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필수 외과의원 원장
                                                                 필 엔터테인먼트 대표

한달전 식물인간 상태에 있는 70대 환자의 가족들이 환자가 더 이상 의학적으로 회생이 불가능하니 존엄사할 수 있게 해달라며 병원과 의사를 상대로 낸 가처분 신청이 법원에서 기각을 당했다.

이번 가처분 신청은 존엄사의 허용에 대한 법원의 공식 판단을 요구한 최초의 판례란 점에서 많은 사회적 관심을 끌었다.

사실 가족 중에 의학적으로 전혀 회생 가능성이 없이 뇌사 상태로 인공호흡기에 의존한 채 하염없이 중환자실에서 입원치료중인 환자가 있다면 계속 치료를 해야 할 것 인지, 아님 포기해야 할 것인지 많은 갈등을 겪을 것이다.

각종 여론조사들에서 보면 대부분의 국민들은 존엄사(연명치료 중단)를 지지하고 있지만, 법원은 끝내 소극적인 태도를 견지했다. 하지만 이것으로 논란이 끝난 것은 아니다.

이번에 소를 제기한 가족들은 가처분 신청과 별도로 ‘입법부작위’ 위헌확인을 구하는 헌법소원도 청구해 놓은 상태이다. 입법부작위란 입법기관이나 행정부에서 국민의기본권 보장 등을 위해 법을 제정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만들지 않는 것을 말한다.

가족들은 “ 존엄사에 대한 법률이 제정되지 않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평등권, 자기결정권, 재산권, 보건권등을 침해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미지수다.

필자의 시각에서는 ‘환자 자신이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환자가 그것을 원하고 있느냐 라는 점이다.

현재 우리 나라의 상황은 환자가 원하는 연명치료 중단에 대해서 국가에서 의료진을 보호해 주지 않기 때문에 의사는 본능적으로 방어 진료를 하게 되고 이에 따라 환자는 불필요한 경제적, 육체적인 고통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쉽게 말하면 환자나 가족들의 상황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연명치료 중단은 불법이므로 환자의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하염없이 고통을 겪어야 된다는 말이다. 의료진 또한 환자의 의학적 회생 가능성이 0%임에도 불구하고 문책이 두려워서 임의적으로 치료를 중단할 수 없다.

2004년 서울대학 부속 보라매 병원사태에서 보듯이 환자가 뇌사 상태이고 가족들이 원해서 인공호흡기를 떼어 냈음에도 불구하고 의료진들에게 살인죄를 적용 유죄 판결을 내렸다.

이로 인해 한동안 의료계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키면서 의료진들은 더욱더 방어적인 진료를 견지하게 되었다. 따라서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법제화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이를 논할 때 문화적 차이를 고려해 속도를 조절하는 게 바람직할 것 같다. 자칫 잘못하면 환자 자신의 결정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상태에서 연명치료 중단(존엄사) 등이 법적으로 허용 돨 경우, 원하지 않는 사람이 압력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기 떄문이다.

또한 ‘뇌사’에 대한 명확한 정의도 빠른 시일 내에 이루어져야 한다. 국가에서 뇌사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해 주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와 관련한 무의미한 치료가 발생, 이로 인해 한정된 의료자원이 낭비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번에 소송을 제기한 가족들 외에도 수많은 가족들이 비슷한 상황에서 많은 고통을 겪어 봤거나, 고통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나 국회가 관련 법률의 제정을 차일피일 미뤄온 것은 어떻게 보면 직무유기다.

하루 빨리 정부나 국회가 나서서 존엄사에 대한 법률을 만들어야 한다. 부작용이 우려된다면 이번 판결문에 적시된 것처럼, 환자 본인의 의사를 확인할 수 있는 절차와 규정을 만들고 회복가능성 유무를 합리적으로 판정할 수 있는 절차와 규정을 만들면 된다고 본다.

가장 보수적이라고 할 수 있는 로마교황청조차도 28년 전에 이미 환자의 존엄사에 대한 권리를 인정한 바 있다. 이미 수많은 선진국들이 존엄사에 대한 법령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으며, 특별히 문제점이 드러난 경우는 거의 없었다.

모든 분야에서 환자의 선택권이 점점 더 중요시되는 세계적 경향과도 합치한다. 국내에서도 존엄사를 결코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썩 많질 않다.

우리나라도 더 늦기 전에 사회 각계각층의 전문가들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여 존엄사에 대한 법령을 만들어서 더 이상 환자나 그 가족들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경감시켜 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