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보다는 삼성이, 삼성보다는 대한민국이 중요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나에게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우라고 가르쳤다“

2007년 10월 이른바 ‘삼성 비자금 의혹’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을 생각한다》를 펴냈다. 이 책에는 ‘관리의 삼성’이 그동안 법원·검찰·국세청 등 권력기관을 상대로 어떤 형태의 로비를 펼쳤는지와 경영권을 세습하는 과정에서 증거조작도 마다하지 않는 행태가 반도체 회로도처럼 세밀하게 묘사돼 있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먼저 1부 ‘불의의 양심에도 진실은 있다’에는 김 변호사가 양심을 고백을 하면서 겪은 에피소드와 삼성 특검의 전말이 소개됐다. 김 변호사는 삼성그룹 퇴사 후 양심고백을 준비하는 동안 매일같이 삼성이 보낸 사람에 감시당하던 일부터 그를 도와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 그를 비난한 사회 각계각층의 목소리, 앙심선언 후 삼성그룹 고위 관계자들의 행동, 특검 수사의 불합리함 등 기존에 나온 기사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던 일들을 낱낱이 공개했다.

가장 큰 관심을 불러일으킬 내용은 2부 ‘그들만의 세상’에 기록돼 있다. 김 변호사가 삼성에 입사할 당시부터 퇴사할 때까지 그가 보고, 듣고, 실행하고, 느낀 삼성그룹의 경영방식이 고스란히 수록됐다. 언론의 찬사를 집중적으로 받는 ‘총수 경영’이 실제로 어떤 폐단을 가졌는지, 이건희 전 회장의 독단적인 결정이 회사에 얼마나 큰 피해를 입혔는지, 비리로 얼룩진 이건희 일가를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가 글로벌 기업으로 뻗어나갈 삼성그룹 조직원들에게 어떤 부작용을 가져오는지 등이 세세한 에피소드를 근거로 소개된다.

특히 그는 삼성 경영 실무의 모든 것을 책임졌던 이학수 당시 그룹 부회장과 김인주 당시 사장과의 대화를 복기해 이들의 불법적 경영 행태를 고발하고 있다.

3부 ‘삼성과 한국이 함께 사는 길’은 김 변호사의 검사 재직 시절의 일과와 한국사회를 바라보는 그의 개인적 생각이 담겨있다. 군대에서 겪은 일을 통해, 검사시절 맡았던 각종수사를 통해 그는 한국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특히 양심선언 이후 늘상 듣게 된 ‘전라디언’ ‘좌빨’ ‘빨갱이’ 등의 비난을 지적하며 “오히려 재벌이 좌빨”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이 책에는 흥미롭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일화들이 숨어 있다.

먼저 현직 검사들이 상가에 가기 위해 타고 간 이건희 전 회장의 전용기다. 김 변호사가 후배 검사의 상가에 갈 일이 있었는데 이학수 전 부회장이 이 전 회장의 전용기를 빌려줬다. 이 전용기에는 현직 검사 몇 명이 김 변호사와 함께 탔다.

또한 “대법관에게 150만원짜리 굴비 선물세트를 보낸 일도 있다. 직접 전달하는 것이 예의라면서 상부의 지시가 있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그러나 나는 운전기사를 대신 보냈다. 속으로는 ‘대법관이 설마 삼성이 보낸 굴비를 받겠느냐’고 생각했었다”면서 “그러나 나중에 기사에게 들으니, 굴비 잘 먹겠다고 감사인사를 하면서 받았다고 한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2002년에는 나와 부사장, 판사 셋이서 함께 골프를 쳤는데 이 판사는 6년 뒤  터진 삼성 사건에서 재판장을 맡았다”고 주장했다. 또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매각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검 수사의 진도가 나가지 않던 당시, 지검장 집에 삼성 관계자가 드나들며 선물을 갖다 줬다는 내용도 실려 있다. 삼성 관련 사건을 맡은 부장검사의 처남이 삼성증권에 투자했다가 본 손해를 삼성이 보존해줬다는 주장도 있다.

김 변호사의 폭로 뒤 당시 노무현 정부 쪽에서 국세청장 후보 3명의 ‘검증’을 그에게 부탁했는데 “모두 삼성의 관리 대상이었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김 변호사는 많은 사람들이 재벌의 비리를 공개해봤자 소용없다고 이야기했다. 삼성비리 관련 재판 결과가 나오자, 이런 목소리에 ‘역시나‘하고 힘이 실렸다. 이들은 말한다. “정의가 이기는 게 아니라, 이기는 게 정의”라고. “질 게 뻔한 싸움에 뛰어드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내 생각은 다르다, 정의가 패배했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는 것은 아니다.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도 아니다. “정의가 이긴다”는 말이 늘 성립하는 게 아니라고 해서, 정의가 패배하도록 방치하는 게 옳은 일이 될 수는 없다. 나는 삼성 재판을 본 아이들이 “정의가 이기는 게 아니라, 이기는 게 정의”라는 생각을 하게 될까봐 두렵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썼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