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부가 나서서 말했다.

“조선에서 금은은 나질 않습니다. 그리고 배를 탈 때부터 그런 것은 없었습니다.”

날강도의 두목 격인 임대가 무겁게 보이는 작두를 배의 문짝에 ‘꽝꽝’ 찍으면서 위협적으로 말했다.

“당신들이 관리라면 없을 리가 없다. 갖고 있는 것을 몽땅 내놓아라.”

아무리 설명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실제로도 배 안에는 돈이 될만한 것이나 금은들이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패를 나누어 배의 여기저기를 뒤지기 시작했다.

애시당초 나주에서 출발할 때 최부와 정보, 이정, 김중, 손효자 등은 배를 타야하므로 행여나 뱃길이 계획했던 대로 되지 않을까 염려해서 철별로 여러 벌의 옷을 준비했었다. 그러니 무슨 금은보화가 배 안에 남아 있겠는가? 입다둔 헌옷이 전부였던 것이다.

더더구나 난파선에 금은이 남아있을 턱이 없지 않는가. 수정호를 샅샅이 뒤진 그들은 날강도 두목의 명에 따라 배에 실린 작은 보따리까지 풀어헤쳤다.

칸마다 문짝을 부수고 들어가 뒤집어 업었으며 창고에 아껴둔 비상식량으로 쓸 쌀을 찾아내 한 톨도 남김없이 자기들 배로 옮겨 실었다. 쓸만한 옷도 가져갔다. 비에 젖은 옷이나 별로 소용이 없는 책 가지만 남겨 두었다.

괄괄한 정보가 최부에게 다가왔다. 귓속말로 조용히 말했다.

“경차관님, 이렇게 당하느니 한바탕 대들어 싸워서 물리칩시다. 우리는 힘센 장정이 43명이나 되질 않습니까?” 이정도 말했다.

“우리의 기세가 약하게 보여 강도들이 멋대로 날뜁니다. 놈들과 싸워 사생결단을 내버립시다.”

분을 참지 못하는 자들은 덤벼들어 싸우자고 말했지만 최부는 그들을 달래며 말했다.

“우리 모두가 풍파에 시달려 죽을 지경이라 날강도들에게 기가 꺾였기 때문에 이들이 우리의 사정을 훤히 알고 더욱 방자하게 날뛰고 있는 것일세. 이런 판국에 그들과 부딪쳐 치고 박고 하다보면 결국은 강도들의 손에 전부가 죽고 말 것일세.”“우리가 아깝거나 기어이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머나먼 타향에서 몸을 지켜야 할 것이네. 보따리쯤 가져간들 무엇이 아까운가? 내버려두고 몸이 다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바른 처사라고 여겨지네.”

실제로도 그랬다. 최부의 말은 구구절절이 옳은 말이었다. 살아남기를 바라는 것이 난파선에서 취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처사였다. 더구나 수정호의 안에는 대항해서 싸울만한 무기가 한 가지도 없었다.

강도들은 번득이는 칼과 날이 선 작두를 가지고 있는데 어찌 맨손으로 그들과 대항한단 말인가. 만약 맞붙는다면 피차간에 피를 흘리고 죽어가야 하는 참극으로 끝날 것은 너무도 뻔했다.

수정호의 곳곳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가는 와중에 날강도의 두목이 무엄하게도 경차관의 인신과 마패를 빼앗아 소매 속에 살짝 넣어버렸다. 이를 본 정보가 강도의 괴수에게 달려들어 사정했다.

최부를 비롯한 선원들에 뭇매질

“그것은 안 됩니다. 그것은 나라의 상징이며 벼슬의 표시인데 다시 주십시오. 설령 그것들을 가져가도 쓸모도 없을 뿐만 아니라 어디에 팔아먹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도둑질했다는 증거품이 되어 감옥에 끌려가게 될 것입니다.”

그래도 못들은 척했다. 이번에는 최부가 나서서 말했다.

“인신과 마패는 조선의 신표입니다. 국왕에게 다시 반환해야 하는 것이니 돌려주세요. 가져가도 아무짝에도 사용할 수 없는 물건입니다. 오히려 도둑질했다는 증거품으로 남을 것입니다.”

그러자 강도의 두목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인신과 마패를 되돌려 주었다. 천만다행이었다. 수정호 여기저기를 들락거리며 난장판을 피우던 그들은 뱃전에 모여서 자기들끼리 떠들썩하게 지껄이더니 조금 있다가 다짜고짜로 선실로 떼 지어 침입했다.

먼저 정보의 저고리와 바지를 억지로 벗겨내더니 무지막지하게 곤장으로 내려치는 것이었다. 너무 심하게 쳤다. 잘못 맞는다면 어깨가 부러지거나 병신이 될 수도 있을 정도였다. “으음, 끙끙.”

몸을 피해보지도 못하고 당한 정보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두려움과 공포 때문에 악쓰는 소리가 배 안에 퍼졌다. 날강도들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이번에는 최부에게 달라붙었다. 날강도의 두목이 먼저 번쩍이는 작두로 최부의 허리끈을 잘라냈다.

허리춤에 넣어 위로 자치니까 끈이 잘리면서 바지가 아래로 벗겨졌다. 위아래 모든 옷을 벗겨내고 실오라기 하나 없는 알몸으로 만들어 버렸다. 순간에 벌어진 일이라 바지춤을 잡아 올릴 틈도 없었다. 너무 놀라 허둥대는 최부를 채찍으로 사정없이 되는 대로 두들겨 팼다.“아이고머니 아이고.”

너무 아픈 최부가 제자리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아파했다. 유난히 하얀 등짝에는 채찍으로 맞은 태 자국이 벌겋게 났다. 빨간 피멍이 터지면서 뚝뚝 떨어졌다. 처참한 광경이다. 아무렇게나 휘두른 채찍으로 인해 최부의 몸은 성한 곳이 없었다.

손으로 막으면 그 위로 휘젓는 채찍으로 인해 핏자국이 벌겋게 그어지며 상처 난 곳에서는 선혈이 낭자했다. 기운대로 휘갈기는 매질에 혼이 빠진 최부를 무릎 꿇린 다음 두 손을 등뒤로 꼬아서 묶어버렸다. 그런 다음 곤장으로 허벅지를 두들기며 말했다.

“목숨이 아깝거든 당장 금은을 내놓아라.”

분하고 원통했다. 겨우 난파선에서 올라온 자들을 이렇게 두들겨 패다니 악이 목구멍까지 받쳐 올랐지만 참으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내 몸이 비록 도막이 나고 뼈가 부셔진다 해도 없는 금은을 어떻게 내놓으란 말이요?”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