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노금 나주시의원

연말 연초에는 대개 야심찬 계획으로 가슴조차 두근거린다. 그러면서도 언제나 게을러 스스로 세운 계획이고 다짐임에도 오늘만 내일만 하다가 구정을 넘기게 되곤 한다. 지난해의 <조선 건국의 기초를 세운 정도전> 연재 때도 그랬다.

신문사와 약속한지 아마 꽤 오랜 시간 후에 가까스로 연재를 시작할 수 있었지 싶다. 20여 년 전의 <고려를 세운 왕건과 장화왕후> 연재 때의 일을 기억할 때도 마음만 간절했지 스스로는 얼마나 뭉그적거렸는지 지금도 그때의 기억이 새롭다.

더군다나 그때는 컴퓨터가 없어서 매주 육필원고를 신문사에 전달하던 그런 때이기도 해서 더욱 힘들었던 것 같다. 신문연재는 아니었으나 <거북선을 만드신 나대용 장군> 역시 거북선하면 100% 이순신을 떠올리던 1997년 그때의 작품이다. 이 또한 일본 연수에서 돌아와 거의 3년 가까이 끙끙대던 작품이었다.

교육청 장학사를 비롯한 교장 교감 선생님들 모두 "거북선이면 이순신이지, 뭐"라는 것이 상식이던 때에 일본 박물관장의 "거북선은 너희 나주사람 나대용이 만들었다"는 확신에 찬 주장은 충격이었다. 20년 전이면 아직 글 쓰는 사람으로서 겨우 10여년의 경력에도 채 미치지 못하던 때라 여전히 둔한 솜씨인 지금보다 더더욱 서툴고 미숙하던 때였음이 분명하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이야기는 언제나 진리이다.

20여 년 전 그때의 다짐이 기억난다. 이토록 훌륭한 나주의 역사와 자산인 조상들의 이야기를 부족한 나부터라도 먼저 시작해 놓고 싶었다. 그러면 그다음엔 나보다 훨씬 훌륭한 역량의 예술인들이 다양한 장르를 통해서 이 귀한 분들의 이야기를 동화로 연극으로 소설로 노래 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과연 나의 믿음은 틀리지 않아 왕건의 부인이며 고려의 2대왕인 혜종의 어머니인 장화왕후는 수준 높은 오페라로 나주에서 공연을 할 수 있었다. 또 왕건을 다룬 많은 드라마에서도 나주 여인 장화왕후의 존재감을 확실히 부각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대용 장군 역시 이순신을 다룬 각종 드라마나 영화에서 그저 지나가는 한 사람이 아닌 거북선을 만든 나주사람 나대용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음이 지금도 뿌듯한 것이다. <정도전>이라는 분이야 조선을 건국한 이로 오래전부터 많은 분야에서 하도 많이 다룬 분이라서 그 자리매김이 너무나 확실한 인물이긴 하다.

그러나 나는 그의 사상, 백성이 하늘이고 군주는 오히려 가벼우며 왕은 백성을 위해 수고로이 근정전에서 일을 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이 모두 내가 사는 이 땅 생명의 땅 나주에서 비롯되었던 것임을 알리고 싶었다. 고려 말 벼슬아치로 조정 권력의 헤게모니 싸움에서 상처 입어 귀양 온 그였다.

그러나 그를 따뜻이 품어주고 오로지 백성이 하늘인 새로운 나라 조선을 잉태한 혁명가로 우뚝 세운 나주의 지식인들과 나주 사람들의 이야기는 반드시 우리 모두가 가슴에 새기고 길이 후손에게 교훈해야 할 역사라고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주 역사 중에는 어찌 이리 귀하신 인물들이 많을까?

짧은 글재주이지만 조선의 풍운아 백호 임제 선생이나 한글학자 신숙주 그리고 김천일 장군 같은 분들은 내 평생에 꼭 한번 작품 안에서 오롯이 모셔보고 싶은 분들이다. 이 분들의 호쾌한 사상과 나라와 백성을 위한 구국의 일생을 그려 보노라면 늘 답답해서 불만이던 필력이 조금은 시원스럽게 다듬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 것이다.

사실 최부 선생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그가 나주 동강 사람이라는 정도만 들어 알고 있었다. 그가 쓴 표해록은 부친상을 당하여 제주에서 나주로 오다가 풍랑을 만나 명나라까지 표류를 하는 등의 고난 속에서도 40명 일행 모두 조선으로 귀환 할 수 있기까지의 이야기를 그린 일종의 해양 문학서인 셈이다.

세계 제일의 배 만드는 기술을 자랑하는 조선업의 나라 대한민국에서 즐겁게 수학여행을 가던 300명이 넘는 꽃다운 어린 생명들이 그대로 차디찬 바닷물 속으로 가라앉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는 내내 자랑스러운 나주사람 최부를 생각 했다.

풍랑을 만나 북경에 가서도 조선 선비의 꼿꼿한 기개와 선비 정신으로 부당한 대우에는 당당히 맞섰다고 했다. 결국은 그들의 배려 속에 단 한사람의 희생자도 없이 내 나라로 돌아 올 수 있었다는 이야기는 지도자의 처신과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어떠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폭풍우가 몰아치고 배가 부서지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절망에 빠진 일행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주며 광풍이 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서 풍랑에 맞서 아랫사람들을 독려하고 부서진 배로 파도와 맞서 싸워 이긴 그는 진정한 지도자의 모델이 아닐 수 없다. 상거지 차림이 일행들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개 넘치는 그의 모습에 중국사람 그 어느 누구도 그들 일행을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고 전한다. 이는 금남 선생 최부 그의 높은 지적 안목과 엄정한 선비 정신의 덕택이었을 것이다. 그럴 리는 없겠으나 세월호 7시간의 의혹이 명쾌하게 풀린다 해도 자랑스러운 나주인 금남 최부 선생의 표해록에 대한 작업을 결코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