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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다른 체험이 남다른 요리를 만든다
심은일  |  cimdfj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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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4호] 승인 2022.12.05  06: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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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은일 요리연구가

학창 시절 우수한 성적으로 5월 초에 국내선 선박회사에 선원으로 취업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첫날부터 업무 외에도 주방일까지 도맡아서 하게 되었다. 직급과 자격증과는 상관없는 선원들 사이의 이어져 오는 오도된 악습 같은 일이다.

나의 경험은 요즘 젊은 친구들이 말하는 ‘열정 페이’, ‘노동력 착취’그런 단어로는 부족하다. 미성년자 약취, 갈취 이것으로도 부족하다. 지금 사회적 분위기에 맞춰서 말하자면 살인미수 또는 자살 종용 정도라는 표현을 써야 비슷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하루에 3번씩 아침, 점심, 저녁 정말 밥을 먹듯이 온갖 쌍욕을 먹으면서 구타당했다. 업무적으로는 지적받을 일이 없었지만, 식사 시간에는 꼭 지적받고 욕을 먹었다.

“야, 이 썩을 놈아 밥도 안 해봤냐? 이 새끼는 김치찌개도 못 끓여!, “배를 탄다는 놈이 매운탕도 못 끓이냐! 해주는 밥만 처먹어봐서 남 줄 밥은 개떡으로 만들어놨네!, “이런 상놈의 새끼! 느그 애미는 된장국도 안 끓여줬냐! 호박을 넣어야지!

지난날 그들의 처지에서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중학교도 졸업 못 하고 해기사 면허증이나 직급도 없이 허드렛일만 하면서 경력을 쌓아 선박 기관사나 선박 항해사가 된 그들의 눈에는 해운 계열 최고의 명문 고등학교 출신의 실습 항해사가 정말 꼴 보기 싫었을 것이다. 이것은 대학을 갓 졸업한 신임소대장이나 부사관 학교를 갓 수료한 신임부사관을 병사들이 대하는 것과 비슷해 보이지만 상황은 전혀 다르다.

일단 20살 넘게 차이 나는 이들과 24시간 붙어서 지내야 했고 그곳에서는 나를 보호해줄 법률적 장치나 CCTV도 없었다. 그들은 나에게 복종할 의무도 전혀 없는 상황이다 보니 그들이 원하는 대로 식사를 맞춰줘야만 했다. 요리책을 사보면서 반찬을 만들었고 입항해서 외출을 할 수 있는 날에는 피시방에 가서 레시피를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적어왔었다.

식사 시간마다 곤욕을 치렀지만, 폭력과 욕설에 굴복하지 않고 출렁이는 주방에서 완벽한 식사를 끼니때마다 제공하는 것은 어느덧 나의 삶의 목표가 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욕먹기 싫고 두들겨 맞기가 싫었다.”그리고 나는 항상 배가 고팠다. 선원 생활 중 가장 힘든 것은 주방일이나 외로움이 아니라 수면 부족이었다.

선원들은 밤새 술을 마시다 취해 물을 마시러 주방에 들어와서는 냉장고 문을 열고 소변을 보는 일이 아주 많았기 때문이다. 소변은 다음날 청소하고 닦아내면 그만이지만 냉장고 문을 닫지 않아 식자재가 상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에 다음날이면 식사를 준비할 수가 없었고 그런 날은 어떤 말로도 표현하지 못할 만큼 정말 힘이 들었다. 냉장고의 식자재를 지키기 위해 일주일에 2번 이상은 자다가도 일어나 냉장고 앞을 지켜야만 했었다.

시간이 많이 지났어도 식사 시간에는 반찬이나 국의 간이 맞지 않으면 밥그릇과 수저가 얼굴로 날라왔다. 그 상황을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간이 안 맞는 날은 내가 맞는 날이다.

지금도 그때 생긴 크고 작은 상처들이 나의 얼굴에는 고스란히 남아 있다.

중·고등학생 때 즐겨 마시던 커피를 그때 끊었고 지금까지도 나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이런 위험하고 고된 시간을 견딘 덕분에 2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주방에서 항상 민첩하고 순발력 있는 요리 감각을 발휘할 수 있다

이 세상 그 누구와 견준다고 해도 자신 있게 내가 최고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것 또한 그들의 폭력 덕분일 수도 있다.

자랑삼아 이야기하자면 지금 작은 초밥집을 운영하고 있는데 초밥의 생선 하나하나가 간이 모두 다르고 반찬과 각종 소스와 드레싱의 농도와 간 또한 모두 다르다. 그 때문인지 입맛이 정말 예민한 사람들은 이것을 알아차리고 반드시 재방문해주신다. 이처럼 아프지만 ‘남다른 경험’이 남다른 요리를 할 수 있게 만들어 준 것이다. 정말 악몽 같은 기억이고 그때는 정말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롭기만 했었다. 하지만 세월은 지나갔고 어린 시절 나에게 폭력을 행사했던 그들에게 죄책감이 남아 있을 테지만 나에게는 ‘남다른 요리 실력이 남았기에 나는 진정한 승리자’라고 생각한다.

악몽 같은 기억들이 떠오를 때마다 지금의 나는 얼마나 편하고 행복하게 일하고 있는지 하루하루가 정말 즐겁기만 하다. ‘행복은 견디어냈던 고통만큼 달콤한 것’이다.

요즘 친구들이 주방일이 힘들다고 할 때마다 나는 이렇게 말한다. “육지에 붙어있는 주방만큼 깨끗하고 편한 곳은 없었다!”지금 주방일이 힘들고 괴롭다면 이 말을 기억해라! “남다른 체험이 남다른 요리를 만들어 낸다.

전국에 수많은 횟집과 매운탕 집이 있지만 간이 안 맞을 때마다 날아오는 쇠젓가락과 밥그릇을 피해 가면서 어린 시절부터 특수훈련을 받아온 요리사가 근무하는 끓여주는 매운탕의 맛과 어찌 비교할 수 있겠는가? 나의 초밥집의 매운탕은 ‘피와 땀 그리고 눈물까지 서려 있는 진정한 맛’이 난다. <셰프의 시크릿 chapter 2 남다른 체험이 남다른 요리를 만든다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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