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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봉황면 죽석 1리 구석마을
김덕수 객원기자  |  najukd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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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0호] 승인 2024.06.09  22: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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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하드레·중복·연말총회’ 열어 함께 음식나누며 잔치

오일장 서고 면사무소 있던 봉황면의 중심·실개천 따라 농토에 삶의 터전
또래들과 물고기잡고 고무줄놀이…각시구경도 못할 오막살이에서 삶 일궈
 
   
▲ 봉황면 오일장터에 게이트볼장과 소방대, 찻집 등이 들어섰다.
 
오일장이 서고 면사무소가 있던 구석마을은 봉황면의 중심지였다. 1914년 면사무소가 신석마을로 옮겨가고 산업화로 사람들이 떠나면서 오일장도 문을 닫았다. 오일장이 떠난 자리에 게이트볼장이며 나주소방서 봉황면 119지역대가 들어섰다.
 
금천면에서 이어지는 금봉로를 따라 형성된 구석마을은 야트막한 야산을 뒤로 하고 삶의 터전을 형성하고 있다. 마을 앞으로 금천천에 합류하는 실개천은 논밭의 작물에 생명을 주고 아이들에겐 헤엄치고 물고기 잡으며 어울리던 놀이터가 됐다.
 
같은 마을 동갑내기와 결혼해 살다 고향으로 돌아온 지 16년 째인 강나임(76세) 씨는 “10여명 또래 친구들과 함께 신작로와 논둑길로 학교에 다니고 고무줄놀이며 공기놀이 등을 하면서 자랐다”며 “4남매 키우고 가르치느라 광주에서 30여년 살면서 건축현장이랑 식당 등에서 안 해 본 일 없이 살았는데 나이 들어 자연스레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다도면 암정리가 고향인 진미식당 유남임(78세) 씨는 “며느리한테 넘기기 전까지 50여년을 화장실도 못 갈 정도로 불 앞에서 밤새 고기 삶고 탕 끓이며 살았다”며 “어느새 ‘내 몸이 내 몸이 아닐 정도’로 안 아픈 데가 없어 주변 사람들한테 ‘골병 들려면 식당하라’고 이야기한다”고.. 
 
“친구 소개로 라디오방송 스피커 설치 일을 하던 남편을 만나 옆동네인 신석마을에서 살다 2013년 농기계센터를 신축해 이사왔다”는 남숙희(73세) 씨는 “인근 지역에서 소를 가져와 사고 파는 소전이 설만큼 장이 커서 고향인 다도면 방산리에서도 물건을 사러 올 정도였다”고 회상한다.
 
   
▲ 정영석(54세) 씨의 비닐하우스를 활용한 개방형축사에서 자라는 소가 길손을 반갑게 맞고 있다.
 
“고개를 숙여야 들어갈 수 있는 오막살이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하는 바람에 새색시 왔다고 주민들이 몰려드는 ‘각시구경’도 못할 정도였다”는 화순군 도암면 출신 고광순(75세) 씨는 “고생고생해서 마련한 집마저 계약서를 쥐가 물어가는 바람에 없어져 빼앗겼다”며 “지금은 배 과수원이 된 밭에선 수박이며 무, 배추를 길러 내다 팔아 생계를 꾸렸다”고 옛일을 떠올린다.
 
군복무 기간을 제외하고 평생을 구석마을 사람으로 살아 온 김선길(82세) 씨는 “농사일이 끝나는 겨울이면 덕룡산 너머 다도면까지 가서 땔감 만들어 장에 내다 팔아 살림을 꾸렸다”며 “방직공장에 납품하는 가마니 짜서 목돈을 만들어 4남매 키웠다”며 케이트볼을 치러 나선다.
 
“‘신성일’ 같이 잘 생긴 남편이 새벽 4시부터 자전거로 한말짜리 막걸리 통 12개를 싣고 봉황면과 다도면 일대를 돌며 나눠주고 돌아오면 11시가 넘었다”는 김만순(75세) 씨는 “쌀농사 지으면서 짜장면 파는 식당도 하고 닭튀김집이며 식육점 등 안 해 본 일이 없다”며 “키 크고 잘 생긴 남편이 신혼 초에 서울로 일하러 간다고 할 때 ‘영영 헤어질 것 같아 못 가게 막았던’ 일이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일 같았다”며 웃어 보인다.
 
“토목과 건축을 전공한 두 아들은 건설회사 현장 소장으로, 딸 둘은 KBS 한국방송과 피아노 선생으로 각자 제 일을 하고 산다”는 다도면 덕동리가 고향인 박종임(80세) 씨는 “밭뙈기 하나 없이 몸뚱아리 하나로 남의 논 빌려 농사 짓고 공사현장 일하며 말 그대로 자수성가했다”며 고생스러웠던 지난날을 되새긴다.
 
   
▲ 금봉로를 따라 형성된 구석마을은 봉황면에서 역사가 오래되고 규모가 큰 마을 중 하나다.
 
경기도 광주시에서 30여년 자동차 정비업을 하다 6년 전 귀향한 최태산(52세) 씨는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가야지 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는데 편찮으신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귀향을 결심했다”며 “탯자리인 고향집 축사를 고쳐 정비소를 차리고 가스소매업이랑 농사를 겸하고 있어 생활에 큰 지장은 없다”고 한다. 봉황면 청년회장을 맡고 있는 최 씨는 “보리 베고 난 들판에서 축구랑 야구를 하고 소 몰고 가서 풀 먹여 키웠다”며 “고향집이 풍기는 흙냄새며 나무 냄새가 돌아오게 만들었다”고 떠올린다.
 
“의용소방대에 가입하고 복지센터 에어로빅교실에 참여하는 등 ‘봉황사람’으로 함께 살기 위해 노력한다”는 카페 ‘소행성 651’ 전미화(57세) 씨는 “광주에서 살며 ‘시골살이’ 꿈을 위해 3년 넘게 장성·담양 등 인근 지역을 찾아다니던 끝에 2018년 이곳에 자리잡았다”고 한다. 전 씨는 밀가루를 익혀 발효시킨 다음 생밀과 섞는 방식의 부드럽고 소화가 잘되는 건강식 빵으로 ‘일부러 찾는’ 단골을 만들기도 했다고..
 
비닐하우스를 활용해 번식우를 키우는 정영석(54세) 씨는 “개방형축사는 통기성이 좋고 고슬고슬한 환경으로 냄새도 적어 농촌경제연구원이 추천하는 사육방식”이라며 “철제 지붕이 아니라는 이유로 건축허가를 내주지 않으려는 행정당국을 설득하느라 애를 먹었다”고 한다. 모내기를 하느라 이앙기에 모판을 옮기는 정 씨는 나주시청 정무실장을 지냈다.
 
구석마을은 매년 음력 2월1일 환갑과 70·80·90세를 맞는 주민들이 십시일반 돈을 내 잔치를 여는 전통인 ‘하드레날’과 중복, 연말인 음력 11월10일 한해를 결산하고 새 이장을 뽑는 마을총회를 열고 있다. 넉넉한 인심으로 함께 어우러진 구석마을 잔치에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며 음식을 나누는 주민들의 행복한 모습을 떠올려 본다.  
 
 
   
 
인터뷰/ 박상국 죽석1리 이장
 
“‘형님·아재·아짐’ 가족처럼 헌신하고 봉사하는 마음…”
 
“콩과 밀 2모작 농사에 손해평가사, 이장, 각종 단체 총무 등 ‘1인 4~5역’ 해야 해서 하루가 어떻게 지나는지 눈코 뜰 새 없다”는 봉황면 죽석1리 박상국(53세) 이장은 “고등학교 진학하면서 떠났다 천직을 찾듯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전망이 좋을 것이라는 기대로 신생 학과인 유전공학과를 선택했지만 흥미를 붙이지 못하고 맴돌기만 했다”는 박 이장은 “대학을 졸업하고 마트며 컴퓨터가게 등 자영업도 했지만 다람쥐 쳇바퀴 도는 생활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다 10여년 전 귀향하면서 삶의 활력과 재미를 되찾았다”고 밝게 웃는다.
 
“데모 많이 하는 전남대생이라는 이유로 전방에 배치됐다는 합리적 의심을 할 수 밖에 없었다”는 박 이장은 “화학제독병으로 서울의 수방사(수도방위사령부)에 배치돼 1주일여 교육을 받던 중 훈련병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하고 난 뒤 갑자기 강원도 홍천군의 11사단으로 전출됐다”며 “사건이 더 확대되지 못하게 하려는 군의 조치였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라고 한다.
 
선배의 추천으로 베트남 출신 부인을 만나 지난해 12월30일 봉황농협에서 결혼식을 올린 박 이장은 “사는 게 바빠지니 결혼도 하게 된 것 같다”며 “살아 온 환경과 문화가 다른 만큼 하나하나 맞춰가다 보면 더 잘 살지 않겠냐”고 너스레를 떤다. 박 이장은 “생활력이 강해 스스로 일자리를 찾고 정리며 살림살이가 꼼꼼하다”며 부인 자랑을 덧붙인다.
 
2015년 마을총회에 허드렛일이라도 돕기 위해 참석했다 주민들이 등 떠밀 듯 맡긴 이장일이 어느새 8년 째라는 박 이장은 “‘형님, 아재, 아짐’ 하며 가족처럼 헌신하고 봉사하는 마음으로 일 해 오고 있다”며 “새로운 사람이 새롭게 일을 하면 또 다른 변화와 발전을 가져올 수 있기에 올해를 마지막으로 이장을 그만 둘 작정”이라고 강단지게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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