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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는 어디를 갈까?
송용식 수필가  |  songys8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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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0호] 승인 2023.08.06  20: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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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용식 수필가

‘떠나고 싶을 때 떠나라’라고 한다. 일상이 지루했던지 조간신문의 함양 여행지 기사가 훅 들어 온다. 떠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고 했던가. 일단 방향만 정해놓고 구체적 계획 없이 숙소부터 예약했다. 

이번에는 여건이 되는 지인들과 함께 가면 어떨까 했더니 아내가 반색한다. 그동안 둘이서만 다닌 여행이 별 재미가 없었다는 자기 고백이다. 아내와 나, 직장 후배, 아내의 성당 교우와 그 친구. 총 다섯의 즉흥 조합이었다.

여행의 본질은 도착지가 아니라 떠남 그 자체에 있다는 이심전심의 일행이다. 함양에서 점심 먹을 식당만 정해놓고 출발한 차 안에서 이야기는 주제가 있을 리 없다. 누군가 반찬 이야길 시작하면 이야기는 돌고 돌아 정치에 가 있고 정치로 시작한 이야기는 나중에는 드라마에 가 있기도 했다.
 
후배가 잠깐 이야기 주제를 헤아려보니 열 가지가 넘는다고 하니 성당 자매가 경험한 이야기를 더한다. 자기 이야기만 실컷 떠드니 다른 이는 옆 사람과 서로 손금을 봐주고 있더라는. 이야기가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해도 우리가 공유했던 것은 웃음이었다.
 
얼마 전까지 부동산 중개업을 했던 자매는 누군가로부터 주택 관련 전화를 받기도 하고 중국에서 전자제품을 수입하여 국내 중소기업에 납품하는 자매는 고객사와 틈틈이 물량 주문을 처리하느라 분주하기도 했다. 그림 그리는 아내의 그림 이야기가 잠시 틈을 메우기도 했다.
 
이야기가 발자국을 남긴다면 우리가 나눈 이야기는 어떤 흔적을 남겼을까. 누군가의 발자국에 또 다른 발자국이 얹히면서 서로 그런 줄도 모르고 남의 이야기를 밟지는 않았을까. 
 
함양에 도착하여 늦은 점심을 먹었다. 정승을 지낸 가문의 후손이 운영하고 있다는 식당이다. 한때 진주에 본사를 둔 공기업에서 근무했던 후배가 오며 가며 들렀다는 그 집이다. 육전에 막걸리, 그리고 비빔밥과 국수로 맛나게 시장기를 달랬다.
 
식사를 끝내고 근처 개평 한옥마을을 찾았다. ‘좌 안동 우 함양’이라 불릴 정도로 많은 유학자를 배출한 선비마을이다. 마을 곳곳에는 일두고택과 풍천노씨 대종가와 하동정씨 고가 등이 있다. 100년 넘은 한옥들과 담장이 자연스럽게 어울려 고즈넉한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도시 풍경에만 익숙해진 눈에 옛 고택은 그 자체로 새롭다. 평생 건축 분야에서 공부하고 일하고 가르쳤던 나에게 한옥은, 집이란 무엇인지 실용과 철학과 아름다움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듯했다.
 
몇 개의 드라마를 촬영했다는 일두(정여창)고택의 마루와 창문, 천장 서까래 사이로 옛 선비의 자태가 어른거렸다. 순간 대청마루 위의 양반과 토방 아래에서 고개를 조아리는 머슴의 모습이 스친다. 겉 차별은 없어졌으나 안으로는 아직 남아있는 차별을. 이른 새벽이나 달뜨는 밤에 발소리 죽여가며 한 바퀴 돌고 싶은 마을이었다. 
 
이제 어디로 갈까. 상림공원이 끌렸으나 무더위에 걷기는 무리. 잠시 냇가에 발이라도 담글까 들른 화림동 계곡의 거연정(居然亭)은 주변 자연경관과 어우러진 절묘한 자리에 있었다. 옛 선인들이 자연을 읽고 해석하는 안목의 깊이를 헤아릴 길이 없다. 바람 소리. 계곡 물소리 들으며 좀 더 쉬어가라는 거연정을 뒤로하고 숙소로 향했다. 숙소에 도착해서 족욕을 했다. 허브차와 명상 음악을 들으며 잠시나마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드는 시간이었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잠들 시간, 밖에서 후배로부터 전화다. "별이 있어요. 별이 보여요!"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양 후배의 설레는 목소리다. 지대가 꽤 높은 산자락에 자리한 숙소라 별이 보일 수도 있겠다 싶어 밖으로 나가 보았다. 그야말로 밤하늘의 별들이었다. 북두칠성도 또렷하게 보이고 이름을 알 수 없는 별들이 제법 촘촘하다. 말없이 별을 보는데 시 한 구절이 떠오른다. 이달균 시인의 <관계>다. 
 
"(前略) 별이 저 홀로 빛나는 게 아니다, 그 빛을 이토록 아름답게 하기 위하여 하늘이 스스로 저물어 어두워지는 것이다" 내가 저물어 누군가를 빛나게 한다면 그것도 참 괜찮은 일이라며 나이 들어가며 종종 떠올리는 구절이다. 
 
다음 날, 용추폭포에 도착해서 아내가 폭포 가까이 내려가려고 운동화를 찾더니 호텔에 놔두고 왔단다. 이걸 어쩌나 하는데 다른 자매님은 카드키를 반납하지 않았단다. 숙소에 전화했더니 이번에는 후배가 노트북을 놔두고 갔단다. 엊저녁에는 아내가 콩물국수 야식을 하겠다고 야심 차게 준비한 콩물이 뜨거운 날씨 탓에 변해버려 그냥 버린 일이 있었는데 오늘은 또 이런 일이.
 
나와 후배만 다시 숙소에 다녀오고 아내와 다른 자매들은 어디 괜찮은 카페에서 기다리면 좋겠다 하여 찾은 곳이 안의면 소재지에 자리한 ‘파란 지붕’ 카페다. 물건을 찾아오는 길에 아내의 전화다.
 
이런 팥빙수 맛은 처음이라고. 옛날 고향 맛 듬뿍 나는 팥이라고. 주문해 놓을 테니 언제 도착하느냐고. 카페 안과 밖을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놓았다. ‘요즘 시골은 시골이 아니여’ 모두 한마디씩 거든다. 모든 게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런 예기치 않은 상황도 모두 여행의 한 조각품들이다. 
 
돌아오는 길, 덕유산 리프트카를 타고 향적봉에 올라 남은 걱정거리는 모두 내려놓고 웃음만 가득 안고 내려왔다. 따분하고 지루한 일상이 계속되면 다시 떠나자. ‘그때 가야 했었는데’ 하는 후회가 남지 않도록. 다음에는 어디를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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