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연수, 그가 들려주는 길에서 만난 사람과 문학 이야기!

1999년 도쿄부터 2007년 미국의 버클리까지, 국경과 경계를 넘어 길 위에서 만나는 문학과 삶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쓴 소설가 김연수의 산문집이다.

제목과는 달리 이 산문집은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다. 여행의 경험을 문학적인 고민과 삶에 대한 질문으로 연걸 시킨 결코 가볍지 않은 사유(思惟)의 세계가 잔잔하지만 밀도 있는 문장에 녹아들어 있다. 근래 보기 드문 산문의 맛을 선사하고 있는 작품인 것 같다. 여기에 생생한 여행현장과 현지인들의 삶의 기록, 문화적 차이와 문학적 고민을 재기 넘치게 풀어놓은 12편의 글들은 단편소설 못지않은 재미를 준다.

이 책은 김연수가 여행자를 얽어매는 온갖 관계의 망으로부터 빠져나가 지난 10여년간 자연인이 돼 일본과 중국, 미국 러시아를 여행한 기록들을 묶었다. 허나 그의 여행은 이국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이나 방랑에서 비롯된 여행이 아니다. 소설 쓰기를 위한 취재여행, 작가 교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체류했던 여행의 경험 속에는 어느 여행 산문집보다 생생하게 지금 그곳을 살아가는 당대인들의 삶이 녹아 있다. 2004년 10월 러시아와 중국을 밥 먹듯 오간 조선족 이춘대씨를 따라 우여곡절 끝에 국경을 넘는가 하면, 아버지의 고향인 일본 나고야 근처의 다지마를 찾아가 대동아 전쟁 당시 노역으로 인해 제대로 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조선인 소년들의 현실을 확인하다.

이 책을 보고 있노라면 그의 산문이 풍기는 담담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섬세하면서도 문학적 감수성이 넘치는 문장이 여전하다. 그는 또한 곳곳에서 사라진 예술가들의 삶과 그들의 예술세계를 목도한다. 중국 용정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의 기수였던 작가 차학경과 시인 윤동주를 만나고, 미국 버클리에서는 1900년대 초반 도미해 한국문학의 번역에 앞장서고 자전적인 영문소설 ‘초당’으로 문학성을 인정받은 강용홀의 문학과 삶을, 그리고 중국 후자좡에서는 일본어로 소설을 써서 아쿠타가와 상 후보가 됐던 ‘노마만리’의 작가 김사랑을, 일본의 도쿄를 찾았을 때는 1937년 도쿄제국대학 부속병원에서 28세로 숨을 거둔 천재 작가 이상(李箱)을 떠올린다.

이 산문집은 여러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어떤 부분은 굉장히 재미있다. 웃음을 머금게 하기도 한다. 어떤 부분은 어려웠고 천천히 다시 곱씹어 가며 읽어봐야 했다. 하지만 이 다시 읽어보는 부분들이 더 좋다. 그리고 더 기억에 남는다.

돌아올 현실이 존재하는 한 여행은 영원히 모든 사람들에게 꿈이며 환상이고 향수이고 추억이다. 정착생활 이전의 인간생활은 정처 없는 ‘떠돎’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근원적으로 ‘저기-멀리’를 동경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간은 그렇게 생래적으로 미지의 세계에 대한 환상과 그리움을 가지고 태어났을 것이다.

이 산문집의 제목 《여행할 권리》가 뜻하는바, 누구든 어디든 떠나야할 권리가 있다는 말은 곧 작가에게 있어서는 국경을 넘고 상상력을 확장시킬 권리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통제와 금기를 넘고, 익숙한 일상을 벗어나 훌쩍 떠남으로써 또 다른 새로운 나를 찾고, 전혀 다른 나를 찾는 귀한 경험의 시간이 바로 여행이 아니겠는가.

특히 이 책은 대한민국, 그러니까 우리의 현실 밖에서 생활하면서 겪고 느낀 산문집으로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여행과는 거리가 좀 있다. 

잠시 현지를 돌아보는 이야기나, 스치듯 낯선 곳의 감상과 여정을 적어놓은 책이 아니다.

물론 그런 부분이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독일과 중국, 미국, 일본을 통해 길어 올린 작가의 내면의 풍경들이다. 보통의 여행기와는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으며, 이야기가 있고 명확한 메시지가 있는 대목들이 좋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화려하고 거리가 먼 여행지가 아니라도 가까운 곳을 어슬렁거리며 이런저런 상념의 시간을 갖는 것도 충분히 여유로운 여행이라는 사실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사변적인 여행기나 정보만 난무하는 여행서가 지루한 독자들이나, 산문의 즐거움에 관심 있는 독자들이라면 일독할 만한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