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노금 나주시의원

3월 1일은 향교에서 공자님께 제사를 올리는 석전대제 행사가 있는 날이었다. 향교에서 보내온 초청의 글을 읽으면서는 올해만큼은 별일이 있어도 꼭 참석해야겠다고 다짐 했었다. 그러나 올해도 3.1절과 겹친 휴일이 되어 오전에 다른 갑작스런 일로 참석하지 못해 아쉽고 죄송스런 마음이다.

개인적으로 나주의 그 어떤 곳보다 향교를 자랑스럽게 생각 한다. 특별히 교육에 관한한 모두가 존경하는 김평호 전교님께서 교육계에 몸담으셨던 오랜 경륜을 지역민 교육에 열정적으로 쏟으시는 것을 보면서는 참으로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다.

성장제일주의만을 주창하는 산업사회에 접어들면서 우리 교육은 성과만을 지향하느라 많이 급하고 가벼워져 버린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때에 향교교육이 오늘의 삶에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는 지역민들의 평가와 함께 앞으로 보다 더 귀한 프로그램을 어떻게 접목을 시켜야 할 것 인가를 과제로 남겨두고 있다.

이런저런 개인적인 욕심 때문에 지난해 <향교교육의 활성화를 위한 조례>를 만들어 지속적이고도 적극적인 행정의 지원을 펼 수 있는 법안까지 만들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향교가 나주역사에서 갖는 큰 의미를 생각 할 때마다 너무 미흡한 지원이었다 싶은 마음이 드는 것 또 한 사실이다.

이런 저런 향교에 대한 오랜 관심과 애정 때문에 타지에서 친분이 있는 이들이 잠깐 나주곰탕이라도 한 그릇 하러 온다고 하면 가급적 시간을 내어 다른 곳에 우선해서 오분 거리에 있는 향교를 둘러보자고 권하곤 한다.

지난여름 비가 오는 날 오랜만에 얼굴이라도 보자며 문득 나주를 찾아온 여고 동창생에게 곰탕 한 그릇을 대접하고 시간이 좀 여유가 있어서 나주 향교를 찾은 적이 있다. 촉촉히 비에 젖어가고 있는 향교는 언제나처럼 정갈하고 고요했다. 이슬비보다는 조금 더 많은 비였지만 중년의 두 여성이 나란히 우산을 쓰고 고즈넉한 향교를 둘러보는 것은 또 다른 정취에 젖기에 충분했다. 특별한 이야기를 나눌 필요도 없이 둘이는 그저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향교의 중심인 대성전 마루에 걸터앉았다.

 양반가의 자제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기도 하지만 공자를 비롯한 여러 성현을 모시는 유교의 종교공간이라는 말도 전해 주었던 것 같다. 또 국내에 남아있는 향교 대성전 건물 가운데 나주 향교가 그 규모나 격식 면에서 단연 제일이라면서 아는 체를 했다.

그리고 대성전 벽 흙은 공자의 고향에서 가져온 것이라는 말과 향교를 지키고 서있는 우람한 은행나무는 태조 이성계가 심었다는 이야기에 육십 넘은 나이에 비로소 내 고향 나주의 역사적 사실과 시대를 주도해온 문화에 자존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며 기뻐했다.

 환갑이 다되어가는 중년의 여성들이 낙숫물에 두 손을 내어 맡기며 그저 즐거워하고 있을 때 낯 선 어르신 한 분이 경내를 돌아보시면서 비닐봉지에 패트병 같은 쓰레기들을 주어 담고 계셨다. 전혀 생소한 얼굴이셔서 “나주 사시냐고?” 물었더니 지나가는 여행객이라고 말씀하시는데 담담한 그 한마디의 대답이 왜 그리 가슴에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는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그 어르신은 모자에 배낭까지 메고 계셨다. 당신의 말씀처럼 그저 지나가는 길손임이 분명한 분이셨다. 당신 혼자서 여행길에 나섰다가 그 유명하다는 나주곰탕 한 그릇을 드셨다고 한다. 그리고 평소 꼭 한번 다녀가고 싶었던 향교를 둘러보시다가 비닐봉지와 패트병이 많이 거슬렸고 어느 곳 에서나 그러셨던 것처럼 쓰레기를 주어 담으셨던 것이다.

더 젊은 우리들이 먼저 했어야 했을 일들이었는데 왜 젊은 우리 눈에는 그게 안보였는지 모르겠다. 노인이 많으면 사회가 병약해지지만 어른이 많으면 주변이 윤택해 진다고 했다. 그렇다. 시간이 흐를수록 부패하는 음식이 있고 발효하는 음식이 있듯이 사람도 나이가 들수록 노인이 되는 사람과 어른이 되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노인은 머리만 크고 소리만 커진 사람이고 어른은 마음이 성숙해지고 깊어지는 사람일 것이다. 노인은 더 이상 배우려하지 않지만 어른은 어린사람에게도 배우려 한다. 노인은 아직도 채우려하지만 어른은 비우고 나눠주기에 애를 쓰지 않을까 싶다. 노인은 나이가 들수록 자기만 알지만 어른은 이웃을 배려한다. 노인은 대개 나를 밟으면 가만두지 않는다고 하지만 어른은 나를 밟고 올라서라 한다. 노인은 늘 남과 자신을 비교하고 늙어가는 것을 슬퍼하지만 어른은 나다운 아름다움을 찾아 속사람이 충만해지는 것을 즐거워하신다.

실례를 무릅쓰고 연세를 여쭈니 이제 딱 팔십이라고 하셨다. “아내랑 왔으면 좋았을 터인데...”비에 젖은 나무를 내려다보며 혼잣말로 되 내이는 어르신의 모습이 많이 쓸쓸해 보였다. 비 오는 오후의 고색창연한 향교에서 비로소 나는 오랫동안 그리면서 기다려왔던 그런 어른을 만날 수 있었다. 나주 향교와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그 어르신처럼 나도 과연 그렇게 아름답게 익어가며 나이 들어 갈수 있을까 가끔씩 되물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