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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손을 놓고 돌아선 고모(顧母)역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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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8호] 승인 2023.07.10  06:2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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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채석 작가

작곡가 박시춘은 우리 대중 가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대표곡은 남인수가 부른 〈애수의 소야곡〉이며 이 곡과 함께 명성을 얻기 시작해 〈가거라 38선〉, 〈굳세어라 금순아〉 등 수많은 히트곡이 있지만, 오점도 있다. 〈아들의 혈서〉, 〈결사대의 아내〉, 〈혈서지원〉 등 일본 군국주의에 부응하는 노래를 작곡하고, 전시 물자 증산을 위한 산업전사격려위문예능대 등에서 활동한 것이 문제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어 있다.

아무튼, 작사가 작곡가 두 콤비 중 유호는 황해도 해주 사람이고, 박시춘은 경상남도 밀양 사람이다. 달리 남의 정서와 북의 정서가 합작으로 한국전쟁 당시의 시대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대표적인 노래가 〈전우야 잘 자라〉다. 맥아더가 인천을 치고 들어와 9 28일 중앙청에 인공기가 내려지고, 경기도 하남에 피신해 있던 유호가 서울로 돌아오고, 피난 갔다 아랫녘에서 올라온 박시춘과 유호가 명동에서 우연히 만났다.

전쟁 통에 서로 살아 만났으니 얼마나 반갑고 감격스러웠겠는가. 부둥켜안고, 술을 마시고, 취한 와중에도 UN군과 국군이 38선을 넘어 북진을 하고 있다니 전선의 사기를 높일 노래를 만들자는 박시춘의 제안에 유호의 머릿속에는 분노에 가득한 병사의 눈이나, 거리에 내팽개치듯 나뒹군 소총이나, 화랑 담배 등이 그려졌을 것이다. 이로 의기투합해 즉석에서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노래가 바로 〈전우야 잘 자라〉다.

고모역이 있는 대구는 굳건한 낙동강 방어선의 구축으로 북괴군이 이르지는 못했다. 그러나 대구 북방의 낙동강 저지선은 한국전쟁 최고의 격전지였다. 휴전 직전 백마고지보다 칠곡과 다부동에서의 희생은 인천상륙작전이라는 교두보를 만들었고 전세를 역전시켰다. 중공군이 개입하기 전까지는…. 꽹과리에 피리를 불며 압록강을 넘은 인해전술의 중공군에 의해 장진호 전투에서 밀린 미군은 흥남 부두를 버리고 후퇴한다. 1ܪ후퇴다.

이를 배경으로 한 노래가 강사랑 작사 박시춘 작곡의 〈굳세어라 금순아〉다. 노래의 가사 중 국제시장이나 영도다리는 부산의 지명이지만, 이 곡을 만든 두 사람은 대구에서 피난 생활을 보냈다. 피난지가 중요치는 않다. 중요한 건 노쇠한 늙은이 이승만이 외치던 ‘북진통일’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지금은 “남북통일 그날이 되면”이라 노래하지만, 발표 당시에는 “북진 통일 그날이 되면”이라 노래했으니까.

전쟁이 아름다울 수 없다. 그래서 전쟁은 지독히 슬프다. 파괴와 죽음에 반공 이데올로기는 족쇄가 되었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원한이야 피에 맺힌 적군을 무찌르고서/꽃잎처럼 떨어져 간 전우야 잘 자라.//우거진 수풀을 헤치면서 앞으로 앞으로/추풍령아 잘 있거라 우리는 돌진한다./달빛 어린 고개에서 마지막 나누어 먹던/화랑 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야.

이 노래를 부르다 보면 왠지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 전우의 시체 등 수많은 죽음을 보고도 슬퍼할 겨를은 사치가 된다. 그만큼 전쟁의 비참함이 노래에 담겨있다. 그래서 감동이다. 비극적 감동, 특히 “달빛 어린 고개에서 마지막 나누어 먹던/화랑 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야”부분을 노래할 때면 가슴이 울컥하고 먹먹하다. 군 복무 초기 제2 하사관학교에서 보급품으로 받아 피웠던 필터 없는 그 담배, 화랑 담배.

대중가요이자 군가인 〈전우여 잘 자라〉를 부르는 병사들, “어머니의 손을 놓고”입대한 병사들에게 가장 큰 아픔이 되는 건 바로 어머니다. 그렇게도 힘든 유격장에서 피와 땀으로 “유격”“유격”을 부르짖으며, 외줄 두 줄 세 줄을 밀치며 훈련에 임하다가도 교관이나 조교가 〈어머니의 마음〉을 부르게 하면 백이면 백 울지 않은 병사는 한 명도 없었다. 그러한 병사들이 고향의 어머니를 그리는 또 다른 노래가 있다. 〈전선 야곡〉이다.

이 노래 역시 유호와 박시춘의 합작품으로 신세영이라는 가수가 불렀다. “가랑잎이 휘날리는 전선의 달밤/소리 없이 내리는 이슬도 차가운데/단잠을 못 이루고 돌아눕는 귓가에/장부의 꿈 일러 주신 어머님의 목소리/아아 아아아 그 목소리 그리워//들려오는 총소리를 자장가 삼아/꿈길 속에 달려간 내 고향 내 집에는/정한수 떠 놓고서 이 아들의 공비는/어머니의 흰머리가 눈부시어 울었소/아아 아아아 쓸어안고 싶었소”

이 노래의 3절 가사는 생략하지만, 정말이지 어머니를 매개로 한 최루성이 강하다. “어머님의 목소리”나, “이 아들의 공비는/어머니의 흰머리가 눈부시어 울었소”는 캄캄한 달밤에 고향을 그리며 홀로 서 있는 초소에서 몇 번이나 부대 담장을 넘을까를 고민하게 한다. 갑자기 MBC의 군인 프로그램 ‘우정의 무대’중 ‘고향 앞으로’코너에 어머니가 하늘나라에 있음에도 우르르 무대에 오르던 병사들의 모습이 기억된다.

우리의 역사는 일제 강점기 고복수의 노래 〈타향살이〉와 같이 간도로, 만주로, 떠도는 유랑의 생활이 광복으로 끝나는가 싶었다. 그러나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한강 철교가 폭파되고, 수원까지만 가보겠다던 대통령이 부산까지 간 것이 신호탄으로 ‘피난살이’가 시작되었다. 이때 부산의 인구가 35만 정도였는데 피난민 인구 50만이 더해진다. 하꼬방 같은 판잣집에 루핑 지붕의 집들이 영주동이나 수정동 산비탈에 난개발 아닌, 난개발이 되었다.

이후 나 홀로 왔다는 사람은 국제시장에서 장사를 한다고만 말할 뿐 금순이와 어떤 관계인지 모르지만, 일가친척도 없이 영도다리 난간 위에서 금순이도 보고 싶고, 고향 꿈도 그립고 하는 것이 죄다 피난살이의 서러움이다. 동안 영도다리가 4차선 이상의 다리에 주어지는 영도대교가 된 이후로 벌떡 일어서던 다리는 요지부동이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들어 올리던 날, 깊은 눈으로 바라보던 어르신들의 모습이 기억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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