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행복한 명절
                                                                                논설위원 김노금

올해도 어김없이 나는 가을을 탄다.

한 여름의 무더위에 지쳤던 심신이 참 평안해 지는 때임에도 쉽사리 잠을 이루지 못하고 까닭모를 아픔에 한 밤을 지새우는 날이 많아졌다. 결혼 이후 30년이 다 되도록 해마다 가을이 시작되면서 어김없이 앓게 되는 이 병의 근원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생각해 보다 이제야 비로소 내린 결론이 있다. 이 계절병은 결혼 이 후 해마다 가을이 되면 몸과 마음이 먼저 반응을  했다.

▲ 논설위원 김노금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하기 그지없고 참 씩씩하기도 하여 무슨 일에도 몸을 사리지 않고 제 몫 을 감당해냈던 큰 며느리였지만 친정과 여러모로 다른 풍습과 문화에 존재감 이라곤 도무지 찾을 수 없던 처지가 견딜 수 없었나 보다. 또한 명절 내내 한시도 쉴 수 없이 끝없이 이어지던 음식 장만과 상차림 등의 힘겨운 노동이 서럽고 서러워서 추석 명절 한 달 전부터는 그저 시름시름 앓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감당해야할 상황이 바뀐다거나 몫이 줄어든 것도 아니건만.....,남편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한 가정의 장남 노릇을 하느라 30년을 한결같이 모르쇠 표정에 소 닭 보듯 하면서 자기 아내를 허가 낸 파출부쯤으로 대하는 듯 무심한 남편이 너무나 섭섭해서 울고 또 울고 가슴앓이를 해야 했던 세월이었다. 며느리 노릇 30여년이면 이제 그 정도는 털고 일어나야 하는데도 나는 또 다시 가을과 함께 찾아온 이 병을 앓으며 떠날 곳도 없으면서 어딘가로 도망가고 싶은 충동에 소스라친다.

시댁과 친정이 거리상으로는 겨우 10리 남짓인데도 각기 다른 가풍과 문화의 차이를 극복한다는 것이 이렇게도 힘든 일일 줄이야...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문득 다문화 여성들을 생각 해 본다. 저들이 사랑하는 부모 형제를 떠나 낯선 이국땅에 와서 겪는 피맺힌 아픔과 서러움은  얼마나 큰 것일까. 모두가 즐거워하고 부모 형제를 찾는 명절에 얼마나 자신들의 고향이 그리울까.  남편 하나 의지하고 언어도 문화도 전혀 다른 이 땅에 와서 매 순간 순간마다 마주해야 했던 아픔과 차별 대우는 얼마나 견디기 힘든 것이었을까. 시댁의 냉대와 성숙하지 못한 남편의 처신으로 인해 저들이 받았을 상처를 생각하니 가슴이 저려 온다.

9월초 출판사와 신문사에서 동시에 다문화 가정을 대상으로 한 동화를 써 달라는 제의를 받았는데 다문화 가족에 대한 관심이 점점 늘어가고 있는 추세에 발맞춰 그들에게 용기를 북돋는 내용의 글을 써 달라는 주문이었다.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아무 생각 없이 상처와 모욕감을 주는 우리들의 모습을 되돌아보고 반성의 기회로 삼는 그런 내용이었으면 더욱 좋겠다는 주문에는 늦었지만 다행스런 마음이 들었다.

아이 울음소리가 사라진 농촌에 활력을 불어 넣어주고 우리가 모시지 못하는 부모님들의 아들 며느리가 되어 주면서 또 하나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결혼 이민자들은 우리 시대의 귀한 가족이요 일꾼들이자 소중한 이웃이 아닐 수 없다. 다문화 사회에 들어선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필리핀, 베트남을 비롯해 중국, 태국, 우즈벡, 캄보디아, 일본 등으로 7,8개국의 국적은 기본이고 이제는 인도, 대만, 스리랑카, 네팔 등 날이 갈수록 다양한 국적의 이민자들이 늘어만 가는 추세이다.

가까운 광주만 해도 20여 개국에 1만2천명 정도의 다문화 여성들이 살고 있고 해마다 많은 외국인들이 정착해가는 추세이지만 정작 각종 적응 프로그램들과 지원시스템은 너무나 부족하고 열악한 형편이어서 안타깝다. 급증하는 다문화 가족들에 대한 이해와 배려보다는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시하고 비하하는 것은 정말 부끄럽고 못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만인이 보는 앞에서 술 취한 승객에게 입에 담지 못한 언어의 폭행이나 손찌검을 당해야하고 정당한 돈을 내고 탄 택시기사에게서 조차 의례 들어야 했던 반말 ......., . 광주의 한 대학에서 영어 강사로 활동하며 우리나라 여성과 결혼하여 중학생과 초등학교의 자녀를 키우고 있는 한 인도인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그는 15년간 우리나라에 살면서 당한 모욕과 설움에 몸을 떨었다.

귀화를 했기 때문에 신분상으로도 어엿한 대한민국 국민이고 우리들 남도사람보다 더 유창한 사투리에 식성까지 똑같은데도 피부색 하나 다르다는 이유로 매일 매일을 조롱과 무시 속에 살아야 했단다. 저들을 보기가 너무나 미안하고 부끄럽다. 외국인 중에는 노동자도 있지만 대학교수 IT인력, 금융관계 종사자등 우리 보다 훨씬 고급인력이 많다. 그런데도 피부가 다른 이들을 대할 때 야! 라고 반말을 하거나 돈 얼마나 벌었냐? 라고 비아냥거릴 때 그들이 영어로 대답하면 다시 또 돌변하여 수굿해지는 한국인을 볼 때 또 다른 씁쓸함을 느꼈다고 한다. 이 모두다 우리들의 부끄러운 자화상 들이다.

이제 민족의 대 명절 추석이 열흘 남짓이다. 며느리의 아픔과 이민 여성들의 탄식을 조금씩 조금씩 헤아려보는 성숙함으로 추석을 맞이하고 진정으로 저들과 하나 되고 가슴을 열어 모두가 함께 행복 할 수 있는 명절이었으면 정말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