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연재 | 수필
다시 그 섬에서
송용식 수필가  |  songys819@naver.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872호] 승인 2024.02.04  15:41:57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 송용식 공학박사·건축기술사·수필가

길게 줄지어 서 있는 섬들은 매혹적이다. 이름하여 열도(列島). 핸들을 잡은 후배와 고군산열도로 들어가는 제방의 소실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스티븐스 전 주한미국대사는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33.9km의 새만금 방조제를 보고 중국에 만리장성이 있다면, 한국에는 바다의 만리장성이 있다,’며 경탄했다고 한다. 인간의 욕망은 국토의 선까지 바꿔 놨다. 열도의 시작은 신시도지만 방조제와 연결된 신시도는 이미 섬 아닌 섬이 되었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 그 섬에 가고 싶다라는 정현종 시인의 시를 음미해 본다. 섬은 점이고 섬 사이에 만들어진 다리는 선이다.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고립된 섬 같은 존재라면 점과 점의 연결은 비로소 고립과 고립이 만나는 선이 될 것이다. 길게 손을 붙잡은 것은 아닐까.

작년 늦가을 시를 필사하다 문득 대학 시절에 찾아갔던 선유도가 떠올랐다. 하룻밤만 묵고 오려니 하고 들렀다가 눈보라에 갇혀 어쩔 수 없이 며칠을 지냈던 섬이다. 밤새 신우대잎 울음소리를 들으며 왜 시를 쓰느냐고 내게 물었던 곳, 다시는 시를 쓰지 않겠다고 시를 내려놓았던 곳이기도 하다. 그냥 다시 한번 다녀오고 싶었다.

신시도와 무녀도를 지나 선유도에 도착했다. 그때처럼 눈은 내리지 않았다. 옛 기억을 더듬어 갔다. 내가 며칠 머물렀던 추억 속의 풍경은 시간의 흐름 속에 흘러가 버렸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현재에 마음 붙이기로 했다. 묵은 숙제하듯 거기를 찾아 뭘 어쩌겠다는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고 이참 저참 옛 기억을 빌미로 겨울 섬과 바다를 보러 왔으니까.

차창 너머인 양 새로운 풍경이 보인다. 바다와 함께 커피를 마시고 싶어 선착장 3층의 카페를 찾았으나 평일이어서인지 문을 닫았다. 오가는 사람도 뜸했다. 제 몸무게를 감당할까 염려스러운 새 몇 마리가 선착장 주위를 맴돌기에 방파제 아래에서 굴을 씻고 올라오는 아저씨에게 물었다.

사장님, 저 새 이름이 뭐예요?” “아니 괭이갈매기도 몰라요? 허 참나.”

갈매기의 살피듬이 너무 좋아 긴가민가해서 물어봤을 뿐인데 왜 이리 무참하게 대하시나. 등대를 향해 걸었다. 망망한 바다는 가슴 전체를 바다로 만들고 있었다.

이순신 장군이 우수영을 옮기려고 서해를 답사하면서 들렀다던 곳이다. 김 훈은 칼의 노래에서 고군산군도와 위도는 수군 기지를 풀 만한 곳은 아니었다. 섬 앞바다가 막힌 데 없이 넓어서, 죽기에 편한 자리였다. 죽을 자리도 아니었고 싸울 자리도 아니었다라고 했다. 나는 바다를 모르고 전쟁은 더욱 모른다. 섬들이 바다 위에서 출렁이고 있는 것만 보인다.

고군산열도의 끝 대장도에 숙소를 잡았다. ‘그 섬에 가고 싶다라는 이름이 그 펜션에 가고 싶다로 읽힌다. 계단과 난간, 테라스 바닥까지 온통 녹색 칠을 하고 거기에 수많은 꽃으로 하트 모양을 그려 놓았다. “제 짝꿍이 화가예요육십 중반쯤으로 보이는 주인 여자분이 수줍게 웃으면서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그 나이에 짝꿍이라니. 두 분의 금슬이 묻어나는 어휘였다. 이쁘게 살고 있는 노부부. 털모자를 비스듬히 눌러 쓴 여자분의 모습이 귀티나게 보였다. 펜션 뒤로는 대장봉 정상에 오르는 데크 길이 연결되어 있었다.

우리 집에서 왔다고 하면 좀 싸게 해주는 도시어부집이 있고, 이쁜 낙조를 보려면 저 장자도 서쪽 끄트머리 파란 지붕 횟집이 괜찮을 거요. 걷기에 좀 멀기는 하지만

저녁 먹기에는 이른 시간이었지만 점심을 김밥으로 때워서인지 시장기가 몰려왔다. 파란 지붕의 횟집에서 가격을 살펴보다 모둠회를 시켰다. 기본 해산물 안주에 우선 소맥으로 잔을 부딪쳤다. 말수 적은 후배의 잔에 자주 술을 따랐다. 흰소리에도 웃고 하찮은 얘기에도 크게 웃었다. 홀가분한 여유이다. 안동에서 전라도로 시집와 장자도에서 횟집을 한 지 30년이 되었다는 여자 사장님도 가끔 우리 이야기에 섞여 들어왔다. 순간 밖을 보니 어둠이 밀고 들어오고 있었다. “, 낙조!” 아차 싶어 소리쳤다. 선유 팔경의 하나라는 선유도의 낙조. 내 고향은 가난해서 보여줄 건 노을밖에 없다는 영화 속 대사 같은 그런 노을을 놓친 것이 아닌가. 낙조를 보지 못해 아쉬워하는 우리를 위로하듯 옆자리 손님이 한마디 거들어 준다. 오늘 낙조는 날씨가 갑자기 흐려져 별 볼 일 없었다고.

대장도 숙소로 돌아오는 바닷길. 밤바다를 들고나며 철썩거리는 소리에 말을 걸었다. 나도 너처럼 부르고 싶은 노래를 맘껏 부를 거야. 아픔이 있어도 목청껏 부르며 내 노래에 장단치는 친구와 낙조도 볼 거야.

새벽녘 바람 소리에 잠이 깼다. 대장봉 정상에서 일출을 맞고 고군산도 일대를 돌아보겠다는 애초 생각을 포기했다. 뭔가 큰 것을 놓친 것 같은 아쉬움은 있었지만 바람이 그 소리로 몸을 움츠러뜨리고 발을 묶어버렸기 때문이었다. 두툼한 옷을 걸치고 녹색 바닥에 하트 꽃이 피어있는 테라스에 나가 신지도를 바라보았다. 산마루에 갓밝이가 시작되더니 반짝이는 윤슬은 조용히 눈을 감게 했다. 기억에 끌린 듯 그냥 찾아온 바다. 그럼에도 바다는 이름 지을 수 없는 수많은 포말(泡沫)을 안겨 주었다. 당사실 풀 듯 포말에 얽힌 언어들을 풀어내며 다시 섬을, 바다를 찾을 것 같다

 

송용식 수필가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최근인기기사
1
4·10 나주·화순 총선 유세
2
"주몽 드라마 세트장 지진 취약, 용도 전환 경제성 낮다"
3
'3선 성공' 나주·화순 민주 신정훈 "초광역 지방정부 시대 열 것"
4
나주 농민 410명, 진보당 안주용 후보 공식 지지 선언
5
"영원한 길동무" 나주 마라톤 완주 결혼 30년차 부부 '함박웃음'
6
전남선관위, 각 기관·단체 근로자 투표시간 보장 당부
7
나주배원협, ‘2024 나주배신제’ 봉행
8
농촌 빈집들 밤손님, 잡고보니 최근 출소한 동종 전과자
9
마라토너 3천여 명 벚꽃 만발 영산강변 질주
10
나주변화장애인자립생활센터, 안주용 후보와 정책협약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이메일무단수집거부청소년보호정책
전남 나주시 빛가람로 685 비전타워 206호 나주투데이  |  대표전화 : 061)334-1102~3  |  팩스 : 061)334-1104
등록번호 : 전남 다00334   |  발행인 : 윤창화  |  편집인 : 이철웅  |  e-mail : njt2001@hanmail.net
Copyright © 2013 나주투데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