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노금 나주시의원

며칠간 봄날처럼 따사롭던 햇살이었다. 그런데 지난 2월 23일 고향인 세지면의 "시장과 주민과의 대화"가 있던 날은 봄을 시샘 하듯 갑자기 앵도라진 날씨가 찬바람까지 불기 시작 했다.

자신의 지역구가 따로 있는 의원들은 이런 행사에 참석 하는 것이 아무런 거리낌이 없겠지만 비례대표 여성의원들은 늘 이런 행사 참여가 애매한 부분일 수밖에 없어 참석 범위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 짓궂은 동료 의원들은 우스개로 비례대표는 나주 전역을 다 다녀야한다는 말을 하기도 하지만  다행히도 나는 이런 경우 고향이라는 이유를 들어 처음부터 세지면 한 곳만을 정하여 참석을 해 왔다.

면사무소 입구에는 "농민수탈 부당 환수금 절대 못내!! 변동 직불금 전액 내놔라!!" "쌀값 대폭락! 정부는 쌀수입 중단하고 쌀값을 보장하라!" "농어민 월급제 지원사업 신청 접수" 등의 현수막이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현수막의 문맥에서는 농민들이 절규하며 흐느끼는 듯한 피울음이 들리는듯하여 무거운 마음으로 면사무소에 들어서는 순간 그동안 뵙지 못했던 한두현 어르신을 뵈올 수 있었다. 워낙 오랜 세월의 개인적인 귀한 인연들은 버려두고라도 이미 나주를 넘어 전라남도를 대표하셨던 큰 어른이셨기에 그동안은 면단위 행사는 안 오시나보다 라는 막연한 생각만 해 오던 터였다. 그런데 당신은 그게 아니셨던 것이다.

 반가이 달려가 무릎으로 인사를 드리는 내게 면장 자랑을 하시는 거였다. "본 면 출신 면장이 부임을 하니 이렇게 어른을 모시는 대접사가 다르고 각 마을의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써 준다며 칭찬하는 이들이 많다"는 말씀이셨다. 시장께도 김장식 면장 자랑을 입이 마르도록 하시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별것 아닐 수도 있는 일 일수 있겠으나 정작 94세의 당신께서는 그동안 들쭉날쭉한 행정의 초청에 많이 섭섭하시기도 하셨겠다 싶었다.

3시부터 시작된 시장과의 대화는 문자 그대로 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자신의 지역에 대한 바램과 소망을 한데 담아 가감 없는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일 년 만에 한 번 갖는 시장과의 대화 시간을 통해 쏟아내는 이야기들은 자신의 마을 안길 포장에서부터 수질오염에 대한 안타까움과 자신의 고향에 대한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는 그런 시간일 수밖에 없었다.

그 중 나의 귀를 번쩍 뜨이게 하는 것은 한 주민대표의 벽류정에 관한 이야기였다. 아!아! 벽류정...벽류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는 주민은 벽류정을 얼마나 사랑하시는 분일까? 초등학교 1학년 때 여름이 생각난다. 일곱 살의 어린 나는 하교 후에 곧바로 집으로 가지 않았다. 반드시 벽류정의 맑은 물가에서 벌거벗고 물놀이를 하곤 했는데 그 물이 얼마나 맑았는지 물속에 잠수하여 작은 조개를 잡던 일조차 꿈속에서의 일처럼 아련히 기억이 났다.

맑디맑은 냇가...그 때는 어디고 그렇게 깨끗한 물줄기가 마을을 감고 돌았었다. 그러나 이제는 온 국민이 피 같은 휘발유를 펑펑 써대며  맑다는 물줄기를 찾아 온 나라 산천을 들쑤시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고백컨대 의원이 되어서 맨 먼저 떠올린 곳이 내 고향의 유서 깊은 벽류정 그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런데 지난 3년간 난 무얼 했지 싶었다. 밖에서 본 의회와 안에서 싸우며 경험하는 의회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처음에는 제법 의욕적으로 덤볐던 일들이었건만  어느 사이 나는 많이도 무디어져 버렸다. 벽류정을 잊고있었다니.

짧은 시간 동안 이었지만 벽류정은 다시금 나를 일으켜 세운 것 같다. 정확히 세시에 시작해서 5시에 행사는 끝났고 강인규 시장께서는 참석한 의원들에게도 지역민들에게 인사를 드릴 기회를 주었다. 김판근 의장, 장행준 부의장, 김철수 경제건설위원장의 인사말에 이어 마지막 내 차례가 되었을 때도 나는 벽류정의 꿈에서 조금은 덜 깨어 있었던 것 같다. 간략해야할 마무리 인사말이 촌스럽게도 조금 길어져 버렸다. 고향에 대한 나의 깊은 애정과 목마른 사랑을

애둘러 표현 하자니 어린 시절 논두렁에서 잡았던 또랑 새우이야기며 내가 세지중학교 1회 졸업생이라는 것부터 시작한 것 같다. 그리고 오늘 행사 시작 전에 뵈었던 94세의 한두현 회장님이 어느 만큼 크고 귀한 어르신이라는 말씀을 많은 어르신들 앞에 기어이 말씀드리고 말았다.

내가 아주 어렸을 적부터 살아왔던 내 고향의 아름다운 정신과 얼을 귀한 어른 한분을 공경하는 데서 확인하며 감격스러웠다고. 그리고 아주 가끔씩 이지만 성산리부터 죽동까지의 울퉁불퉁한 하천 뚝 길을 이리저리 차로 달리며 고향의 정기를 호흡한다는 이야기 그리고 이처럼 아름다운 내 고향이 쇠락해 가지 않기 위하여 그리고 우리의 후손들이 누려가야 할 자자손손 복된 고향을 만들기 위해 나 또한 작은 힘이지만 함께 하겠다는 그런 이야기로 두서없이 맺었던 것 같다.

고향을 위해 또 그 아름답고 수려했던 벽류정을 위해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기는 한 것인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리고 다짐한다. 뜻이 있는 곳에 반드시 길은 열리는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