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리는 프랑스어, 파리는 한국어』

영화관 나들이를 하며 이것저것 살펴봤다. 가장 먼저 보이는 간판이 <애프터 썬셋>인데, '썬셋'은 '선셋'이었더라면 좋았겠다. 일반적으로, 외래어 표기에서 된소리(경음)를 쓰지 못하게 한 것은 우리가 편하자고 한 일이다.

외국어 파열음이나 마찰음은 언어에 따라 우리말의 된소리에 가까운 것도 있고 거센소리(격음)에 가까운 것도 있는데 이것을 모두 살려서 표기를 하려면 규정이 복잡해지고, 원칙을 정하기도 어려운 데다, 우리가 일일이 기억하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원칙이 이런데도 "프랑스에서는 '빠리'라고 하는데 우리 표기법은 왜 '파리'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파리'는 프랑스어가 아니라 한국어, 그중에서도 '외래어'이다. '외래어'는 '외국어'가 아니라 이미 편입된 우리말인 것이다.

그러니 프랑스 사람들이 '빠리'로 쓰건 '뽜리'로 쓰건 그건 그 사람들 사정이고, 우리는 그냥 우리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파리'로 쓰면 그만인 것이다. '썬셋'도 그래서 '선셋'이래야 옳았다. 물론 '해넘이'나 '일몰'이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웰컴 투 동막골>에서는 늙은 인민군 전사 임하룡이 국군을 가리켜 '괴뢰군'이라고 한 장면이 눈길을 끌었다. <...동막골>에는 여러 미덕이 있는데, 우리가 고유명사처럼 써왔던 '괴뢰군'이라는 말이 사실은 일반명사임을 상기시켜 주는 이 장면도 아주 인상 깊었다.

<박수칠 때 떠나라>에서는 '박수칠'에 주목한다. '박수치다'는 원래 '박수하다'로 써야 한다. 하지만 『표준국어대사전』에도 '박수를 치다'라는 예문이 실릴 정도로 이제는 '박수치다'가 널리 쓰이므로 따따부따하기에는 늦어 버렸다.

이럴 때 보면 말은 확실히 '머릿수 싸움'이다. 사족 하나. 이 영화 중간 중간에 나온 소제목 가운데 '전설傳設'은 '傳說'이 옳다. '傳設'은, 옛날 우리 신문들이 한자 쓰기를 좋아할 때 많이 틀리던 말이다.

(이진원의 '우리말에 대한 예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