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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치마를 둘러보니
송용식 수필가  |  songys8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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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5호] 승인 2023.05.29  02: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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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용식 수필가

월요일 아침은 평소 보다 서둘러야 한다. 서두르되 유연하게 물처럼 흘러야 한다. 매주 한 번씩 갖는 주간 회의가 있는 날이기도 하고 일터까지 거리가 먼 까닭이다. 일어나 샤워를 한 뒤 아내가 챙겨놓은 아침을 부지런히 먹고 집을 나서면 출근길 한 고개를 넘는 셈이다.

그러나 그날은 그렇지 못했다. 아내가 샤워 중인 나를 대신하여 핸드폰을 받으러 급히 서두르다 넘어져 거실 바닥에 어깨를 부딪친 것이다. 아내는 괜찮은 것 같으니 파스만 붙여달라 했다.

적은 나이도 아니고 넘어져 부딪힌 것이라 나는 파스를 붙이면서도 정말 괜찮냐, 병원에 가봐야 하지 않느냐며 몇 번의 되물음을 했다. 나의 염려를 덜어주고 싶었던 것인지 출근길을 걱정했던 것인지 견딜만하니 걱정하지 말고 어서 출근하란다. 아내의 말을 뒤로하고 안도와 염려 반반의 심정으로 집을 나섰다. 아내는 다음 날도 괜찮다며 예정대로 움직이라고 해 나는 염려를 내려놓고 나주로 내려갔다.

다음날,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통증이 멈추지 않아 정형외과를 찾았더니 뼈에 금이 가 깁스를 했다고. 순간, 내려놓고 있던 염려가 마음을 덮었다. 아내는 괜찮지 않았다. 탈이 난 것이다. 그제야 웬만한 것은 참고 견디는 아내의 평소 말투가 생각났다. 늘 입에 붙은 '괜찮다'라는 그 말. 그러니까 이번에도 아내의 '괜찮다'라는 말에는 금이 간 뼈의 통증과 비명이 숨겨져 있던 것임을 놓친 것이다. 평생을 함께 살았으면서도 아내의 말과 그에 담긴 속사정에 아직도 까막눈이라는 자책과 함께 짐을 챙겨 급히 서울로 올라왔다.

다시 찾은 병원, 금이 간 뼈가 많이 벌어졌다며 큰 병원에 가서 수술 여부를 판단해 보라고 한다. 사고 후 10일이 지나 있었다. ‘큰 병원’과 ‘수술’이라는 단어에 염려와 걱정의 수치가 최고치를 찍었다. 아내는 정형외과 전문병원에서 수술받고 3 4일간 입원하고서야 퇴원했다. 사고 후 23 일만이었다. 수술하고 깁스를 푼 아내가 한결 살 것 같다고 하길래 나는 다시금 물었다. 정말 살 것 같냐고, 정말 괜찮은 거냐고. 아들의 늦장가 일정을 눈앞에 두고 속으로 슬쩍 걱정했는데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다.

아내가 깁스하고 나서부터 나는 앞치마를 둘렀다. 평생 아내만이 했던 일을 아내의 공간과 동선을 오가며 해보니 허둥대기만 했다. 처음 며칠은 서툴러 힘들었고 다시 며칠은 어려워 힘들었고 다시 며칠은 반복되어 힘들었다. 그러면서 ‘쉬운 일이 아닌 집안일을 아내는 평생 맡아 했구나’하는 미안함과 감사였다.

언젠가 보았던 사극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의 한 대사가 떠올랐다. 중전의 유품인 웃저고리를 들추던 임금이 그리움에 눈물을 쏟아내며 하는 독백. "이리도 작았더냐, 그 작은 너를 내가 연모하였다". 그 대사가 이렇게 바뀌어 귀에 들렸다. "이리도 힘들었더냐. 그 힘든 당신인 줄도 모르고 내 평생 당연하게만 여겼다." 해도 해도 끝이 없다는, 하면 표도 안 나면서 안 하면 금세 표가 난다는 그 멀게만 들리던 주부들의 하소연을 조금은 겪어본 기분이었다.

빨래나 설거지는 그나마 평상시 종종 했던 일이라 어렵지 않았지만, 하루 세끼를 챙기는 일은 간단치 않았다. 메뉴도 메뉴지만 재료와 양념 준비부터 맛을 내기까지의 과정은 천리만리였다. 칼을 잡고 써는 법부터 양념 넣는 시간대까지 끝이 없다. 그런 남편의 모습에 재미가 붙었는지 슬슬 놀리기까지 했다.

내가 누려온 당연한 일상, 그 먹고사는 일이 강건너 산 넘어오는 일임을 미처 몰랐다. 무엇이든 변화가 되어 오는 일, 예를 들어 더러운 옷이 깨끗하여 오는 일, 지저분한 공간이 깨끗해져 오는 일, 원재료가 다듬어지고 요리되어 밥상에 올라오는 일, 그리고 무엇보다 별별 일이 벌어지는 세상사에서 무탈하게 하루하루가 이어지고 지속되는 일, 그런 일들은 그냥 저절로 하늘에서 뚝 떨어지거나 땅에서 솟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생을 이만큼 살아보고서야 알게 된 너무 늦은 깨달음일까. 아내가 평생 있던 자리 부엌에 겨우 이십여 일 남짓 경험한 것이 전부이건만 그곳이 늪지요 수렁이다는 생각을 했다. 마를 날 없으니 눅눅하고 누추할 수밖에 없었을 평생도 아내는 그 '괜찮다'라는 말에 꾸역꾸역 삼켜둔 것은 아닌지.

전업주부의 가사노동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보여주는 뉴스를 종종 접한 적이 있다. 그때마다 밖에서 하는 일보다 더하랴 싶었다. 짧은 경험으로 무슨 할 말이 있을까마는 이것부터 바꿔보면 어떨까. 식구는 밥상을 함께 하는 사람이 아니라 밥상을 함께 준비하는 사람으로 개념을 바꿔보는 것이다. 괜찮다며 삼켜온 평생의 속내가 있다면 그도 안녕한지 살펴볼 일이다.

숙명처럼 당연하게 여긴 그 어떤 일들로 인해서 그 속내가 다 금이 가 있는지 모를 일이니. 앞치마를 둘러보니 비로소 알겠다. 이 땅의 전업주부로 살아가는 모든 분께 늦었지만 감사와 존경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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