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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만명 희생시킨 ‘악몽의 최고 기획자’ 통해 시대모순 회부
‘킬링필드(Killing Field)'는 현대사에서 ’악몽‘의 다른 이름이다. 크메르루주가 정권을 장악한 1975년 4월부터 79년
1월까지 캄보디아 인구 700만명 가운데 150만명이 희생됐다.
상당수가 숙청 당했고 나머지는 질병, 강제노동, 기아로 사망했다. 지도자들의 정치적 야욕으로 단 한 번에 이토록 높은 사망률이 발생한
사례는 역사상 처음이다.
폴 포트(1925～98)는 이 끔직한 ‘악몽’의 다른 이름이다. 그의 기획은 극단적으로 과격했고 또 냉혹했다. 정권을 잡은 3년8개월 동안
250만명의 프놈펜 시민들의 지방으로 쫓겨났고 집산주의 정책으로 전 국민은 자유와 개성을 박탈당했다.
폴 포트와 크메르루주의 혁명이 극단으로 치닫은 이유는 무엇일까. 도대체 왜 ‘정의롭고 부유한 사회’를 향한 꿈이 ‘인류 최악의 참사’로
변했을까. 《폴 포트 평전》은 이 같은 의문에서 출발하는 책이다.
영국의 더 타임스, 이코노미스트의 해외 통신원 출신으로 국제적인 캄보디아 전문가인 필립 쇼트가 쓴 이 책은 평등주의 이상향을 꿈꾸던 폴
포트가 어떻게 인류 최악의 참사를 일으켰는지를 상세히 설명한다. 그러면서 현재 크메르루주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누온 체아, 키우 삼판,
이엥 사리 등 당시 정권 핵심 관계자들과 폴 포트의 관계를 조명한다.
특히 저자는 타인을 배려하던 젊은이가 어떤 과정을 거쳐 끔찍한 정권의 지도자로 변해 가는지 추적해 가면서 그가 어떻게 캄보디아를 도탄에
빠뜨리는 최고기획자가 되었는지 냉정하게 설명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 일의 기획자는 폴 포트만이 아님을 분명한 어조로 말하고 있다. 베트남이
없었다면, 미국이 베트남에서 전쟁을 벌이자 않았다면, 폴 포트도 킬링필드도 없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러므로 폴과 함께 같은 미래를 꿈꾼
캄보디아의 수많은 지식인과 더불어 서구 국가들, 특히 미국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대 참사로 기록될 캄보디아의 이토록 처참한 역사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시각을 냉철한 논리와 고증으로 드러낸다.
이 평전은 훗날 폴 포트로 불려지게 되는 살로트 소르의 일대기를 따라가는 형식을 취하지만 단순한 인물 전기를 넘어선다. 캄보디아의 비극이
어떻게 배태되고 진행됐는지를 캄보디아의 역사와 지정학적 위치, 종교와 문화, 정치·사회제도를 다각도로 분석했다. 나아가 자국의 이익에만 몰두했던
베트남 등 주변국가와 미·중·소 등 강대국과의 관계를 살피면서 캄보디아 현대사를 꼼꼼하게 되살려냈다.
저자는 폴 포트를 유머러스하고 지적이며 자신의 전재를 숨기려 한 신비주의자라고 소개하면서 혁명을 빨리 완수하겠다는 조급증, 적에 대한
무차별적인 가혹성 때문에 몰락했다고 지적한다. 즉, 당대 베트남파에 대한 철저한 숙청과 계급투쟁을 통해 정적들을 무차별적으로, 그것도 잔혹한
방법으로 제거하면서 사회전체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고, 이로 인해 점차 민심을 잃어갔다는 것이다.
필립 쇼트는 폴 포트의 이 같은 강경 노선이 스탈린의 병균에 감염됐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마치 스탈린이 수 차례에 걸친 숙청작업을 통해
그의 적을 솎아내 권력기반을 다진 것처럼 폴 포트도 그 같은 과정을 답습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스탈린처럼 장기 독재체재를 구축하지 못한 상태에서
대숙청이라는 무리수를 두었고 이 과정에서 논리적인 일관성도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에서 폴 포트의 몰락은 이미 예견되었다고 그는 해설한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저자가 수집하고 동원한 자료에 있다 하겠다. 크메르루주 지도부의 여러 생존 인물들과의 심층 인터뷰를 비롯하여
공개되지 않았던 중국, 프랑스, 러시아, 베트남 등의 기밀문서 등, 다양하고 생생한 자료를 통한 접근은 아시아의 역사를 꿰뚫는다.
더욱이 이 책은 단순히 킬링필드와 크메르루주의 악마성을 규탄하고 단죄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런 비극이 어떻게 배태되고 진행되었는지를
다각도로 해부해내고 있다. 폴 포트를 위시한 주변 핵심인물들의 과거와 현재를 담은 50여 컷의 사진 역시 생생한 이해를 돕는다. 캄보디아 전역을
킬링필드로 만들었던 비극의 역사를 냉철한 시각과 철저한 고증으로 해부해낸 책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