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노금 나주시의원

정유년 새해 더욱 간절해지는 소망은 바로 건강의 문제이다. 참으로 곱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던 이들이 꽃처럼 허무하게 삶을 마감하는 것을 보면서 더욱 간절해진 나의 기도이다.

오늘은 목포 신안비치에서 전남 여성 지도자 신년 하례식이 있는 날이다. 전남도지사 부인을 비롯하여 각 시·군의 시장 군수 부인 그리고 경제계 여성 인사와 여성 단체장들 그리고 여성의원들의 신년 인사회 자리이다.

새해 신선한 도전과 반가운 이들과의 만남이 좋아 빠짐없이 참석해 왔는데 참석여부를 묻는 공무원에게 병원진료가 겹쳐서 가지 못한다 해놓고 보니 조금은 우울해진다.

친정엄마가 분당에 사는 여동생 네 집에 한 달여간 일정으로 올라가셨다. 강원도에서 하고 있는 사업이 일 년 중 가장 바쁜 철이라 방학 때마다 분당에 홀로 남은 조카를 엄마가 돌봐주며 학원을 보내곤 해온지가 벌써 여러 해가 되어간다.

못난 큰딸이 제 몸 하나를 건사하지 못해 아픈 치레를 자주 하다 보니 이런 일이 있을 때 마다 팔십 오세의 늙은 엄마는 딸의 먹거리 준비를 위해 며칠간 숨 가쁘게 바쁘셔야 했다. 덕분에 아픈 딸의 식탁에는 엄마가 준비해놓고 가신 반찬으로 눈물겨울 수밖에 없다. 이처럼 자식들을 위한 친정엄마의 몸부림은 평생토록 새벽 4시 이전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찬바람이 매서워도 새벽예배가 끝나면 5분 거리인 당신의 아파트에 바로 가시지를 못하고 자식들이 밟고 지나침직한 나주 온 거리를 당신의 피눈물 같은 기도로 물들이시며 절대자에게 드리는 탄원이 하늘에 닿았음일까? 아주 조금씩이나마 절망스럽던 기력이 회복이 되어가는 듯도 싶다. 그리고 예전처럼 걸을 수 있을까 싶던 걸음걸이에도 미세하나마 힘이 붙고 손가락 마디마디도 감각이 살아남을 느낀다.

자식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는 일념에 팔십이 진즉 넘은 고령임에도 치열한 운동으로 당신의 건강을 챙기시는 분이다. 엄마를 볼 때면 그 장하고 질긴 모정에 대해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모두가 말하는 인생 백세시대를 살아 갈 때 어떤 정신자세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를 많이 생각하게 된다.

우리 인생을 100세로 보고 4막으로 나누어 본다면 이제 나이 육십에 들어서는 나는 인생 3막의 중간 지점쯤을 지나고 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예전 같으면 팔십을 기준으로 인생을 3막으로 나누었던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이제 100세 시대가 되다보니 인생을 4막으로 나누는 것에 심정적으로 동의를 하는 것 같다.

배움의 1막, 채움의 2막을 지나 이제 나눔의 3막을 보낼 즈음 딸아이 둘이 짝을 만나 셋, 둘의 손주를 나았다. 두 딸을 기르면서 딸아이들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해 온 이야기가 있었다. 음악과 미술을 전공한 딸들에게 너희가 공부한 것은 반드시 사회화 경제화 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결혼은 서른 넘기 전에 신앙의 가문에 믿음 좋은 남자를 만나, 자녀는 반드시 둘 이상을 낳아 길러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입 밖으로 내어 말은 안했지만 당연히 그 자녀들은 모두 엄마가 길러주겠다는 철석같은 약속을 스스로에게 했었다. 순종적인 딸들은 한 가지 조항도 엄마의 바람을 어기지 않고 모든 약속을 잘 지켜주었다. 허나 정작 어미인 나는 건강의 덫에 걸려 손주들을 길러주기는커녕 단 한명의 손주도 안아주지 못하는 사이에 다섯 명의 아이들이 나고 자랐다. 고생한 딸들과 손주들을 볼 때 미안함과 쓸쓸함이 얼마나 큰지 모른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은 우리 모두의 소망이요 간절한 바람일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오래 사는 욕심보다는 사는 동안 건강하고 가족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는 아주 작은 소망으로 바뀌었다. 오래전 내가 설계했던 인생 3막까지는 하고 싶었던 공부나 사회활동을 마음껏 하고 인생 4막을 맞이하는 거였다.

인생 4막의 설계는 작고 소박한 것이었다. 마음껏 베풀고 나누며 주름진 늙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그런 것이었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가서 그저 함께 울고 웃으며 함께 오래도록 있어주는 그런 삶이었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 그곳이 상가에 가서 하루 종일 함께 울어주는 위로의 자리이던지 병든 외로운 환자를 남몰래 위로하는 그런 문안의 자리든지 아주 작고 소박한 봉사를 꿈꾸며 흐뭇했었다. 

나이 팔십 즈음 돼서 이렇게 살 수만 있다면 참 보람될 것도 같았다. 그러나 지금 우선은 육십의 나이에 들어서면서 발목 잡힌 건강을 위해 부지런히 노력해서 건강을 되찾아야겠다. 불혹, 지천명, 이순을 지나 이제 고희, 희수, 미수, 상수, 시대가 아닌가? 인생 3막에서 덫에 걸렸던 건강이지만 친정엄마처럼 인생4막에서도 더욱 당당해지기 위해 다시 한 번 마음을 가다듬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