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 만해의 속내와 그의 날들을 복원하다”

《만해, 그날들》은 1879년부터 1944년까지 조선독립운동사, 근대 문학사, 근대 불교사에 큰 족적을 남겼던 만해 한용운의 65년 삶과 역사를 낱낱이 헤집은 평전 격의 책이다. 평전이긴 하지만 3인칭 위인전에 가까운 보통의 평전들과는 달리 만해 스스로 자신의 삶을 고백하는 듯 ‘나는 … …’의 1인칭 시점 문장이라서 받아들여지는 감도가 다르다.

이 책에는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로 이어지는 과정의 정치사회적 격동기의 지층들이 압축적으로 그려져 있다. 러일전쟁과 청일전쟁 당시 조선의 내부사정, 한일합병 전후의 속사정, 손기정 선수 일장기 말소사건, 사찰령, 만해 피격사건, 동학운동, 취처(娶妻)논쟁, 3.1운동 전후의 사정 등이 만해 스님의 눈을 통해 박진감 있게 묘사됐다.

책은 일제강점기, 살아남으려는 온갖 방편이 와글거리는 속에서 선사(禪師)들은 맹렬한 화두 참구를 통해 세상을 관통하는 가파른 길을 찾아냈다. 그 가운데 만해 한용운 스님이 있었다. 그는 조선불교의 개혁을 역설했고, 신사조(新思潮)를 수용했으며, 대처제(帶妻制)도 옹호했다.

해방 이후 반일과 반공이 한국사회의 주도적 이념이 되면서, 불교개혁론은 친일의 혐의를 뒤집어썼다. 일제잔재 청산이라는 명분은 이승만 정권의 이해관계와 맞물려 강렬했다. 또한 1950년대 중반부터 진행된 불교정화운동은 쓸어버려야 할 것과 남겨둬야 할 것을 가릴 틈도 없이 밀어닥쳤다. 결국 한국불교사에서 만해 스님의 족적은 일정부분 묻어두어야 하는 상황이 빚어졌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사람들은 그를 두고 ‘선사’나 ‘스님’ 보다는 ‘선생’으로 부르는 것을 편해했다. 그는 우리에게 항일독립투사나, 민족대표 33인, 혹은 ‘님의 침묵’을 쓴 시인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그의 적극적인 정치사회적 활동은 선사로서의 모습을 희미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저자는 말한다. 그에게라면 물을 수 있을 것 같다고. 그에게라면 어떤 대답이라도 들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저자는 이 책의 후기에서 “만해 스님의 평전을 쓰려고 했다. 하지만 이 책은 흔한 평전의 형식을 갖추지는 않았다. 모든 사실은 진술되는 순간 선택되고, 선택받는 행위에는 이미 평(評)이 내재 될 수밖에 없다고”고 말한다.

이어 저자는 “‘평전’이라는 발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개인의 일생에 대하여 평론을 곁들여 적은 전기라고 나와 있다. 또 ‘평론’이란, ”사물의 가치, 우열, 선악 따위를 평가하여 논함, 또는 그런 글이라 고 적혀 있다. 평(評)이라는 한 글자에 짓이겨져 나는 오랫동안 힘들었다. 모든 진실은 끝내 사실의 진실이 되지 못하고 가치의 진실이 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진술하는 행위는 그 자체에 이미 진술자의 평가가 내재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따라는 흔히 보는 평전 형식을 서술자의 주관성이 이중으로 주입된 과도한 것이라고밖에 달리 생각할 길이 없다. 결국 나는 평을 포기했다. 어쩌면 나는 실패했는지도 모른다“라고 토로한다.

평을 포기한 그는 만해가 살던 그 시절로 돌아가 만해의 눈과 귀로 서술해 나갔다. 단순히 자료를 제시하고 평을 하는 기존의 딱딱한 평전류와는 달리 한 사람의 생애가 담긴 전기소설을 읽는 것 같은 재미를 제공한다. 이 같은 글쓰기 형식을 취한 이유에 대해 저저는 말한다. “나는 평을 강당해낼 만치 담대하지 못하다는 것을 스스로 알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기껏해야 누군가의 삶 속으로 깊숙이 자맥질해 들어가, 그의 눈과 귀로 세상을 훑어보거나 나눠보는 것밖에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마음먹고 난 다음에 나는 편안해졌다.”라고.

저자는 역사를 밖에서 관전하지 않는다. 만해의 내면으로 들어가 있다. 연대기적 기술방식을 버린 저자는, 깊은 지층을 헤집다가 마침내 그 지층 속에 마묻혀 버린 사람처럼 보인다. 만해의 생애를 철학자의 시각에서 살펴본 저작물을 기존에 없었다. 평전 형식으로 몇 종의 도서가 출간되었지만, 대개 자료를 소개하고 평가한 역사적 서술물들이었다. 적어도 만해의 눈으로 함께 그의 날들을 보고자 한다면, 이 책이 유일하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