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대학교 문화인류학전공 교수 윤 형 숙

오늘날 홍어의 주산지로 잘 알려진 흑산도의 홍어에 대한 기록은 한국 최고最古 어류학서魚類學書로 알려진 정약전丁若銓(1760~1816)의 『자산어보玆山魚譜』에 나온다. 『자산어보』는 흑산도에 유배 된 정약전이 자신이 관찰한 어류의 분포와 형태, 습성 및 이용에 관한 내용을 기록해 놓은 책이다.

한편 홍어를 사러 흑산도 근처 태사도(태도)로 다녀오다 태풍을 만나 오랫동안 필리핀, 일본, 중국 등으로 포류한 우이도 사람 문순득의 경험을 적어놓은 「표해시말」의 기록을 통해서 홍어가 흑산도 근처에서 많이 잡혔음을 추론해 볼 수 있다.

과거에는 흑산 본도보다는 근처의 다물도와 태도가 홍어의 주생산지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태도 주민들 중에는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며 홍어의 본산지는 흑산도가 아니라 태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흑산도 홍어라 할 때 흑산도는 일반적으로 태도, 다물도, 홍도 등 흑산도 주위에서 잡힌 홍어를 총칭한다.

국내산 홍어는 흑산도 뿐 아니라 백령도, 소청도, 대청도 등 서해 5도 일대에서 많이 잡혔다. 서해 5도 일대에서 잡힌 홍어는 생산지나 생산지와 가까운 곳에서는 거의 소비되지 않고 웅진수협과 인천의 중매인 등을 통해 전라도 지방으로 판매·유통되었다. 대청도와 백령도에서는 다른 어류들이 많이 생산되었기 때문에 주민들이 홍어를 특별히 귀한 음식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이 지역에서 생산된 홍어는 타지역에서 들어 온 상인이나 객주를 통해 외부로 팔려 나갔다. 1970년대 중반 이후 주로 웅진수협을 통해 판매되었다.

웅진수협을 통해 공판하기 전까지 백령도, 대청도의 홍어잡이 선장이나 중매인들이 직접 홍어배를 타고 홍어의 주소비지인 흑산도, 나주 영산포, 함평 주포 등에 와서 홍어를 좁쌀, 쌀과 같은 곡식과 교환해 가기도 했다. 당시 백령도와 대청도 등에서는 곡식이 매우 귀했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돛단배를 가지고 멀리 못가니까 여기 백령도 안에다만 고기를 펐지요. 조기 상고선과 상인들이 많이 왔었어요, 그 상인들이 와가지고 사갔지요. 옛날에 홍어가 많이 났습니다. 우리는 전라도 사람처럼 홍어를 삭혀 먹지 않았습니다. 싱싱한 회를 먹거나 말려 먹었지요. 40~50년 전에는 홍어를 소금에 절여서 바닷가에 쫙 펴서 말려 팔았지요. 상인들이 와 사갔습니다.
여기 사람들이 직접 전라도에 홍어를 팔러 가기도 했습니다. 저는 영산포와 주포에 갔습니다. 영산포는 6번, 주포는 3번 갔어요.
배로 몇 마리나 가지고 갔는지는 셀 수 없지요. 그때는 배에다가 막 실어 가지고 갔습니다. 전라도 분들은 다 숙성한 것을 좋아하니까.
왜 전라도를 가느냐 하면 여기에는 그때 당시에만 해도 농사가 잘 안되었습니다. 상인에게 팔면 수지가 잘 맞지 않으니까 전라도까지 갔지요. 홍어는 좁쌀, 쌀, 보리쌀과 교환을 해왔습니다. 지금은 개간지가 많이 생기고 농사기술이 발달되어 백령도 안에서도 주민이 6~7년은 먹고 살 만큼 농사를 짓지만 그때는 말분가루를 먹고 살았지요.
값은 전라도에서 부르는 값에 쳐주었습니다. 보통 홍어 10마리에 좁쌀 한말, 지금으로 치면 한 가마니를 받았습니다. 전라도에 흉년이 들면 홍어 15마리에 좁쌀 한 가마니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식량을 구걸하러 간 것이나 같으니까 달라는 값으로 교환해 주었지요.
이○묵, 57세, 홍어잡이 선장 경력, 현재 백령도 거주

전라도는 흑산도 뿐 아니라 백령도, 대청도 등 서해안에서 잡힌 홍어의 주 소비지였다. 전라도 안에서도 어선이 다니는 서해안 연안 항구와 포구 및 인접 지역인 목포, 나주, 함평, 영암, 광주 지역 등이 주 소비지였다. 그러나 전라도 내에서도 순천, 여수, 광양 등은 홍어 소비권에 들지 않았다. 홍어 대신에 가오리를 먹어 ‘가오리권’을 형성하였다.

전라도 안에서 지역에 따라 홍어를 요리하여 먹는 방식에 차이가 있었다. 홍어의 생산지인 흑산도에서는 삭히지 않은 싱싱한 홍어를, 목포에서는 약간 삭힌 홍어를, 나주, 광주, 영암 등에서는 아주 많이 삭힌 홍어를 먹었다. 생산지에서 멀수록 더 삭혀진 홍어를 먹은 셈이다. 냉동시설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 생산지에서 소비지로 운반하는 과정에서 삭혀진 홍어가 전라도 내 홍어 요리방식을 형성하는 데에 지대한 영향을 준 것으로 추론할 수 있겠다.

홍어는 평소에 먹을 수 있는 음식이기도 하지만 대개는 명절이나 결혼식, 장례식 등에 많이 쓰이는 음식이었다. 즉 여럿이 함께 나누는 음식이었던 것이다.

음식이 소비되는 사회문화적 맥락은 그 음식의 사회적 의미와 가치, 음식에 대한 사회적 기억을 결정하는데에 매우 중요하다. 가족 안에서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에 비해 공동체가 함께 먹거나 주고받는 음식은 집단의 공동체의식(communion), 공동체적 가치와 결속을 실현시키는(substantialize) 상징적 매개체의 역할을 한다. 제사음식은 조상과 후손과의 연결의식, 혈연과의 일치감을 나타낸다. 영성체에 쓰이는 빵과 포도주가 신과 인간, 교회공동체의 일체감을 표현하고 체현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공유된 음식은 집단이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고 체현하며 자신이 누구인가를 깨닫게 해 주는 기능을 한다. 홍어처럼 잔치 때에 의례적으로 쓰이는 음식도 나온다. 그러나 돼지고기, 떡, 전, 잡채 등은 다른 지역에서도 명절이나 잔치에 흔히 사용하는 기본음식으로 전라도 지역만의 토속음식이 될 수 없다. 홍어와 함께 먹는 돼지고기와 김치는 삼합이라는 ‘전라도식 홍어 먹는 방식’에 의해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