요즘 금성산 등산로를 걷노라면 송홧가루가 날아와 어깨고 머리고 샛노랗다. 털어내려고 두들기면 더욱 살갑게 달라붙는다. 송화 받쳐 든 소나무를 올려다본다. 연초록 꽃이 꼭 파르라니 깎은 스님머리에 새로 돋아나는 머리카락처럼 앙증맞다. 짜릿한 생명의 기운이 전류처럼 온몸을 훑고 지나간다.

오월, 송홧가루의 구애가 대단하다

▲ 김종/시인

 초저녁에 서쪽하늘에 보이는 금성(金星)의 순우리말이 ‘개밥바라기’다. 그러나 ‘개밥’ 또는 ‘개밥바라기’는 우리 고향에선 소나무의 새순을 일컫는 말이었다. 사월 말부터 오월 내내 우리네 산야는 그야말로 송홧가루에 점령되는 시기이다. 꽃에 좀더 가까이 다가가 얼굴을 대본다. 송홧가루에 대한 알레르기만 아니라면 어찌 그 독특한 향기와 빛깔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송홧가루 날리는/외딴 봉우리/윤사월 해 길다/꾀꼬리 울면/산지기 외딴 집/눈 먼 처녀사/문설주에 귀 대이고/엿듣고 있다 (박목월의 윤사월)

송홧가루가 날리기 시작하면 우리네 어머니들은 장독대뚜껑부터 열어 놓고 송홧가루의 정화와 방부능력에 장맛을 맡겼다. 장항아리까지 날아와 살포시 내려앉은 노란 빛깔을 보면서 어쩌면 우리 어머니도 저 같은 송홧가루의 구애에 괜스레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으리라.
 
요즘 같은 첨단의학시대에는 세균이나 바이러스 등의 외부인자보다는 자신의 내부에서 발생하는 동맥경화 같은 혈관질환에 의해 생기는 만성퇴행성 질환이 사망원인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한다. 소나무순과 송홧가루는 동의보감과 본초강목에 의하면 피를 맑게 하여 노화방지와 중풍예방 등, 성인병의 치료와 예방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기록되어있다. 그렇듯 좋은 효능이 있는 소나무순에게 우리 선조들은 하필 ‘개밥’이라는 애칭을 붙여 주었을까?
 
배고팠던 시절, 보릿고개의 길고 긴 하루해에 하늘이 까무룩 하니 빙빙 돌던 그 허기 앞에 밥을 대신할 것이 마땅찮았을 것이다. 짐작컨대 그 힘든 시기에 소나무의 연한 싹과 송홧가루가 또 다른 밥이 되어주었으리라. 진달래를 참꽃이라 부르고 철쭉을 개꽃이라 불렀던 것처럼 먹을 수는 있으나 밥보다는 조금 못하다고 해서‘개’라는 접두사를 붙여 ‘개밥’ 또는‘개밥바라기’라 불렀던 것은 아닐까.
 
소나무가 꽃을 피우기 시작하면 우리는 소나무의 무차별적 애정공세를 받는다. 원하던 원치 않던 옷이며 지붕이며 마당이며 장독대며 온통 노란 페인트를 엎지른 것 같다. 심지어는 염전의 소금꽃에까지 날아가서 제 짝인가 아닌가하고 궁합을 맞춰본다. 그러면서 저하고 인연 맺는 것들을 정화해주고 잡균의 침범을 막아준다. 그래서인지 소금도 송홧가루 내려앉은 천일염이 가장 맛이 좋아서 그 중 최상품으로 대접을 받는다고 한다.

‘6.2지방선거’는 공감대를 찾고 소통의 창문을 열어가기를
 
‘6.2지방선거’가 코앞에 다가왔다. 출사표를 던진 정치인들의 면면을 짚어보며 송홧가루 같은 구애를 생각해본다. 미욱한 세상을 구하겠다며 저들의 열변은 우렁차다. 제 한 몸 바치겠다는 눈물겨운 구애가 송홧가루처럼 세상을 정화하고 방부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허기진 민초들에게 밥이 되어줄 수 있을까. 밥이나 건강식품이 되어주는 소나무순처럼 저들의 진정어린 헌신이 필요하다. ‘풀뿌리의, 풀뿌리에 의한, 풀뿌리를 위한’ 너무나 당연한 민주주주의의 근본이 이 초여름에 새삼 떠오른다. 유권자의 한사람으로서 정치인들이 풀뿌리의 기본에 충실해주기를 요구한다면 과한 주문일까?
 
더도 덜도 말고 저 산야의 ‘개밥’들처럼 풋풋한 생명력으로 세상을 물들였으면 좋겠다. 저들이 피워내겠다는 민주주의의 이상이 동맥경화로 인한 소통부재의 성인병을 치유할 순 없을까. 우리 사회의 해묵은 오해와 편견과 편짜기의 노폐물들을 말끔하게 녹여내는 만병통치의 약효를 발휘할 순 없을까.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서 풀뿌리들의 고통을 안아주고 귀를 활짝 열어 반대편의 의견에도 서로의 공감대를 찾고 소통의 창문을 열어가기를 기대해본다. 이번 ‘6.2지방선거’에서는 명실공히 등 다습고 배부른 ‘풀뿌리 민주주의 만세’가 되기를 기원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