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종 / 시인

교수신문이 선정한 2009년도의 사자성어는 ‘방기곡경(旁岐曲逕)’이다. ‘샛길과 굽은 길’을 뜻하는 이 말은 일을 순서대로 하지 않고 그릇된 억지 수단으로 이루려함을 의미한다. 방기곡경이 2009년도의 사자성어로 선정된 것은 무슨 일이건 타협과 합의를 이루지 못한 각자도상의 정치권이 샛길과 굽은 길로 돌아왔음을 비판적으로 표현한 것이리라.

샛길과 굽은 길은 그 길을 선택한 이들에게는 불안의 길이다. 하지만 세상의 일들은 정면 승부만으로 안 되는 것도 있어서 어쩌면 돌아가야 하는 길은 단절된 길이 아니라 시선이 고정된 우리들 자신일지도 모른다.

사마천은 말했다. 사람은 한 번 죽게 마련인데, 어떤 것은 태산보다도 무겁고 어떤 것은 기러기 털보다도 가벼우니, 이는 삶의 지향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삶의 지향을 아름다움에 두는 것이 문화와 예술이다.

▲ 김 종 시인

행복한 미래에 대한 판타지 - ‘무서운 깊이 없이 아름다운 표면은 존재하지 않는다.’ 니체(1844~1900)가 바그너에게 보낸 ‘비극의 탄생’ 최초의 서문에서 그리스 예술을 빗대어 한 말이다.

이 말은 문화와 예술은 일하는 것, 돈을 버는 것과 같은 노동의 의미와는 다른 삶의 방향성을 생각하게 한다. 달리 보면 일 그 자체가 삶의 목적은 아닐 것이다. 일을 마치고 자신의 시간을 가질 때 비로소 ‘사는 시간’이라 할 수 있다.

문화와 예술은 동일한 것을 생산하는 학문처럼 ‘또 하나의 벽돌’을 만들어 벽을 쌓는 것이 아니라 종종 사회적 질서나 통념 전체를 뛰어 넘는 ‘탈주’를 의미한다. 사람들에게 ‘세상에 이런 일이!’라고 놀랄 만한 일을 보여 줄 수 있는 것, 영혼의 자유로움을 담아내고 즐기는 것이 문화와 예술이다. 시가 시인의 것이 아니라 시를 필요로 하는 이들의 것이듯 문화, 예술 더 나아가 다양한 문화 콘텐츠는 그것을 가꾸고 즐기는 사람들의 소유다.

최근 우리 주변의 문화환경은 자신만 부지런하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고 활용할 수 있도록 변화하고 있다.

고려시대의 목선을 복원하여 영산강에 관광유람선으로 운영할 계획이라는 신문기사를 읽었다. 뱃길복원 등을 통해 호남의 생태광광지로 조성되고 있는 영산강에 이렇게 하드웨어를 조성해 부가가치를 창출하여 ‘브랜드’화 하고 나주를 외부에 적극적으로 소개하는 것도 문화와 상업성과의 연계이다.

마케팅 전략에 따라 만들어지는 ‘브랜드’의 사전적 의미는 기업의 상표 혹은 이미지이다. 소비자가 물건을 구매할 때 그 판단을 상품의 질이 아닌 브랜드 자체에 의존하도록 하는 방법이 도시마케팅에서 문화적 브랜드 만들기에 강력한 효과를 가진다. 

‘상상’(想像)이란 말은 코끼리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중국 사람들이 인도에서 온 코끼리뼈만 가지고 ‘코끼리의 형상을 머릿속으로 그렸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제는 우리도 주변의 코끼리 뼈 같은 문화공간에 상상력의 살을 붙여 상품으로 팔아야 한다.

도심의 문화 공간인 코끼리에 살을 붙이고  걸어 다니는 코끼리를 만들어야 한다. 문화는 결국 개성이고 변화다. 문화를 생산하는 측도 지원해야 하지만 문화를 소비하는 측도 안목을 높이는 훈련이 문화를 팔 수 있는 지름길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스토리텔링은 문화소비자에 대한 안목 높이기에 다름 아니다. 독일의 로렐라이 바위는 조그만 운하 하나와 주차장만이 있는 삭막한 곳이지만 슈베르트가 작곡하고 하이네가 작사한 노래로 그 이미지를 찾는 전 세계의 관광객들이 몰리는 것이다.

나주의 랜드마크인 금성산과 영산강, 마한의 고분군에 나주만의 개성적 문화 디자인을 풀어 놓는다면 문화를 보다 효율적으로 마케팅 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영산강변의 산책길에서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는 나주의 풍경을 노래하는 동요나 시가 흘러나오고 그 지역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접할 수 있다면 문화 콘텐츠로써 그곳을 찾는 사람들의 뇌리에 인상 깊게 디자인될 것이다. 바슐라르가 말한 것처럼 기억을 생생하게 하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공간이다.

자연스럽게 환경을 변화시켜 가는 것은 사람들의 삶의 질을 변화시키는 첩경이 된다. 그렇다면 도시 문화에서 ‘방기곡경’은 함께 즐길 수 있는 문화 창조의 또 다른 표현이 아닐까 싶다. 주변 주변에 생각이 넘치는 공간들이 늘어나고 있다. 주민참여제도를 통한 영산동고인돌공원이 친환경쉼터로 거듭난 예처럼 이제 행정과 주민이 함께 나서서 감동적인 문화를 만들고 그 문화를 팔아야 한다.

비 개인 긴 둑 위에 풀빛이 짙어올 제 / 님 보내는 남포에 슬픈 노래 울리누나 / 대동강 저 물결은 언제나 마를 건가 / 이별 눈물 해마다 푸른 물결 더해주니.
(雨歇長堤草色多, 送君南浦動悲歌. 大同江水何時盡, 別淚年年添綠波.)
- 정지상, ‘送人’

‘이별의 눈물이 해마다 더해지니 대동강물이 마를 날이 없다.’는 시구(詩句)처럼 해마다 무형의 가치인 문화가 더해지면 문화나주는 문화의 태산인 그리스로마보다 더 커질 것임을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