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연재 > 김덕수 기자의 마을과 사람
34. 문평면 산호리 1구 남산마을
김덕수 객원기자  |  najukds@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867호] 승인 2023.11.26  20:34:51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우산각 5·샘 6·가게 4곳 있던 문평면에서 가장 큰 마을

겨울에 가마니짜서 이고 물 건너 산 넘어 함평장에 팔아 아이들 설빔 해줘
40명 동창이 마을의 동·서·위·아래로 나눠 놀고…농토 많아 특작 없어
 
   
▲ ‘남산낙토 만세번영’ 표지석 뒤로 남산마을이 넓게 자리하고 있다.
 
문평면에서 가장 크고 앞서간다 하여 ‘일남산’이요, 농토가 넓어 풍요롭고 즐겁다는 의미의 ‘남산낙토 만세번영’ 표지석이 반기는 마을. 산호리 1구 남산마을은 문평면의 옛 이름인 거평부곡 관아의 남쪽 산 아래에 있다 하여 이름지어졌으며, 160여 가구가 살던 큰 마을로 우산각이 5개, 샘이 6개, 가게가 4개나 있었다고 한다.
 
“겨울이면 쉴 틈 없이 가마니 짜서 머리에 이고 고막천 지나 고개 넘어 함평장에 가서 팔아 아이들 설빔 해줬다”는 이양순(86세) 씨는 “지금 보면 저 산을 어떻게 넘어다녔는지 상상도 하기 힘들다”고 한다. 다시면 문동리가 고향인 이씨는 67년째 남산마을에 살고 있다.
 
탯자리를 지키며 살고 있는 전갑섭(63세) 씨는 “초등학교 6학년 때 마을대표(일본식 표현으로 ‘부락장’)로 토요일에 103명의 학생을 인솔해서 줄지어 학교에 갔다”며 “하교할 때도 운동장에 함께 모여 ‘새마을노래’를 부르며 마을로 돌아왔다”고 한다. 마을 초입에서 한우 60여두를 키우는 전 씨는 국제라이온스협회 나주금성라이온스클럽 회장을 맡아 봉사활동에도 앞장서고 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열 살 때 피난 와서 정착한 노판순(84세) 씨는 “넉넉한 친정살림 덕분으로 젊어서는 고생하지 않았는데 마흔 넘어 농사일을 무지막지하게 했다”며 “새벽 2시에 일어나 식구들 밥 해놓고 마을사람들과 함께 무안군의 무·수박밭 등에서 일하고 저녁에 돌아왔다”고 한다.
 
다시면 월태리가 고향인 이정남(90세) 씨는 “다시면 복암리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해 8년을 살다 스물아홉 되던 해에 시부모님과 함께 이사왔다”며 “맬겁시(‘이유 없이’란 뜻의 사투리) 시어머니의 시집살이가 심해서 집 밖에 나가 귀를 막고 서 있기도 하고 샘에 빠져 죽을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며 그때가 떠올랐는지 눈시울을 붉힌다.
 
   
▲ 160여 가구가 살던 남산마을엔 식수로 쓰던 샘이 6곳 있었다고 한다.
 
“겨울이면 친구들과 어울려 마을 앞 방죽에서 썰매타고 놀았다”는 전현옥(63세) 씨는 “깨끗하고 물이 많던 문평천에서 잡은 재첩으로 끓여먹던 된장국 맛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고 한다.
 
“가진 게 없어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큰 아들한테 젤 미안하다”는 이금례(83세) 씨는 “중학교도 마치지 못하고 서울로 돈 벌러 가겠다는 아이를 붙잡을 수 없었다”며 “큰 아들이 목수 일을 한 탓인지 작은 아들도 건축과를 나와 서울로 취직했다”고 한다.
 
인접한 오룡리가 고향으로 ‘8공주 엄마’라고 말문을 연 나승희(86세) 씨는 “딸만 낳는다고 시어른들의 잔소리가 ‘면 내 최고’였다”며 “지금은 날마다 딸들이 전화해서 안부 묻고 반찬 만들어 오고 맛난 거 먹으러 다닌다”고 자랑스레 이야기한다.
 
“산에서 손야구 하다 할아버지들한테 ‘어른들(묘소) 밟는다’고 혼나서 도망다니기도 했다”는 김경연(64세) 씨는 “동창이 40명이나 되는 통에 마을의 동·서·위·아래로 나뉘어 무리지어 놀았다”고 한다. “80여 두의 한우를 기르다 구제역 파동 때 정리하고 쌀농사만 짓는다”는 김 씨는 “우리 마을은 농사 지을 땅이 넓어 특용작물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스물두살에 결혼한 다시면 송촌리 출신 장성자(83세) 씨는 “부자는 겸상하지 않는 예법에 따라 시아버지는 혼자 드시고 시어머니와 남편이 한상에서, 나는 시누이들과 방바닥에 놓고 먹어야 해서 같은 김치라도 3그릇에 담아야 했다”며 “파를 데쳐서 담은 파숙지며 배추, 상추, 시금치 등 철마다 나는 채소로 반찬을 했다”고 한다.
 
   
▲ 천안전씨 사당인 남강사의 외삼문인 충절문이 우뚝 서 있다.
 
“남편이 술·담배도 않고 워낙 착실한 탓에 집과 함께 스무마지기 논을 사서 이사 왔다”는 학동리가 고향인 ‘학동댁’ 박경순(89세) 씨는 “60여년 전 신혼생활하던 영암군 신북면에서 남산마을로 들어올 때 집에 작두샘을 파서 공동우물로 물길러 다니지 않았다”고 한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떠났다 45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전균섭(65세) 씨는 “정년퇴직한 2020년까지 구례군에서 30년 넘게 보건직 공무원으로 근무했다”며 “초등학교 남자친구들 13명이 매년 한번씩 모이는데, 지난 11일 전북 군산시의 선유도에서 만나 어릴 적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전 씨는 천안전씨 종친회장으로 문중 일을 맡고 있다.
 
마을 가운데에 천안전씨 남강사가 있고 마을 동쪽에 금성나씨 추모사가 있다. 1684년 창건된 남강사는 지금의 국방부장관에 해당하는 병조판서에 추증된 전상의와 임진왜란 때 김천일 장군과 함께 의병으로 나라를 지킨 전경완, 지방수령인 금성판관을 지낸 전수완 등을 배향하고 있다.
 
2007년에 세워진 추모사 앞에는 현재의 기획재정부 차관 격인 호조참판을 지낸 나태환과 사후에 승정원 좌승지(현 공무원 체계로 1급 고위공무원)에 추증된 나달성의 묘비석이 있다. 청동기 시대 유적인 지석묘 6기가 오륜마을로 진입하는 도로변에 남아 있다.
 
   
 
장갑수 남산마을 이장 인터뷰
 
“아들딸 직장 갖고 결혼해 우리 부부만 행복하면…”
 
“소로 쟁기질하던 시대에 기계화에 일찍 눈 떠 마을 청년들과 함께 영농단을 만들어 트랙터며 콤바인, 이앙기 등으로 농사지었다”는 장갑수 이장(66세)은 “이앙기로 모 심고 났더니 5·18 광주항쟁이 터졌다”고 옛 일을 떠올린다.
 
쌀농사와 함께 한우를 키우는 장 이장은 “번식우를 주로 키우는데, 브루셀라병으로 60여두를 모두 정리한 뒤 조금씩 늘려가고 있고 지금은 30여두 정도 된다”며 “계속 오르기만 하는 사료값 부담이 제일 고충”이라고 한다.
 
“20대 때 잠깐 서울에서 직장생활도 했는데 재미도 없고 벌이도 시원찮아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장 이장은 “마을 선배가 일하던 편물공장과 우산공장에서 회사에 있는 숙소에서 먹고 자며 밤낮으로 일하고 노량진 길거리로 팔러 다녔는데 첫 월급이 얼마였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다.
 
“당시엔 늦은 나이인 스물여덟살에 이웃집 할머니 소개로 목포에서 직장에 다니는 진도군 서거차도 출신의 부인을 만났다”는 장 이장은 “첫 눈에 반해 시간 날 때마다 고막원역에서 기차타고 목포로 집사람 만나러 다녔다”며 “바쁜 농번기철에 ‘밥 해주러’ 온 게 계기가 돼 함께 살다 1년 뒤에 결혼했다”고 한다. “고생만 시키고 잘 해주지 못해 집사람한테 미안하다”는 장 이장은 “가끔 집사람이 서운해 하는데 앞으로 더 잘 하려고 한다”며 웃는다. 
 
부인과 사이에 1남1녀를 둔 장 이장은 “아들은 빛가람동에 살며 회사에 다니고 딸은 목포에서 직장생활을 한다”며 “둘 다 결혼도 했고 손주도 봤으니 앞으론 우리 부부만 행복하게 살면 된다”고 너스레를 부린다. 
 
   
 
김덕수 객원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최근인기기사
1
49. 영강동 12~13통 부영아파트
2
나주시 인사발령 2024.7.12.자
3
결핍(缺乏)이 때로는 길을 만든다 (2)
4
나주투데이 이철웅 편집국장 창간 23주년 기념사
5
국제보호새 황새가 나주에 돌아왔다!
6
“나주 역사로 방탈출을?”
7
나주시의회, 회의 일수 전남 5개 시 중 가장 낮아
8
농지에 시커먼 기름 콸콸…범인은 폐양식장 낡은 기름탱크
9
봉황면, 주민들의 손으로 다시 태어나다
10
(사)대한산란계협회 나주시지부, 사랑의 달걀 후원 ‘훈훈’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이메일무단수집거부청소년보호정책
전남 나주시 빛가람로 685 비전타워 206호 나주투데이  |  대표전화 : 061)334-1102~3  |  팩스 : 061)334-1104
등록번호 : 전남 다00334   |  발행인 : 윤창화  |  편집인 : 이철웅  |  e-mail : njt2001@hanmail.net
Copyright © 2013 나주투데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