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산강 승촌보 쪽에서 본 문화마을은 해송에 둘러쌓여 아늑하게 다가온다.

 

편리, 풍요, 아름다움, 교양, 세련, 우아함... ‘문화’ 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이다. ‘문화’적 삶을 살고자 하는 것은 사람의 기본적인 욕구라고 할 것이다. 나주의 유일한 문화마을이 승천보가 내려다 보이는 영산강변 노안면 학산리 7구에 있다. 교통이 불편하고 다섯 마을로 흩어져 서로 만나기조차 힘들던 도산리 1구 도천마을 사람들과 새로 이사 온 사람들이 지난 2000년부터 마을을 이뤄 어울려 살고 있다.

 

1998년부터 1999년까지 나주시가 농어촌공사 전남지사에 위탁해 당초 61세대를 목표로 ‘노안지구 문화마을 조성사업’을 추진했지만 아직까지 20여 세대는 입주하지 않은 채 비어 있어 이웃 주민들이 텃밭으로 일구고 있다.

 

도천마을에 살다 문화마을 조성 추진위원으로 활동했던 박래호(80세) 씨는 “1998년에 농협을 퇴직하고 퇴직금으로 집을 지었다”며 “지형이 좋고 교통이 편리해서 살기 좋다”고 한다. 박 씨는 “다른 지역에서 살다 이사 온 사람들이 이사떡만 돌리고 나서 마을 일에 함께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아쉬움을 표하며 “함께 대화하고 인사하고 더 잘 어울려 살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낸다.

 

▲ 문화마을 사람들이 ‘100세안심 경로당’ 시범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30여년의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2019년 귀향한 김정숙(68세) 씨는 “세 아들이 모두 서울에 살고 있어 남편이랑 한달에 대여섯번은 서울 나들이를 한다”며 “퇴직하고 내려오기 위해 마련한 조카의 집터에서 가족들 먹을 고추며 깨, 마늘, 고구마, 옥수수 등을 기르며 소일하고 있다”고 한다.

 

광주시 광산구에 살다 7년 전 문화마을 주민이 된 박중기(72세) 씨는 “대리석 가공업을 했는데 나이 들면서 시골살이에 대한 꿈이 있었다”며 “지출도 줄이고 운동과 여유를 즐기고자 승촌보공원이 가까이 있는 이곳으로 왔다”고 한다. 박 씨 부부는 광주시에서 직장생활하는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위치도 좋고 강아지 키우며 조용한 전원생활에 맞춤이다 싶어 들어왔다”는 이수화(51세) 씨는 “살아보니 전투기 소음으로 인한 불편이 이만저만 아니다”고 한다. 기자가 마을을 찾을 때마다 어김없이 광주군공항의 전투기 비행소음이 취재를 방해했다. 인근 지자체 공무원인 이 씨 역시 광주시 광산구의 아파트에서 살다 2021년에 집을 짓고 이사 왔다.

 

경남 창원시가 고향인 최예서(52세) 씨는 “사업 관계로 인천에 살다 광주 와서 10여년 살고 작년 10월에 옆 마을 출신인 형부 소개로 집을 사 들어왔다”며 “자가용만 있으면 생활에 불편이 없고 집 안에 자그만 텃밭을 일궈 상추며 옥수수 등을 심고 기르는 재미가 있다”고 웃음짓는다. 최 씨는 “큰 아들은 무난히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데, 작은 아들이 전공과 전혀 관계없는 미용을 배운다고 해서 걱정”이라고 한다.

 

도천마을 남편을 만나 ‘노안사람’이 된 광주시 광산구가 고향인 강영자(80세) 씨는 “도천마을에서 10여년 벼농사 짓고 살다 광주로 나가 건축 일을 해서 아들과 두 딸을 키웠다”며 “마을이 조성되던 2000년에 터를 분양받아 집 짓고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강 씨의 논밭은 여전히 도천마을에 있다고 한다. 

 

▲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약효가 뛰어나다고 알려진 샘에 여전히 물이 솟아나고 있다.

 

“전두환이 때문에 사업이 망했다”고 말문을 여는 이동환(78세) 씨는 “79년 말에 수천만원을 투자해서 도자기 판매업을 시작했는데 전두환이 정권을 잡으려고 광주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바람에 물건만 납품하고 수금할 수 있는 형편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빚지고 못 사는 성격 때문에 남은 물건을 헐값에 정리해서 채무를 해결하고 고향으로 내려왔다”는 이 씨는 “큰 욕심 부리지 않고 남들보다 열배 더 열심히 하자는 각오로 논밭 일구고 미나리 키워 딸 다섯을 키웠다”고 한다. 

 

문화마을 북쪽으로 국도 13호선 사이에 해송정이라는 정자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원래 이곳은 육송과 적송이 많은 지역인데 한양으로 과거보러 가는 선비들이 남해안의 해송 씨앗을 가져다 뿌렸기에 해송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해송에 둘러쌓인 언덕에 밀양박씨 청제공파 부동공 문중의 선산과 2021년 지어진 제각이 있다.

 

마을 북서쪽에 오래된 우물이 있다. 예로부터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물맛이 좋으며 약효가 뛰어나다고 알려진 샘이라고 한다. 마을 조성 초기만 하더라도 주민들이 생활용수로 사용했고 지금도 샘물이 솟아나고 있지만 사유지인 탓에 더 이상 이용할 수 없다고 한다.

 

1993년 제8대 노안농협 조합장을 지낸 고 김용재 씨가 마을에 살다 5년여 전에 작고했다고 한다. 문화마을을 올해 나주시보건소가 운영하는 ‘100세 안심 경로당’ 시범사업에 선정돼, 주민들의 건강 증진을 위한 다양한 신체활동과 치매예방을 위한 인지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정부 계획대로 조속히 광주군공항이 이전한다면 문화마을의 ‘문화적 풍요’가 더욱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직원들 애로사항 듣는 것부터 사업 시작!”
“다른 지역에서 벌어 나주에서 쓴다”

 

남편과 함께 건축 일을 하는 최덕례(54세) 이장은 “목포시와 장흥·무안·강진·영암군 등 현장에 일하러 다닌다”며 “열심히 일하는 것만큼 수금도 잘해서 힘들게 일하는 직원들이 더 힘이 날 수 있도록 일주일에 서너번은 함께 식사하며 이야기 나눈다”고 한다.

 

“굳이 회식이랄 것도 없다”는 최 이장은 “직원들의 애로사항이 무엇인지 듣는 것부터 사업은 시작된다”고 덧붙인다. “건축 일은 원래 남편이 창호 회사에 다닌 것이 인연이 돼서 신·증축과 리모델링까지 확대한 것”이라는 최 이장은 “남편의 일처리가 꼼꼼하고 착실한 만큼 일하고 나서 좋은 평을 들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아침에 식당에 출근해서 영업 준비해 놓고 건축 현장으로 달려가 회사 일 보고 하다 보니 둘 다 제대로 되지 않더라”는 최 이장은 “빛가람동에서 초밥집도 하고 마을 입구에 ‘최가네 식당’ 간판도 달았지만 회사 일에 전념하고자 정리했다”고 한다.

 

올해로 4년째 이장을 맡고 있는 최 이장은 노안면의 대표적인 ‘똑순이’로 통한다. 자율방범대장과 의용소방대장, 새마을부녀회장으로 10년 넘게 활동해서 얻은 별명이다. 충남 공주시가 고향인 최 이장은 직업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광주시에서 초·중·고를 다녔다.

 

친구 소개로 용산마을이 고향인 남편을 만나 두 아들을 두고 있는 최 이장은 “남편은 첫 인상부터 지금까지 순하기만 한 사람”이라고 웃음짓고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지역인재채용으로 빛가람동 공공기관에 취직해 10살 아래 중학생인 동생을 보살피고 있는 큰 아들이 대견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