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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무소유를 말해도 이 책만큼은 소유하고 싶다”
산문집 《무소유》의 작가로 친숙한 법정스님이 지난 11일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서 입적했다. 법랍 55세. 세수 78세. 스님은 입적하기
전날 밤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 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에 사용해 달라. 이제 시간과 공간을 버려야겠다”고
말했다고 조계종 쪽은 밝혔다. 또 법정스님은 자신의 이름으로 출판된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본지는 투데이 추천도서를 통해 이미 〈아름다운 마무리〉 〈일기일회〉 〈한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사람을〉 등 스님의 저서 3편을
소개한바 있는데, 이번 스님의 입적을 계기로 스님의 대표저서이자 1976년 출간 이후 그간 179쇄를 찍은 이 책을 통해 스님의 평생 화두였던
‘무소유’를 다시 한번 되새기고자 한다.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것이다. 필요에 따라 가졌던 것이 도리어 우리를 부자유하게 얽어맨다고 할 때
주객이 전도되어 우리는 가짐을 당하게 된다는 말이다.” 1971년 현대문학에 기고한 ‘무소유’라는 글에서 법정스님은 어떤 스님한테서 선물 받은
난초 두 뿌리를 정성스레 기른 얘기를 하면서 거기에 일회일비 노심초사하다가 결국 친구에게 줘버린 뒤 비로소 그 몇 년간의 집착에서 벗어난 얘기를
썼다.
“비로소 나는 얽매임에서 벗어난 것이다. 날 듯 홀가분한 해방감. 유정을 떠나보냈는데도 서운하고 허전함보다 홀가분한 마음이 앞섰다.
이때부터 나는 하루 한 가지씩 버려야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했다. 난을 통해 무소유의 의미 같은 걸 터득하게 됐다고 할까.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역리이니까.”
짤막한 에세이에 붙은 ‘무소유’라는 제목은 이후 법정스님의 일부, 어쩌면 그 자체가 됐다. 1976년 4월 이 글이 포함된 에세이집
《무소유》가 출간됐고 그야말로 장안의 지가를 올렸다. 스님의 이 책은 우리시대 최고의 스테디셀러 가운데 하나로서, 김수환 추기경이 생전에 이
책을 두고 “아무리 무소유를 말해도 이 책만큼은 소유하고 싶다”고 한 말은 유명하다.
이 책에는 양서란 어떤 것인가에 대한 법정스님의 생각이 녹아 있다. 스님은 “좋은 책이란 거침없이 읽히는 책이다. 그러나 진짜
양서는 읽다가 자꾸 덮이는 책이어야 한다. 한두 구절이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주기 때문이다. 그 구절들을 통해서 나 자신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양서란 거울 같은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그 한 권의 책이 때로는 번쩍 내 눈을 뜨게 하고, 안이해지는 내 일상을
깨우쳐준다”고 말씀하고 있다.
《무소유》는 바로 그런 책이다. 새로운 지식을 전달하고 일찍이 몰랐던 진리를 깨우쳐주는 책은 아니지만 우리의 영혼을 맑게 닦아주는 거울과
같은 책이다.
몇 십 년 전에 읽었던 《무소유》를 추천도서로 선정한 것은 스님의 입적을 계기로 혼탁해진 지역사회의 정서를 조금이나마 맑고 청명하게
씻어냈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다. 스님의 입적을 접하고 바로 인터넷을 통해 이곳저곳에 책의 구입을 서둘렀지만 책이 절판돼 시립도서관에서 1997년
범우사에서 발행한 문고본을 구해 읽었다. 푸르고도 투명한 가을 하늘아래 고즈넉한 산길을 따라 거니는 듯한, 단아한 문체의 수필 서른다섯 편으로
엮어진 《무소유》는 그 중에서 다섯 번째 수필의 제목이 단행본의 책제목이 되었다. 이는 ‘무소유’야 말로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된 메시지이기
때문일 것이다.
“절대로 다비식 같은 것을 하지 말라. 이 몸뚱아리 하나를 처리하기 위해 소중한 나무들을 베지 말라. 내가 죽으면 강원도 오두막 앞에 내가
늘 좌선하던 커다란 넙적바위가 있으니 남아 있는 땔감 가져 다가 그 위에 얹어 놓고 화장해 달라. 수의는 절대 만들지 말고, 내가 입던 옷을
입혀서 태워 달라. 그리고 타고남은 재는 봄마다 나에게 아름다운 꽃 공양을 바치던 오두막 뜰의 철쭉나무 아래 뿌려 달라. 그것이 내가 꽃에게
보답하는 길이다. 어떤 거창한 의식도 하지 말고, 세상에 떠들썩하게 알리지 말라” -법정스님 유언 중에서
법정스님은 대중적 문필활동의 시작을 알린 《무소유》에서 “우리는 언젠가 한 번은 빈손으로 돌아갈 것이다. 내 이 육신마저 버리고 홀홀히
떠날 것이다. 하고많은 물량일지라도 우리를 어떻게 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 말대로 스님은 빈손으로 떠났다. 2010년 1월 3일자
투데이 추천도서였던 스님의 저서 「한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사람을」에서는 스님의 쾌유를 소망했었는데, 오늘은 스님의 명복을 빌고
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