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으로 내려오면서 귀래시 지어

계동소와(溪東小窩) 귀래정(歸來亭)의 주인이었던 정심(鄭諶)을 보면 앞에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임진왜란 때에 제봉(霽峯) 고경명과 건재(健齋) 김천일 등의 의병을 일으켰던 나주의 인물이다.

그는 눌재(訥齋) 박상의 문인으로 호는 일헌(逸軒) 또는 일옹(逸翁)인데 스스로 곡구선생(谷口先生)이라고도 하였다.

곡구기(谷口記)에서 스스로 이르되, ‘옹자호곡구선생(翁自號谷口先生) 이기복거재천곡지구(以其卜居在川谷之口) 재암수석지기굴야(再岩水石之奇窟也)’라 함은 산수 좋은 천곡(川谷)의 입구에 자리잡고 살면서 스스로 지칭하여 곡구선생(谷口先生)이라 한 뜻을 밝힌 것이다.

다시면 신덕리에 있는 창주정(滄洲亭)의 주인인 정상(鄭詳)의 형으로 이 형제는 다함께 문장(文章)과 충(忠)으로 알려진 나주의 인물이었다.

나도천(羅燾泉) 등이 편찬한 『나주군지(羅州郡誌)』의 문장편을 보아도 역대 나주문장가 73인 중에 이 형제가 끼어 있다.

일헌(逸軒)이 노친을 모시고자 하여 벼슬길을 사귀(辭歸)하고 고향으로 돌아 올 때에 지은 귀래시(歸來詩)는 앞에서 이미 소개한 바와 같이 그때 호연(浩然)히 남쪽 고향으로 오면서 제작한 귀래사(歸來辭)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중류(中流)에서 노를 잃었구나.
남과 북 어디를 먼저 가잔 말인고.
향리(鄕里)의 곡구(谷口)를 찾아 나귀를 재촉하니
옛 걷던 길은 의연(依然)도 하다.

귀래시와 함께 7언절(言絶)의 귀래정제영(歸來亭題詠)에도 고향으로 돌아와 유유자적하는 자신의 모습을 시로 그리면서 서울에 있는 임금을 위한 마음을 충(忠)으로서 잘 나타내고 있다.

금성산(金城山) 밑에 자리잡은 향리(鄕里)를 찾아
전원(田園)을 가꾸고자 하던 옛 꿈을 이루었다네.
맑은 물에 씻은 마음 속정(俗情)을 끊고,
반겨 주는 곳이 산수의 흥(興)이 감도는구나.
임천(林泉)의 즐거움도 임금님의 은혜로니,
헐뜯거나 시의(時議)엔 상관치 않네.
늙은 몸 부추기고 사에 오름은 북향(北向)하여
장안을 보고자 함인데, 님 그려 흘리는 눈물 그 누가 아랴.

일헌(逸軒)은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염두하고 이처럼 전원생활의 흥으로 나날을 보냈다.

그러면서 누정이나 산에 오르면 시흥(詩興)을 좇아 읊조리며, 옛 신하(臣下)들이 갖는 우국(憂國)의 애정(愛情)을 갖고 임금을 그렸던 것이다.

그에게는 또 곡구(谷口)에 있는 풍정(楓亭)에 노닐면서 제작한 시도 있다. 은행나무 정자는인 풍정은 중종대에 학행(學行)이 뛰어나서 왕자사전(王子師傳)을 지냈던 죽오당(竹吾堂) 김건(金鍵)의 정자인데, 이곳 역시 일헌(逸軒)이 소요지처(小搖之處)로 삼기도 하였다.

그는 곡구기(谷口記)에서 이르기를 외가(外家)의 종 남편이 표해(漂海)하다가 생환(生還)하였는데, 그의 고생담을 듣고 감탄한 나머지 풍정이 있는 냇가에 임하여 물을 두고 제작한 시라고 했다.

귀래정제영에는 또 진경문(陳景文)과 정우조(鄭遇祚) 등의 시가 있다. 그중 진경문은 학행(學行)이 뛰어나서 음사(蔭仕)로 선조대에 정랑(正郞)을 지냈던 나주 사람이다.

임진왜란 때에는 의병을 일으켜 김천일과 함께 활동하였고, 정유재란 때로 유특경(柳特敬)과 의병을 모집하여 순천에서 공을 세웠던 충신이다.

그의 아버지 담호(淡湖) 또한 『나주군지(羅州郡誌)』에 역대문장가의 한 사람으로 들고 있다. 그의 귀래정제영은 곡구(谷口)에서 정사(精舍)를 경영하는 일헌선생의 풍류를 두고 지은시다. 이 시의 제목은 ‘곡구정사추감일헌선생(谷口精舍追感逸軒先生)’이다.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