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연재 > 김현 객원기자의 세상읽기
그리운 시절
김현 객원기자  |  kimhyun153@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861호] 승인 2023.08.27  22:39:15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 김현 객원기자

어느날, 아버지는 초등학교 1학년 입학한 막내딸의 책가방이 신경쓰이셨는지 책가방 하나를 구해 오셨다. 아버지가 구해오신 책가방은 일본 아이들이 등에 메고 다니는 가방으로 튼튼하고 쓸만했다. 누가 사용하던 가방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내 책가방이 있는 것이 좋았다.

근데 그 가방은 체구가 작은 내가 메기에 가방끈이 좀 길고 무거웠다. 내가 어릴 적에는 집안 형편 좋은 사람이 얼마없던 시절이라 보자기에 책을 싸서 다니는 아이들도 있었고 변변한 책가방이 흔하지 않았다. 우리 집 형편도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어서 책가방이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었다. 

1학년 수업은 검정색 두꺼운 판데기를 철끈으로 묶은 연습장에 달팽이 등껍질무늬의 동그라미를 빨간 색연필로 그려야 했다. 빨간 동그라미 그리는 일이 무슨 중요한 일이라고 매일 학교가서 수업시간마다 그려야 할까? 빨간 색연필이 쓰다가 다라지면 실을 올려서 돌돌말린 종이를 풀어 색연필이 나오게 해야 했다.

언젠가 한번은 색연필 푸는 일이 너무 재미있어서 계속 몇 칸을 풀었던 적도 있었다. 그렇게 푸는 일이 은근 재미있는 일이고 뭔가 모를 희열을 느꼈다. 어린 나이에도 드러나지 않는 스트레스가 있었나보다. 달팽이 등껍질의 동그라미 모양그리기 다음은 6칸 공책에 기역니은쓰기 8칸 공책에 단어쓰기 수업을 하고 받아쓰기 수업을 했다. 요즘은 아이들이 학교 가기 전에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글쓰기를 마무리하고 가니 학교에서 이런 수업을 하지는 않는 것 같다.

장작 난로를 이용해 난방을 하던 겨울이 지나고 다시 한 학년이 바뀔 즈음 2학년 반을 정하고 이동하던 중 나는 얼굴을 다쳤다. 1학년 교실로 가는 길에는 네모난 돌을 징검다리처럼 놓아 둔 징검다리 돌길이 있었다. 이동하는 길이 맨 흙바닥이라 비오는 날 질척이는 길을 걸으며 신발이 흙투성이가 되는 것을 방지하려는 방편이었다. 이 돌이 나의 인생에 이렇게 오랜 기억으로 남을 줄 그 어린 시절에는 꿈에도 몰랐다.
 
1학년 학기말 방학이 끝나고 1학년 선생님께서 2학년 반을 알려주고 아이들이 흩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앞 사람 가방을 잡고 움직이게 하셨다. 새로 학년을 올라간다는 사실에 괜히 신나서 기분이 한껏 붕 떠있던 시간이었다.
 
서로 기차놀이 하듯이 가방을 잡고 이동하던 순간, 잠시 멈춰서더니 내 앞에서 가던 장화*이 갑자기 앞으로 툭 튀어나가 버리고 갈 곳 잃는 내 손은 가방을 놓침과 동시에 징검다리처럼 놓인 네모난 돌에 얼굴을 쳐박고 말았다. 엄청 아파서 별을 보는 듯했다. 이가 입 안쪽 살갗을 파고 들어 피도 많이 났었다.
 
그 날은 어찌어찌 지나가고 다음날 새로운 선생님을 만나는 날인데 세상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이 벌어졌다. 왼쪽 얼굴이 퉁퉁 붓고 코에는 피딱지가 있고 왼쪽 눈은 부기로 붙어서 잘 보이지 않고 오른 쪽 눈으로 봐야 했다. 키도 훤칠하시고 소의 눈을 닮은 남자 선생님께 얼굴도장을 확실하게 찍은 날이었다. 영산포초등학교 2학년 4반 강호경 선생님을 뵙는 첫 날. 쥐구멍을 찾고 싶은 순간이었다. 
 
2학년 4반 선생님은 키도 크시고 취미가 넘 멋진 선생님이었다. 교실 뒤쪽에 놓인 선생님 책상위에는 비행기 모형이 멋진 날개를 펼치고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과 어울러진 비행기 모습이 그 시절에는 많이 생소했다. 선생님께서는 쉬는 시간이나 여유로운 시간에 비행기 색칠에 집중하셨다.
 
붓글씨도 잘 쓰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그때 인자하게 아이들을 대하던 모습은 가슴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2학년 교실 옆은 큰 벚꽃나무가 있어서 교실 문을 들어서면 건너편 선생님 책상 위에 놓인 비행기를 비추는 햇빛이 마치 비행기를 타고 환상의 나라를 여행하는 듯한 꿈을 꾸게 했다.
 
낡고 오래된 건물이라 마루가 낡아서 마루에 다리가 한번씩 빠지기도 하고 비오는 날은 교실 바닥 이곳 저곳에 물을 받을 수 있는 여러 가지 통들이 자리를 차지하는 풍경이 연출된다. 천정에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선생님 수업을 듣는 것도 나쁜 경험은 아니었다.
 
바닥이 나무다 보니 청소할 때 물걸레 질을 하고 장학사(교육감?)가 학교를 방문한다고 예정된 날 전에는 통과의례처럼 초로 나무 마루를 문질러 윤기내는 일을 해야 했다. 엉덩이를 높이 쳐들고 집에서 헌옷이나 헛수건으로 만들어 온 걸레를 가지고 이쪽에서 저쪽으로 누가 더 먼저가나 내기를 하기도 했다. 무엇을 하던 아이들에겐 놀이가 되었다.
 
지금은 없어져 버린 2학년 교실의 아련한 추억과 함께 아이들 몇 명이 돌아가며 손을 잡아야 나무 둘레를 가늠할 수 있는 아름드리 벚꽃나무가 창 밖에 있는 비새는 2학년 교실이 어느때 문득 그리워 질 때도 있다. 교실에 비가 새는 것도 마루 바닥이 낡아 뚫려서 발이 빠지는 것도 마냥 즐겁던 어린 시절 모든 것이 놀이가 됐던 그 순간이 그립다.
김현 객원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최근인기기사
1
맨발로 걷다 보면
2
나주시, 숙박업소 침구류 구입비 지원
3
34. 문평면 산호리 1구 남산마을
4
‘나주판 지록위마 조고’는 존재하는가
5
나주시…무분별한 ‘협상에 의한 계약 방식’ 지양해야
6
나주시, ‘2023 빛나주’ 축제 전격 취소
7
나주시, 2024년 본예산 9396억원 편성⋯민생안정·성장동력 중점
8
나주시, ‘2023 빛나주’ 축제 전격 취소
9
全(全州)羅(羅州)도의 全州 - 전주의 도시재생 ‘인후반촌마을’
10
나주시, 시내버스 노선 개편 조정기간 운영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이메일무단수집거부청소년보호정책
전남 나주시 빛가람로 685 비전타워 206호 나주투데이  |  대표전화 : 061)334-1102~3  |  팩스 : 061)334-1104
등록번호 : 전남 다00334   |  발행인 : 윤창화  |  편집인 : 이철웅  |  e-mail : njt2001@hanmail.net
Copyright © 2013 나주투데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