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트는 무국적 말』

태풍 민들레가 소멸되었다며 "다음 태풍도 장미, 국화, 채송화 이렇게 꽃으로 이름 지으면 중간에 없어지지 않을까요?"라던 MBC 최일구 앵커의 맛깔스러운 말을 모은 사이트 이름이 <최일구 앵커 멘트 모음>이다.

인터넷 검색을 하다 보니 '정은임 아나운서의 FM영화음악 오프닝 멘트'를 모은 사이트도 보인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벌써 알아챘을 텐데, 문제가 되는 말은 '멘트'다.

영어 '아나운스먼트(announcement)'나 '코멘트(comment)'를 줄인 말 같지만, 이런 말은 어느 영어 사전에도 없기 때문이다. '멘트'의 국적은 대한민국이라는 설도 있고, 일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하여튼 국적과는 상관없이 우리 주변에선 '멘트'가 넘치고 넘친다. '방송 멘트, 성우 멘트, 앵커 멘트, 사회자 멘트, 홍보 멘트...' 에다가 '작업용 멘트, 닭살 멘트, 엽기 멘트'도 있다.

이쯤 되면, '사회자나 진행자가 하는 말'이라는 처음 뜻에서 이제는 '모든 말'이란 뜻으로 의미마저 확대돼 쓰이는 셈이다. 우리말로 그냥 '말'이라 하면 좀 싱겁나?

대부분의 국민이 해당 멘트를 듣고 특정한 사람을 연상할 정도의 말이라면 넓은 의미의 저작권으로 인정해야 한다.

'김제동 어록' 판매금지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인 서울서부지법의 결정문 가운데 일부다. 이제 법원에서도 썼으니 '멘트'가 법률적으로는 인정을 받은 셈이 되는가?

게다가 이걸 또 어느 신문은 「법원 '김제동어록' 판금 결정/독특한 멘트도 저작권 인정」이라고 크게 보도했으니 언론 역시 인정을 한 셈이기도 하고?

가만히 보면, 우리말 잘못 쓴다고 연예인이나 아이들만 나무랄 일이 아니다.

(이진원의 '우리말에 대한 예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