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남기는 것은 下, 가게를 남기는 것은 중 中, 사람을 남기는 것은 上”

삼성경제연구소가 운영하는 SERI CEO에서 지난 2004년부터 ‘상인 열전’을 강의하고 있는 논픽션 작가 홍하성씨가 일본의 5대 상인을 살핀 책, 《일본의 상도》를 펴냈다.

지난 20여년간 100여 차례 일본을 오가며 현지 취재한 결과를 집대성한 이번 책에는 오사카, 교토, 오미, 나고야, 도쿄 등 일본의 5개 지역에서 뿌리를 두고 있는 5대 상인과 그들이 현재 어떤 기업으로 성장했는지를 담고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시대부터 도쿠가와 이에야스 시대에 걸쳐 정책적으로 육성된 상인이 오사카 상인이라면, 천년간 일본의 수도라는 자부심과 역사적 전통으로 상도를 이룬 것이 교토 상인이다. 모기장 행상으로 일본 전역과 세계를 누비며 합자. 회계. 마케팅. 유통에서 뛰어난 상재(商材)를 보여주는 상인이 오미 상인이라면, 질 좋은 목재 생산지로 일찍이 기계와 공업분야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여준 주인공이 나고야 상인이다.

400년 전통의 오사카 상인은 일본경영의 신인 파나소닉의 창업주 마쓰시타 고노스케를 배출했고, 천년 전통의 교토상인은 닌텐도, 교세라, 무라타 제작소 등 세계 최강의 강소기업을 키워냈다. 또 모기장과 약, 칠기 밥그릇을 팔아 돈을 번 ‘일본의 개성상인’ 오미 상인은 세계 최대의 보험회사인 일본생명, 이토추상사, 세이부 그룹 등을 만들었다.

일본경제의 혼인 나고야 상인은 도요타자동차, 신일본제철, 혼다자동차 외에 세계최강의 부품 기업인 덴소 등을 키웠고, 도쿄에서 100년 이상 장사해온 소니와 화장품의 시세이도를 비롯, 긴자의 명품 가게 400 곳 이상을 탄생시켰다.

이들 일본의 5대 상인들에게는 공통된 철학이 있다. ‘돈을 남기는 것은 하(下), 가게를 남기는 것을 중(中), 사람을 남기는 것을 상(上)’으로 쳤다. 오늘날 일본 상도의 바이블이자, 일본인의 상도를 체계화시킨 이시다 바이간의 책 〈석문심학(石門心學)〉은 이렇게 말한다.

“물건을 팔 때 중요한 것은 소비자인 상대방도 납득하고 상인인 자신도 납득하는 것이다. 상대와 자신이 모두 잘 되는 것이 진정한 상도다”라고.

이 책에는 회사를 설립한 이래, 종업원을 단 한 명도 해고하지 않고 구조조정에 성공한 기업들의 이야기가 흔하게 펼쳐진다. 경영위기에 처한 회사가 종업원들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오히려 믿음과 희망을 주고 기술혁신, 아이디어 쇄신을 하는 모습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특히 1,000년이 넘도록 같은 곳에서 꿋꿋하게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 내는 일본 노포 상인들의 모습에서는 더 이상 장사꾼의 모습이 아니라, 고객을 종교로 섬기는 수도자의 면면마저 읽을 수 있다. 저자는 이처럼 비슷하면서도 본질적으로 다른 5대의 일본 상인을 일일이 발품을 팔며 취재해 그들의 속살까지 샅샅이 드러낸다.

무엇보다도 현장탐사 정신이 빛나는 것은 기업가들과의 인터뷰다.

“서기 578년 창업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회사인 군고구미의 사장은 80대 고령에도 공사현장에서 아슬아슬한 사다리를 오르내린다”는 구절이나,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난 가게문을 여는 노포 상인의 몸에 밴 성실성을 언급하는 대목에서 ‘과연 무엇이 오늘의 일본을 만들었는지’를 진하게 깨닫게 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자신의 노하우를 가족에게 전수하는 100년 이상 된 노포를 들여다보면 10년 불황을 거치면서도 흔들림 없이 세계적인 경제대국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는 이유를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이어 그는 “일본 상인에 대한 완결판이라고 할 수 있는 이번 책에서 일본의 오래된 가게들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싶었다”면서 “오래된 가게들의 상도 DNA가 일본 중소기업과 대기업으로 이동했다고 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일본의 상도》는 경제대국 일본이 가진 경쟁력의 핵심은 일본의 상도라고 강조하는 책으로서, 우리에게 ‘프로 장사꾼’으로 가는 지름길은 무엇인지, ‘프로 장사꾼’이 되기 위한 대안은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 있는 참고서이고, 경제대국 일본의 정신과 문화를 배우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