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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대한 예의를 생각하며
송용식 수필가  |  songys8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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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9호] 승인 2023.07.24  05:5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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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용식 수필가

“어, 또 사고 났네?” 공사 중인 아파트 현장에서 지하주차장이 무너졌다는 뉴스를 본 아내가 한마디 툭 던진 게 엊그제 같은데 오늘은 아파트 입주자 모임 단톡방이 하자 문제로 시끄럽다. 이번 긴 장마와 폭우로 아파트 지하 곳곳에 비가 새고 곰팡내가 난다는 것이다.

평생을 건설 분야에서 일하는 남편을 생각해서인지 아내는 마치 자기 탓도 있는 양 불편한 기색이다. 사고가 나면 원인을 찾고 관련자에게 책임을 묻는 일들은 수없이 있었다. 그런데도 왜 이런 일들은 계속 일어날까. 현장에서 직접 일을 하는 사람은 기능공과 인부들이다.

자칭 타칭 ‘노가다’라고 불리는 단어에는 위험하고 몸을 써가며 밑바닥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은연중 깔려있다. 이 때문에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반감이 일의 과정과 마무리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나만의 기우일까.

새내기 초급기술자 시절 이야기다. 대학을 졸업하고 운 좋게 건설이 전문인 공기업에 입사했다. 현장 감독으로 명령은 받았으나 처음 안전모를 쓰고 재난 상황을 중계하는 여기자처럼 어색하고 겉돌기만 했다. 감독이라 불리긴 하지만 아는 게 있어야 감독을 하지. 선배 감독의 어깨 넘어도 한계가 있었다. 시공업체 기사에게 작업 지시를 하면 ‘당신이 뭐 아는 게 있어?’하는 눈빛으로 보는 것 같았다. 무시당하고 있는 듯한 상황이 계속되자 스스로한테 화가 났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공사 진척 내용을 확인하러 현장을 돌아보다 방수공사 하청업체 김 반장을 만났다. “김 반장님, 오늘 작업 끝나면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잔 살게요.”하늘 같은 감독님(시공업체 기사나 기능공들이 실력 없는 감독을 비아냥거리며 하는 말)이 나 같은 작업반장에게 왜 저런 호의를 베풀까 하는 의심과 경계의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술을 주고받다 보니 분위가 자연스러워졌다. 20년 넘게 현장만 떠돌다 보니 돈만 벌어다 주었을 뿐 아빠 노릇 제대로 한 적이 없었다며 고개를 떨군다. ‘노가다’판에서 일하는 아빠 직업 때문에 자식이 부끄러워했을지도 모르겠다는 마음 아픔은 삼키는 듯했다.

분위기도 바꿀 겸 내 속내를 드러냈다. 감독이라는 허울 좋은 껍데기를 벗기로 했다. 모르면 알 때까지 묻고 그래야 비로소 내 것이 되는 거니까. 대학 갓 졸업하고 현장 근무를 하게 되니 대학에서 배웠던 것으로는 한참 부족하더라. 솔직히 반장님의 수십 년간 경험했던 노하우를 좀 가르쳐 달라고 했다.

젖었던 눈자위에 생기가 돌면서 “대학에서 다 가르쳐주지 않나요?”하더니 둑 터진 물처럼 거침이 없다. 실력은 X도 없으면서 폼만 잡는 시공회사 기사 욕할 때는 나 들으라고 하는 말 같았다. 누구나 인정받고 싶어 한다. 자기를 인정해준 사람에게는 최선을 다한다. 말은 앞뒤가 없었지만 여러 방수공법의 특징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방수와 미장 그리고 벽돌 쌓을 때 쓰는 모래가 어떻게 다른지, 맞지 않는 모래를 썼을 때 어떤 하자가 생기는지를 설명하며 눈과 손으로 확인하는 요령까지 알려 준다.

추임새까지 넣어가며 고개를 끄덕여 주니 화장실 방수 끝나면 며칠간 물을 채워 놓고 누수가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방법론까지 얹혀준다. 소주 세 병에 닭똥집, 해삼에 홍합 국물의 수강료로 일타강사에게 족집게 강의를 들었다. 헤어질 땐 한참 거나해진 김 반장이 군대식 거수경례를 했다. “술 맛있었습니다.

우리 현장의 방수공사는 하자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렇게 도장공사, 도배공사 등 다른 공종(工種)도 김 반장에게서처럼 배워 갔다. 하고 싶은 일은 방법을 찾고 하기 싫은 일은 핑계를 찾는다더니 그렇게 터득한 생생한 날 지식은 기술자로서 기본을 갖추는 계기가 되었다.

현장에서 함바(인부식당)를 운영했던 지인의 말도 생각난다. 식당 안은 시공회사 직원과 현장 인부 자리를 따로 만들었는데 이 칸막이를 없앴다고 했다. 현장도 엄연한 계급사회라고 생각한 시공회사 직원들은 불만이었지만 을과 병의 처지에 있던 기능공과 인부들은 한 공간에서 밥과 반찬에 차별을 없애는 시도에 놀라워하더라는 것이다. 여름철 아파트 슬래브에서 뙤약볕 아래 일하는 인부들에게 얼음에 잠겨둔 물을 수시로 올려보냈다고 했다.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배려하면 그만한 가치를 만들어 낼 것이라는 자기 믿음이 있었단다.

요즈음 현장에는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들어와 있다. 3D 업종이라 내국인이 기피하는 현장 노동력을 그들이 메꾸고 있다. 기술도 부족하고 언어 소통에도 문제가 많다 보면 또 다른 부실 공사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이들과 소통에 신경을 써야 하고 인간적으로 대우해주어야 한다.

큰 사고는 관리 소홀에서 일어나고 하자는 책임감 부족에서 일어난다. 모두 사람이 하는 일이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킨다는 것은, 자신이 하는 일에 기본을 갖추고 끝까지 책임을 다하며 상대방을 배려하는 따뜻함이 배어 있어야 함을 의미하리라. 거칠기만 한 현장이지만 서로 예의를 지키고 자기 도리를 다해 준다면 사고와 하자는 훨씬 줄어들 것이다.

비 내리는 오후, 지금 누군가에게 결례를 범하고 있는 일은 없는지 돌아보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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