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조계종의 큰 어른인 경남 하동 쌍계사 조실 고산(76) 스님이 60 여 년 수행과정 이야기를 엮은 회고록 《지리산의 무쇠소》를 펴냈다.

이 회고록은 고산 스님이 출가해 60여 년 간 수행하며 겪은 이야기를 적은 책이지만 행간 곳곳에는 스님이 출가한 1940년대부터 수행 60년이 되는 2000년대까지 절집 풍경과 수행자들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스님은 고희를 넘긴 나이에 손수 집필한 편지지 1,600장 분량의 회고록에 한평생 해온 수행과 포교 이야기를 담고 있다. 회고록에는 어린 시절부터,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를 만나고 싶어 스님의 된 출가의 사연과 승려생활을 하면서 겪은 온갖 일들이 진솔한 언어로 담겨 있다.

당대의 선지식으로 손꼽히던 경봉 스님과 고봉 스님에게서 인정받은 일 등 수행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젊은 시절 어느 여인으로부터 구애를 받은 사연, 범어사에 쌀이 떨어져 신도들의 도움을 받으러 사방으로 돌아다녔던 기억, 경전이 흔하지 않았던 시절 ‘화엄경’ 한 질을 얻으려다 주먹을 휘둘러 절에서 쫓겨나는 산문출송(山門黜送)을 당한 일등 원로로서 부끄럽게 여길 수 있는 사연들까지 숨기지 않았다.

스님은 “많은 사람들이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산다. 일상생활에서 조금만 노력하면 행복을 얻으련만, 그러한 확신을 갖지 못한 채 방치하는 삶이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에 미력하나마 도움을 주기 위해 이 책을 쓰게 됐다”고 밝혔다.

스님은 2007년 여름 통영 연화사 암자인 보덕암에서 석 달 동안 홀로 머물며 회고록을 썼다고 한다. 한 자 한 자 써내려 간 육필 원고는 편지지로 1600장이 넘는 분량으로서, 그는 다른 어른 스님들처럼 구술만 하고 제자들이 녹취해 정리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는 대단한 집중력을 가진 스님으로 불교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젊은 시절에는 밤을 세워 공부하다가 곁에서 울리는 자명종 소리조차 듣지 못해 아침 공양을 놓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지금도 새벽 도량석에 맞춰 108배 올리는 것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있다. 별명이 ‘지리산 무쇠소’로 ‘황소고집’으로 유명한 고산 스님은 지금도 상좌들이 앞에서 시쳇말로 설설 길 만큼 불같은 성격이지만 그는 지금도 손수 농사를 지으며 지낸다.

스님은 원칙을 중요시해 총무원장으로 취임한 후 총무원 식구들에게 새벽 4시 예불에 꼬박꼬박 참여하도록 했다. 점심은 구내식당을 이용하도록 하면서 자신이 앞장 서 실천하는 언행일치의 모습을 보였다. 또한 그는 총무원장 선거 과정이 위법했다는 법원 판결이 나오자 곧바로 걸망을 매고 쌍계사로 내려와 종단 분란의 소지를 없애버리는 과단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특히 고산 스님은 출가 생활 60여 년 동안 강사(講師)와 율사(律師), 선사(禪師)를 두루 지낸 독특한 이력을 가졌다.

대부분의 스님들이 교학을 가르치는 강사나, 계율을 가르치는 율사, 참선을 지도하는 선사 중 하나의 역할만을 하는 데 비해 고산 스님은 셋을 모두 겸비하여 승려생활을 해왔다.

고산 스님은 1945년 출가해 때로는 이판(수행하는 스님) 때로는 사판(행정을 보는 스님)으로 살았고, 이제는 조계종의 최고 어른 한 분으로 추앙 받고 있으며, 조계종의 원로의원이자 스님들의 면허라 할 수 있는 계(戒)를 수여하는 전계(傳戒)대화상(大和尙)으로 추대됐다.

한국불교의 장자 종단인 조계종의 최고 어른은 물론 종정이지만 이에 버금가는 지위를 가진 사람은 전계대화상이다.

근대와 현대를 잇는 한국불교사의 산증인이나 다름없는 고산 스님은 1934년 경남 울주에서 태어나 1945년 입산해 1948년 동산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1956년 동산 스님을 은사로 비구계를 받았다. 선교(禪敎)에 능통한 고봉 스님을 모시고 15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경전을 배워 강사가 됐고, 당대의 율사인 석암 스님으로부터는 율맥을 이었다. 조계사, 은혜사, 쌍계사 주지에 이어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냈다. “남에게 용서를 구하지 말고, 남을 용서할 줄 아는 사람이 되라”는 하는 고산 큰스님이 제자들에게 들려준 경책이 가슴에 와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