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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목사 이야기 22-김자행'6년 동안 탐한 재물 하루아침에 재가 되었다'
신광재 기자  |  sjs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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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호] 승인 2006.04.1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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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평안도 관찰사를 지낸 김겸광의 집에 불이 나 재물이 모두 타버렸다. 성종실록(成宗實錄)에 "김겸광은 재물을 탐하는 데 부끄러움이 없었으며 집 재산이 대단히 많았다"라고 적고 있어 불이 나기 이전에 재산이 상당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소식을 들은 전 나주목사 김자행이 김겸광을 위로하기 위해 찾아갔다. 망연자실해 있는 김겸광에게 김자행은 "영공(令公)은 한스러워하지 마오. 옛사람이 이르기를 백년 동안 탐한 재물 하루아침 티끌일세(百年貪一朝 )"라고 자못 기풍(譏諷)있게 말하였다. 그러나 김자행 역시 재물을 탐하는데 있어 김겸광 못지 않은 인물이었다.

성종실록 광성군 김경광 졸기에 "김자행도 역시 청렴하지 못한 이름이 있었다. 나주 목사(羅州牧使)가 되어 임기가 차서 돌아오려고 할 적에 관중(官中)의 재물을 모두 취하여 짐을 다 꾸려가지고 장차 실으려고 하는데 고을 사람이 미워하여 불을 질러 모두 불태우니, 어떤 사람이 기롱하기를, '6년 동안 탐한 물건 하루아침에 재가 되었다.[六年貪物一朝灰]'라고 하였으니, 이때 사람들이 명담(名談)이라고 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를 통해 김자행이 6년 동안 지방관으로 일을 했다는 얘기인데 그의 행적을 추적해보기로 하자. 그에 관한 실록의 기록은 세조 11년 이후 성종즉위년까지 3년동안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나주목 선생안에 세조 12년 3월 6일 도임해 1년 뒤 세조 13년 3월 16일 이임한 것으로 되어있다. 때문에 김자행이 6년동안 나주목사를 지냈다면 성종 3년까지이다. 그러나 예종 1년 이영견이 도임해 성종 2년에 이임하는 나주목사 선생안의 기록을 볼 때 이영견 앞까지, 즉 예종 1년 2월까지 나주목사로 임무를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

선생안에는 김자행이 이임한 이후 2년여동안 공백으로 남아 있으며, 실록 또한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점을 감안할 때 김자행은 아마 이영견 앞까지, 그러니까 약 3년여이라는 긴 시간 동안 나주목사로 있으면서 재물을 모은 듯 하다. 실록에서 6년이라고 한 데는 아마 나주목사로 오기전 성주목사 일한 임기까지를 합산한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수령의 임기는 1,800일, 약 5-6년으로 규정되어 있다. 임기 1,800일이란 수령이 한 읍(邑)에서 재직해야할 기간이 아니였으며, 몇 개의 읍에서의 재직이냐에 관계없이 수령으로 재직해야할 기간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지만 당상관 이상 수령의 경우는 900일로 제한하고 있다. 따라서 나주목사는 3년 이상을 넘길 수가 없었다.     

때문에 김자행이 6년 간 성주목과 나주목에서 목사 임기를 마치고 나주를 떠날 적에 그동안 모은 재물을 우마(牛馬)에 싣자 나주고을 백성들이 몰려와 불을 질러 모두 태워버렸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성주목사 시절 고문으로 자백 받아내
 
나주 사람들에게 봉변을 당하고 떠난 김자행은 나주목사로 도임하기전 성주목사로 있을 때  살인사건을 맡게되었다. 성주에 살고 있는 중(僧) 신운과 그의 이복동생 김적이 노비 소유권을 놓고 송사(訟事)를 벌이는 과정에서 서로 사이가 나빠졌다.

그러던 중 신운이 길거리에서 죽은 체로 발견되자 김자행은 이복동생 김적과 중 설경이 모의하여 신운을 살인한 것으로 여기고 금산 군사 윤홍과 함께 설경을 가혹하게 고문하였다. 이를 경상도 관찰사가 조정에 알리자 세조가 직접 의금부에 명하여 고문여부를 밝히게 하였다.

의금부 조사 결과, 김자행과 윤홍이 신운을 죽인 연유를 국문하면서 설경을 마구 때려 억지로 자백을 받아내게 하였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김자행과 윤홍이 파직되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나주목사로 자리를 이동한 김자행은 성종 3년 6월 29일 통정 대부(通政大夫) 이조 참의(吏曹參議)로 제수됐으며, 성종 7년에는 강원도 관찰사가 되었다.

관찰사로 부임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사위 신회가 강원도 안협 현감으로 부임되었다. 이를 계기로 김자행은 성종에게 상피(相避)제 규정을 들어 자신을 다른 곳으로 옮겨 줄 것을 청한다.

"일찍이 임명된 수령과 상피하는 경우가 있다면 수령을 맞이하고 보낼 때 백성들을 수고롭게 할까 염려스럽습니다. 때문에 관찰사인 저를 교체하여 백성들의 수고스러움을 줄이게 된다면 마땅히 교체되겠습니다."
 
그러자 성종은 "수령을 바꾸어 임명하는 것이 어찌 백성들을 수고롭게 하는 일이 없겠는가? 김자행을 바꾸어 임명하도록 하라"며 김자행의 청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사신(史臣)이 논평하기를, "김자행이 관찰사의 임무에 실수할까 두려워하여 일을 이와 같이 얽어서 아뢰었느니 듣는 자가 이를 비웃었다"고 성종실록은 적고 있다. 이후 경상도 관찰사로 자리를 옮긴 그는 성종 12년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로 임명되는 등 주요 요직을 두루 거쳤다.

                                                       상피제(相避制)           

고려·조선시대 일정한 범위 내의 친족간에 동일관사(同一官司)나 또는 통속관계(統屬關係)에 있는 관사(官司)에 취임하지 못하도록 하거나 혹은 청송관(聽訟官)·시관(試官) 등이 될 수 없도록 하는 제도(制度)이다. 어떤 지방에 특별한 연고가 있는 관리는 그 지방에 파견되지 못하게 하는 것 등도 이에 포함된다.
이 제도는 인정(人情)에 따른 권력의 집중을 막아 관료 체계가 정당하고 원활하게 운영되도록 하기 위한 필요성에 의해서 시행되었다. 따라서 시대마다 독특한 관료 체계의 조직·운영·특성 또는 친족 관계의 법제와 밀접한 관련 아래 구성, 운영되었다.
골품제(骨品制) 하의 신라에서 재상급에 속하는 최고위 관직에서만 부자간의 상피가 행해졌던 단편적인 사례가 발견된다. 그러나 상피제는 관료제의 발전과 표리 관계를 이루고 발전하였기 때문에, 성문화된 것은 고려와 조선시대였다.
고려의 상피제는 1092년(선종 9)에 제정되어 오복친제(五服親制)에 바탕을 두고 실시되었다. 적용되는 친족 범위는 본족(本族)과 모족(母族)·처족의 4촌 이내와 그 배우자로 규정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대성(臺省)의 경우 사돈 간에도 상피가 적용되었다.
고려의 상피제는 외족과 처족은 모제(母制)인 송나라 제도와 비슷했지만, 본족에 있어서는 그 적용 범위가 매우 축소되었던 점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적용이 잘 지켜지지 않았던 경우도 많았다.
조선시대는 신라나 고려에 비해 상피제의 적용 범위가 더욱 확대되었다. 관료제를 지향했던 사회였기 때문에 진골귀족의 신라나 이성귀족(異姓貴族)으로 구성된 고려의 귀족제 사회보다는 왕권의 집권화와 관료 체계의 질서확립 과정에서 권력 분산이 더욱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시대 상피제 규정은 세종 때에 성립되었다. 적용 범위는 고려시대와 마찬가지로 친족·외족·처족 등의 4촌 이내로 한정했으나, 법외(法外)에까지 확대, 적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또, 의정부를 비롯, 병권을 전장(專掌)하는 군사기관과 법을 다스리는 청송관(聽訟官)과 고시관(考試官) 등 거의 모든 관직에 적용되었고 고려시대에 비해 엄격히 적용되었던 점이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高麗史, 朝鮮王朝實錄, 經國大典, 朝鮮朝의 相避制에 대하여(韓相俊, 大丘史學 9, 1975), 高麗時代의 相避制(金東洙, 歷史學報 10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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