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뒤흔든 ‘개인’들의 리얼 드라마

《한국사傳》은 한국사를 뒤흔든 ‘개인’들의 드라마 같은 삶을 통해 역사 뒤집어 보기를 시도한 책으로서, ‘역사의 대중화’를 내세운 KBS 역사 다큐멘터리 〈한국사傳〉을 책으로 옮긴 것이다.

전통적인 역사서는 보통 기전체(紀傳體)로 구성된다. 기전체의 기(紀)는 황제나 왕 국가의 이야기다. 즉 사람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시스템의 이야기다. 전(傳)은 보통 열전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바로 역사 속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따라서 《한국사傳》은 황제나 왕, 국가를 다루는 시스템 이야기인 ‘기(紀)’가 아니라 역사 속 개인들의 휴먼스토리를 다루는 ‘전(傳)’에 주목하고 있는 책이다. 1권의 첫 주인공 홍순언부터 5권의 마지막 주인공 이순신까지, 우리가 잘 알지 못하거나 알고 있되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인물 중심의 이야기다.

1권은 임진왜란의 숨은 주역인 조선시대의 역관 홍순언, 조선의 무희에서 파리의 연인으로 1세대 근대여성의 길을 걸은 리진, 중국 속의 고구려 제왕 이정기, 세조의 킹 메이커 신숙주, 헤이그 밀사 이준, 사도세자의 아버지 영조, 시스템의 희생양이 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린 덕혜옹주, 김옥균을 쏜 최초의 프랑스 유학자 홍종우, 흑룡강을 제패한 나선정벌의 영웅 신유 등 찬란했던 기록의 왕조가 아닌 ‘사람’의 이야기로 시작하고 있다.

2권에서는 최초로 세계를 본 여성이었지만 비극적인 최후를 마친 소현세자빈 강씨, 「토정비결」의 저자로 알려졌으며 기인의 면모보다는 실용 경제가의 자질을 보였던 이지함, 뛰어난 외교술로 삼국통일의 주역이 된 김춘추, 아무도 감히 직언을 할 수 없었던 시절 연산군에게 직분을 다하다가 죽임을 당한 내시 김처선, 세계 최강 몽골군을 무찌른 고려 장군 김윤후, 국익을 위하여 누구 하나 손대기 싫어했던 삼전도 비문을 작성했던 이경석 등 어려웠던 시대 자신의 안위보다는 국가라는 전체를 위해 일했던 인물들이 살았던 시대와 그들의 고민을 선명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 외에 무인 정조, 수사관 정약용처럼 유명 인물들의 잘 아려지지 않은 비화들도 소개하고 있다.

기록아래 숨겨진 또 다른 역사의 숨결을 더듬는 3권에는 새로운 조선을 꿈꾼 천재 여류시인 허난설헌, 세조부터 성종까지 조선의 세 임금과 운명을 같이한 정희왕후, 민생군주와 악성으로서의 세종, 기축옥사 피바람의 주인공 송강 정철, 임란 최초의 의병을 일으킨 홍의장군 곽재우와, 조선에 천주교의 문을 연 광암 이벽, 한민족 최초의 해외원정을 단행한 대조영의 아들 대무예와 한반도 역사상 가장 광대한 땅을 다스렸던 대조영의 손자 대흠무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4권에서는 우리 왕실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바르게 평가되지 못한 인물들을 재펑가하고 있다. 사대주의를 버리고 실리를 추구하다가 신하들에 의해 폐위된 ‘폐주’ 광해군, 1400년 동안 땅 속에 묻혀 있던 유물과 일본 고대 기록을 통해 다시 만나게 되는 백제왕 창, 남편이 죽은 날 밤에 시동생과 정혼하여 두 번 왕후가 된 고구려 여인 우씨, 왕실의 정치적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당나라의 지장보살이 된 신라 왕자 김교각 스님, 세도정치를 향해 예악정치의 칼을 빼들었던 춤추는 군주 효명세자, 원나라 공주를 사랑한 반원주의자 공민왕의 개혁 정치, 임금의 며느리이자 어머니, 할머니로 궁궐 안에서 숨죽여 살아야 했던 혜경궁 홍씨의 기록, 죽음 앞에서도 아들과 화해하지 못한 흥선대원군 등 여덟 명의 인물이 새롭게 등장한다.

마지막 5권에는 궁극의 가치를 위해 개인의 영달을 기꺼이 버렸지만 당대에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체 역사의 무덤 속으로 사라진 8명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홍역으로부터 조선을 구한말 명의 이헌길, 잊혀진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 암행어사의 전설이 된 박문수, 문화유산 지킴이 전형필, 혁명을 꿈꾸었던 자유주의자 허균, 역사가 지워버린 천재과학자 장영실, 최초의 여성 의병장 윤순희 등 오늘날 우리 역사가 바로 세워야 할 인물들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이처럼 《한국사傳》은 우리에게 왕조가 아닌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역사는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때 그 본질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간 한국사는 획일적 해석만이 횡횡했다. 하지만 《한국사傳》은 바로 이런 문제점들을 해소하며 그다지 주목받지 못해왔던 측면들을 통해 역사의 다양한 관점을 보여주고 있다.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