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게, 강하게』

제대로 하는 사람을 두고 웃음거리로 삼는 사회라면, 정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한 텔레비전 오락 프로에 나온 재미동포 연예인의 말에 다른 출연자와 관객들이 박장대소한 일이 있었다. 그 재미동포는 "[버스]를 타고..."라고 했을 뿐인데 말이다.

하도 많은 사람들이 [뻐스]라고 부르다 보니 이젠 [버스]라는 말이 되레 어색하고 이상해 보이는 뒤바뀐 우리 현실이 그대로 드러난 장면이었다.

'교과서' 역시 수난이다. [교과서]라고 제대로 읽는 사람은 거의 없이 대개는 [교꽈서]라고 하고 또는 [교까서]로도 읽으니 교과서 보기가 민망하다.  그래도 이 말들은 글에서는 '버스, 교과서'로 적히기나 하니 '재떨이, 먼지떨이'나 '강소주, 강술'에 비하면 사정이 나은 편이다.

먼저 '재떨이'와 '먼지떨이'. 말을 더 세게, 강하게 하려는 심리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재털이] [먼지털이]로 소리내는 것은 물론, 종종 '재털이, 먼지털이'로 적기까지 한다. 하지만 달려 있거나 붙어 있는 것을 쳐서 떼어 내는 일은 '떨다'로 쓰기 때문에 '재떨이, 먼지떨이'로 읽고 써야한다.

쉽게 말해 옷에 먼지가 묻어 있다면, 묻어 있는 먼지는 떨고 먼지가 묻은 옷은 털어야 한다.

'강소주'나 '강술'도 마찬가지. [강소주], [강술]로 제대로 소리 내는 사람이 드문 것은 물론 '깡소주, 깡술'로 쓰는 사람마저 많다.  하지만 다른 것이 섞이지 않았다는 뜻의 접두사는 '강-'이므로 '강소주, 강술'로만 써야 한다.

건더기를 별로 넣지 않고 된장을 많이 넣어 되직하게 끓인 된장을 '강된장'이라고 하지 '깡된장'이라고는 하지 않는 것을 생각한다면 별로 헷갈리지 않고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

한데, 세고 강하게 발음하려는 경향이 만들어 낸 이런 현상의 바탕에 혹시 모호하고 불확실한 시대에 대한 불안감이 깔려 있는 것은 아닌지….

(이진원의 '우리말에 대한 예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