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자책과 반성’의 회고록
“난 부끄러운 사람…독선과 아집 등이 내 오류”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던 마지막 말. 그는 무엇을 그토록 전하려 했을까.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못다 쓴 회고록’이 출간됐다. 노 전 대통령이 죽음 직전까지 남긴 육필원고와 미공개 육성기록을 담은 《성공과 좌절, 노무현 대통령 못다 쓴 회고록》은 자신의 업적을 과시하기 위한 어느 정치인들의 회고록과는 확연히 다르다.

진솔한 반성과 자책, 그리고 시민주권에 대한 확신과 함께 시민이 승리하기 위한 조건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노 전 대통령이 남긴 원고지 90쪽 분량의 미완성 원고와 비공개로 인터넷에 올린 글·인터뷰 등을 바탕으로 쓰였다.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직에서 물러나 고향 봉하마을에 정착해 살기 좋은 농촌을 일구려는 꿈을 간직했던 그의 회고록은 이렇게 시작된다. 서거 사흘 전인 5월20일 오후에 쓴 글로, 회고록에 배치된 이 글에서 그는 검찰 수사로 자신의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현실에 대한 자책과 반성을 담았다. “시민으로 성공하여 만회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제 부끄러운 사람이 되고 말아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실패 이야기를 쓰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사죄의 글로 쓰려 한다”고 책의 성격을 밝혔다.

이 회고록은 1부 ‘이제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와 2부 ‘나의 정치역정과 참여정부 5년’으로 이루어졌다. 1부 ‘이제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는 노 대통령이 봉하마을에서 마지막까지 손을 놓지 않았던 글들로, 회고록을 쓰기 위한 목차와 대강의 구성까지만 완성하고 서거했다. ‘미완의 회고’에 실린 메모(지난 5월20일 최종수정)들을 보면 노 대통령이 서거 직전까지 어떤 고민을 했나, 그 편린들을 그대로 엿볼 수 있다.

제2부 ‘나의 정치역정과 참여정부 5년’은 퇴임을 앞둔 2007년 노 대통령 자신의 인생역정과 정치역정, 참여정부 5년의 국정운영에 대해 스스로 평가한 육성기록을 주제별로 재구성한 것이다. 퇴임 후 충분한 시간을 갖고 정리해 책으로 낼 계획이었으나 서거로 중단됐다. 결국 노 대통령이 자전적으로 정리한 마지막 기록이 됐다.

그는 검찰 수사를 겪으면서 느낀 심정과 봉하마을 자택에서의 칩거생활의 단면도 소개하고 있다. 서거 한 달 전인 4월 12일 아들 건호씨의 검찰 출두를 TV로 지켜보면서 “남의 일이 아니고 내가 당해보니 참 아프다. 카메라도 흉기가 된다”고 적고 있다. 또 안방에서 걷는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뒤로 돌아서 다시 하나, 둘…. ‘빠삐용’이란 영화에서 본 장면이 생각난다. 기자들 때문에 마당에도 나갈 수가 없기 때문“이란 대목도 있다. 검찰 조사를 받고 돌아온 권양숙 여사가 ”권력은 돈하고 언론하고 검찰에 있다“며 ”정치인들은 걸핏하면 감옥이나 들어가고,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말한 대목도 나온다.

여기에 노 대통령이 서거 전에 겪었을 마음고생도 필설로 다 할 수는 없는 절절함으로 다가온다. 4월 말에 ‘사람 사는 세상’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그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간곡히 호소합니다. 저의 안마당을 돌려주세요. 안마당에서 자유롭게 걸을 수 있는 자유, 최소한의 사생활이라도 돌려주시기 바랍니다”라며 간곡하게 호소하고 있다. 이처럼 사저가 카메라와 사진기자들에게 둘러싸여 24시간 감시 받는 감옥이 된 상황에 대한 심경은 4월12일에 쓴 ‘언론은 흉기다’에서 고스란히 전해진다.

이 회고록을 읽다보면 지역주의, 그리고 기회주의와의 싸움에 모든 것을 걸었던 한 정치인을 만날 수 있다. 현실정치에선 비주류였지만 국민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바보 정치인’이 서 있다. 시대를 고민했던 대통령 노무현, 죽음마저도 시대와 함께 한 노무현을 만난다.

노무현, 그의 꿈은 비록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가 갈망했던 사람 사는 세상을 찾아가는 여정은 끝난 게 아니다. 그가 가고자했던 길을 더 많은 사람들이 걸어갈 것이다. 노무현의 두 번 째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그 긴 여정을 위한 안내서 ‘노무현 대통령 못다 쓴 회고록’ 《성공과 좌절》의 일독을 권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