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노금 나주시의원

완행열차를 타고 노란 단풍잎으로 물들어가는 가을속에서 안성현을 만나고 왔다. 나주를 지나 화순역에서 벌교 보성여관까지의 반나절도 채 못 되는 일정이었다. 오십 중반부터 육십 중반까지 열 일곱 명의 여성들이 의기투합하여 도대체 관광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보자고 계획한 여행이었다.

벌교의 보성여관은 소설가 조정래 선생의 태백산맥의 주 무대가 되는 여관으로 소설에서처럼 1935년에 건립된 이래 혼돈과 역동의 한국의 근,현대를 겪어내며 낡고 초라하지만 근대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거기에 봄,여름,가을,겨울 그림처럼 곱게 한복을 입고 일하는 여인 김성춘 매니저가 있다. 여느 호텔처럼 객실을 관리하고 까페를 운영하면서 자신의 고향 벌교와 그 고향의 노래 <부용산>을 부르며 보성을 알리는 그녀는 여리지만 사람을 강하게 끄는 힘이 있었고 아름다웠다. 내가 느낀 한사람의 힘을 자주 역설하다 보면 누구나 그 곳 보성여관에 가서 그 사람을 만나고 싶어진다고 했다.

늦은 오후 세상 두려울 것 없는 육십 대 여인들이 “어디한번 보자”며 들이닥쳤음에도 조금치의 흔들림 없이 자신의 고향을 자랑하고 <부용산>을 노래할 때 왁자지껄하던 우리 일행은 고요히 눈을 감고 그녀의 노래에 빠져 들었다.

사랑했던 여동생을 폐병으로 잃고 난 애달픈 마음을 담은 벌교출신 박기동 선생의 시에 나주 남평 출신 안성현 선생의 작곡으로도 널리 알려졌는데 두 분은 당시 목포 항도여중의 국어, 음악 교사였다고 한다.

이 노래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의 정서와 맞아 떨어져 너무나 많은 이들에게 불렸다. 그리고 전쟁 당시 수많은 빨치산들이 고향을 그리며 애끓는 마음으로 구슬픈 가락을 노래했다고 했다.

때문에 박기동 선생은 빨갱이로 몰려서 호주 머나먼 이국땅까지 내몰려야 했고, 안성현 선생 역시 자신과 사촌간인 안막의 아내인 무용가 최승희의 공연을 보러 평양에 갔다가 6. 25가 터져 못 내려오자 월북자로 낙인이 찍혔다고 했다.

자진 월북이 아니라 전쟁 통에 못 내려온 억북자 임에도 그러한 연유로 부용산 이라는 노래는 50년 넘게 금지곡 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아픈 사연은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 우리의 가슴을 아리게 했다.

나주 남평 출신 안성현 이라는 이름....그랬다. 나의 가슴을 시리도록 먹먹하게 한 이름 안성현...,무엇 때문에 내가 그토록 여러번 많은 이들을 모시고 없는 시간 쪼개어 그 곳 벌교까지 가야 했던가에 대한 명쾌한 답을 준 이름이 바로 안성현 이라는 이름이었던 것이다.

나는 왜 안성현의 <부용산> 이라는 노래를 그곳 보성 별교까지 가서 들어야 했으며 나주사람이 아닌 벌교여인에게 또 다른 안성현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라는 노래를 들어야 했을까?  그동안 우리가 불러왔던 동요가 아닌 똑같은 소월의 시이지만 애잔하고 서정성 넘치는 또 다른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역시 해방과 전쟁 뒤 당시 상황과 어우러져 많은 이 들에게 불려졌지만 그러한 사정으로 인해 묻혀버린 노래가 된 것이다.

이제 안성현은 다시 부활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일은 이제 우리 후손들의 몫이 된 것이다. 이제 나주에서도 안성현을 기리는 수준 높은 현대음악제가 열린다니 참으로 반갑고 고마운 마음이다. 음악에 미친 남자 뮤지크바움 조기홍 사장의 몸부림의 결실로 벌써 5회째란다.

피아노에 밝은 나주의 미래를 페인팅한 새로운 시도로 길거리에서 자유롭게 연주하는 새로운 음악적 시도도 신선하다. 안성현 현대 음악제가 부디 수준 높은 문화예술을 갈망하는 나주인의 갈증을 풀어주고 미래의 나주를 열어줄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관광을 떠올릴 때 수천 수억의 비용을 들여 터를 닦고 건물을 세우고 하는 등의 생각을 먼저 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 그러나 침대 하나 없는 허름한 다다미방 여관에도 투숙객은 늘어나고 있단다. 퇴색한 나무판자의 작은 까페에도 지역민은 물론 외지의 지식인들로 보이는 고급 손님은 계속 들고 나고 있었다.

일행들의 표정은 몇 시간 전의 마냥 들뜬 표정만은 아니었다. 오천 원이나 되는 차를 마시면서도 황송했고 비싼 벌교의 꼬막정식을 먹고도 조금도 아깝지 않은 비용이었다. 흔들리는 완행열차에 몸을 맡기고 돌아오는 길에 고군분투하고 있는 나주관광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