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시대를 풍미한 두 천재 화가의 삶과 예술

요즘 문화계를 통틀어 가장 주목받는 이는 단연 조선 후기의 풍속화가 혜원 신윤복이다.

신윤복이 이렇게 문화 아이콘으로 떠오른 것은 그의 생애가 갖는 파격적이면서도 미스터리한 매력 때문이다. 그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전해지는 기록이 거의 없다. 저속한 그림을 즐겨 그리다 도화서에서 쫓겨났다는 기록정도다. 정말 화원이었는지도 불분명하다고 한다.

이번 주에 추천하는 《바람의 화원》은 그를 모델로 한 팩션 소설로서 조선 화단의 혁신적 화풍을 이끈 두 천재 화가, 김홍도와 신윤복의 삶과 예술을 그린 장편소설이다.

현재 인기리에 방영중인 SBS의  ‘바람의 화원’도 이 장편소설을 드라마로 옮긴 것이다.

그림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으나 자신의 의지대로 살 수 없었던 신윤복, 최고의 화원이었으나 제자인 윤복과의 만남으로 흔들리는 김홍도, 부친인 사도세자의 죽음으로 슬픔을 간직한 젊은 왕 정조, 부와 권력에의 야심 때문에 아들마저 희생시키는 화원 신한평, 자신의 영달을 위해 무슨 일이든 서슴치 않는 시전 행수 김조년, 그리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껴안고 사는 기생 정향 등 역사 속의 인물들이 눈앞에 펼쳐질 듯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여기에 그림 속의 비밀을 풀어나가는 작가의 놀라운 추리력과 탄탄한 구성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마지막까지 독자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최고의 화원이 어떻게 역사 속에서 완벽하게 사라질 수 있을까? 천재적 재능을 지닌 그가 왜 도화서에서 쫓겨났을까? 그는 왜 항상 여인을 화폭에 담았을까? 신비로운 미소의 ‘미인도’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작가는 단 두 줄의 역사적 기록을 바탕으로 화석처럼 오래된 그림에 소설적 상상력을 불어넣어 그 속의 인물들을 생생하게 되살려냈다. 여기에 두 천재 화가의 만남과 이별, 그리고 예인으로서의 모든 것을 건 대결이 작가 특유의 빠른 속도감과 아름다운 문장으로 펼쳐진다. 더욱이 이 소설은 그를 아예 남장 여자로 설정하고 스승인 단원 김홍도와의 사이에 동성애적 긴장감마저 불어넣어 주고 있다. 두 사람의 그림을 통해 서민의 생활상을 보고 싶어 한 정조가 그들을 후원하고 화제(畵題)를 주었다는 설정도 곁들인다.
물론 신윤복은 호가 있으니 당연히 남자고, 화풍에서 동시대 선배인 김홍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게 정설이다.

소설은 '조선의 르네상스'라 불리는 18세기 후기의 상황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도화서 생도청, 육조거리 대장간과 종이공장, 골목길과 우물가의 여인들, 시전거리와 빨래터, 그림 애호가들의 그림 수집과 대결 등 조선 사람들의 일상과 숨결까지 생생하게 되살려 낸다.

그리고 수백 년을 이어온 도화서 양식과 인간적인 본능에 충실한 새로운 화풍의 대립, 흑과 백으로 상징되는 전통 수묵화와 화려한 채색화의 충돌, 새로운 색을 찾는 장인들의 눈물겨운 고행, 맨손으로 거대한 부를 일구고 천재화원을 후원하는 신흥부자의 욕망, 도상학과 제지법 등의 미술사적 지식이 두 천재 화가의 그림만큼이나 감동을 준다.

특히 궁중화원으로 활동하며 당대에 이름을 떨친 김홍도에 비해 신윤복의 생애에 대한 기록은 전무하다. 단 두 줄의 기록만을 남기고 역사에서 사라진 신윤복, 베일에 쌓인 그의 삶과 그림의 미스테리를 밝히고 있다.

이 소설에 수록된 혜원전신첩에 실린 신윤복의 풍속화 22점과 단원풍속도첩에 수록된 10점의 오리지날 컬러 도판은 색다른 재미를 준다. 김홍도와 신윤복의 대표적인 풍속화로 당시의 사회상을 생생히 엿볼 수 있으며 소설의 내용과 직,간접으로 관련이 있어 훌륭한 삽화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이다. 《바람의화원》은 김홍도와 신윤복의 삶과 예술을 그린 예술소설이지만 그들의 풍속화처럼 조선의 뒷골목을 그대로 드러내는 생생한 풍속소설이기도 하다. 또한 역사와 예술작품을 작가의 독특한 상상력으로 재 탄생시킨 예술소설이라는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시대를 앞서간 불운의 군주라는 평을 받았던 정조의 또 다른 일면을 볼 수 있어 흐뭇했던 책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