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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 윤영근의 소설표해록-6.무정자로 태어난 여인국33. 살수 있다는 희망에 생기가 돌고
신광재 기자  |  sjs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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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호] 승인 2007.09.1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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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사실이었다. 오백여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남중국으로 가는 항로상에 수정호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아무리 난파선이라지만 현재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귀중한 단서다. 공연한 불안감을 씻어주고 아울러 선원들의 용기와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주는 것이 된다. 하늘이 알려주는 소중한 정보인 샘이다. 선장은 신이 나서 말했다.

  "흑산도에서 남중국의 영파까지는 8000리고 항주는 7000리로 이대로 간다면 닷새쯤 지나면 중국 땅에 도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시의 남중국항로는 고려시대부터 있어왔던 항로로서 권산 뿐만 아니라 제주출신의 뱃사람들은 누구나 알고 있던 뱃길이었다. 한반도와 중국사이의 뱃길은 고려 때부터 원나라와의 공물왕래로 빈번하게 다녔던 길이다.
 
 나라님이 계시는 개성과 한양에서 중국으로 다닌 길은 서해바다의 가운데에 자리한 흑산도가 중간 기착 점이었다. 제주도와 육지에서 중국에 가는 길목의 중간지점이 흑산도이기 때문이다.

  궁궐이 있는 한양에서 출발한 배는 서해 연안을 따라 남진을 계속하다가 서해바다의 중간기지인 흑산도에 도착한다. 여기서 하룻밤을 지새우며 편안한 휴식을 취한다.

남중국의 너른 바다에 들어간 다음 진하입구, 봉래, 양자강의 머리에 해당하는 영파에 배를 대는 것으로 멀고먼 황해항로를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얀바다는 흑산도를 지나 중국에 들어서기 전 백수양에 이르렀음을 알려주는 소중한 항해정보 자료인 것이다.

그렇다면 수정호가 중국의 남쪽 땅 어디쯤인가에 도착할 것으로 보여 진다. 어디에 닿건 그것이 대수더냐?

살아남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하던 목숨을 건질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대 만족이다.
 
명(明)나라와 조선은 서로 돈독한 외교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므로 살아 날 수 있으리란 희망이 결코 허황된 거짓이 아닌 것이다.

조선은 명나라에 대하여 비록 사대의 대상국으로 여겼지만 자주적인 선린관계였다. 그러니까 중국과 조선은 서로 같은 경계 안에 있는 것과 같았다. 상호간에 믿음이 있었으며 조공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또 하사품도 풍부하게 오갔던  사이다.
 
선장은 총무 안의를 불렀다. 총무와 키잡이에게 말을 건넨 선장은 살수 있다는 확신에 차 있었다.

며칠 전에 보았던 고래는 그곳이 흑산도였다는 것을 증명하며 오늘 본 하얀 바다는 중국 대륙과 흑산도의 중간쯤에 위치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제 배를 고치고 태풍이 자면 하나님의 가호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선장은 큰소리로 외쳤다.
 
 "이제는 살았다. 우리 배는 육지에 닿을 것이다. 살았다. 살아!"

최부 주재로 안전대책회의가 열리고

  감격에 겨운 선장은 덩실덩실 춤을 추며 악을 쓰듯 고함을 쳤다. 최부와 선장, 총무와의 대화는 순식간에 배 안에 퍼졌다.

맥이 빠진 사람들의 얼굴에 생기가 돌고 걸음걸이가 빨라졌음은 당연한 결과였다. 머리 속을 뒤덮고 있던 먹구름이 개운하게 가신 듯 시원해진다. 마냥 답답하던 심사가 환하게 밝아졌다. 살수 있다는 단단한 믿음이 약이 된 것이다.
 
약발은 순식간에 수정호를 들뜨고 신나게 했다. 맥 빠진 모두의 눈동자를 반짝이게 했다. 살수 있다는 조짐은 배 안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었다. 이제 수정호는 꿈을 머금은 것이다. 미래와 희망을….
 
"우리도 살수 있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아암 살아야지. 살고, 말고…."  "수정호 브라보!" "경차관 만세, 만만세!"

한낮인데도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먹구름이 끼고 비바람이 불어와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는 악천후의 연속이다.

영락없이 사흘 굶은 시어머니 얼굴이다. 서북풍이 불어 배는 오던 곳과는 반대방향인 동남쪽으로 뒷걸음질친다.

지그재그로 갈팡질팡의 연속이다. 배가 어느 한 방향으로 가지 않고 이리 갔다 저리 간다면 결국은 제자리걸음인 것이다. 선장이 키잡이 김고면을 불렀다.
 
"우리 배의 가장 중요한 일은 방향을 바르게 잡는 일이다. 혼자보다는 고이복과 양달해, 초보근 등과 함께 키를 잡도록 하라."
 
김고면은 세 사람을 대리고 키가 있는 배의 후미로 갔다. 두 사람이 짝을 이뤄 번갈아 가며 키를 잡았다. 혼자서 잡을 때보다 훨씬 든든하고 유동이 적어 바르게 이끌 수 있었다.
 
망망대해에서 배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도 못하고 가는 대로 끌려간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어쩌면 죽음으로 가는지 모를 일이다. 두 눈을 감고 밤길을 나서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이제 일기만 협조해 준다면 충분히 배를 운항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최부는 심기일전해서 선장실로 사람들을 불러 들였다. 먼저 지도를 폈다. 선실에는 조선지도만 있을 뿐 세계지도는 없었다. 먼저 조선 지도를 펴고 옆에 곁 대어 백지를 깔았다.
 
 그는 배를 타고 장거리 항해를 해본 적은 없었지만 성균관 전적으로 근무할 때 '동국통감(東國通鑑)'을 편찬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 보아왔던 세계지도를 머리 속에 그려놓고 있었던 것이다.

제주도와 흑산도를 중심으로 거친 바다를 그려가면서 항해코스를 조목조목 치밀하게 따지는 것이었다. 그를 둘러싼 선장과 사무장, 총무, 정보 등이 귀를 기울였다.

  지금으로 말하면 안전대책회의가 열린다는 말이 배 안에 퍼지자 키를 잡는 네 사람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좁은 선장실이 꽉 찼다. 일부는 갑판에서 들어야 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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