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 시인(화가)

공작 암 수컷 한 쌍을 기르는 우리 안에 다른 한 쌍을 넣어주면 수놈 끼리 피투성이가 되도록 싸운다 한다. 그러나 비가 오거나 밤이슬이 내리면 죽기 살기로 싸우던 두 라이벌은 암놈들만 침실에 들여보내고 문전에서 밤샘을 한다는 것.

새들의 입장이 되어 그들의 일을 물어볼 수는 없다. 허나 깃이 빠지고 살점이 찢기고 피가 나도록 싸우다가도 합의가 필요하면 양보와 아량으로 난국을 열어가는 그들의 지혜가 부럽다.

어둠이 짙을수록 불빛은 밝다는데

지난 세월 나주는 걱정스런 고을이었다. 무엇 땜에 이전투구로 날밤 새워야 했는지 생각할수록 딱하고 허탈한 세월이었다. 상대를 향해 조그마한 배려만 있었어도 지역민을 불모로 그리할 수는 없었다. 어느 세상에나 비판과 견제는 필요하다. 그러나 세상의 이목 따위는 아랑곳없이 파당이나 짓고 제 밥상 위에 반찬 타박이나 하는 소인배적 멱살잡이는 그저 추할뿐이다. 심각히도 지역에 대승적 안목이 빠진 탓이다. 정치도 행정도 이제는 사람살이에 초점을 맞추어 꽃피고 열매 맺게 해야 한다. 어깨동무로 이마를 맞대면 세상은 벌써부터 파라다이스인 것을.

상대에게 다가갈 때 무엇을 도울 것인가부터 작심하면 상대는 적이 아니라 동지이며 배역이 다른 식구가 된다. 상생은 문화이며 문화의 힘은 삶을 넘실거리게 하는 에너지이자 ‘추진력’이다. 함께 나눌수록 즐거움을 키우는 필요충분적 체험이 바로 문화임에야.

우리가 지역에서 나누는 문화의 매력은 향유성과 항구성에 있다. 우리 나주에 필요한 화합과 단결과 협동이야말로 이제는 행동으로 보여야 할 때다.

창 밖 세상에는 ‘웰빙’의 물결이 자못 거세다. 먹는 것, 입는 것, 주거공간까지 웰빙 일색으로 굽이친다. 삶의 행복이 최우선인 웰빙은 문화 본연의 의미인 네오 웰빙(Neo well-being)운동에서 출발했다. 몸과 마음에 대한 웰빙의 바람은 패스트푸드보다는 유기농야채와 먹거리를 찾고 정서적 안정을 위해 문화 행사장 내지는 자연 속으로 주말여행을 떠난다.

영국의 대처 수상은 딸 캐럴이 런던에서 방 두 칸짜리 집으로 이사했을 때 도배와 페인트칠을 도운 적이 있었다. 그때 했다는 대처의 말은 인상적이다. “정치하기보다는 도배질이 더 어려웠다. 하지만 도배를 하면서 느꼈던 손가락 끝의 행복은 정치를 해서는 얻어낼 수 없는 것이었다.” 스미듯이 웰빙의 의미가 느껴지는 말이다.

우리의 생활 문화의 하나인 웰빙은 즐거운 삶을 위한 노래 그 자체이거나 누군가가 ‘왜 사느냐’고 물으면 조금 웃어 보이며 천천히 다가서는 여유 같은 게 아닐까. 웰빙과 함께 최근 상생의 문화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것은 대립과 갈등 대신 화합과 협력이라야 신춘의 초목들처럼 움이 터서 우거질 수가 있다는 의미이다.

요컨대 정치도 사람의 일이고 최상의 정치는 그 자체로 우리네 삶을 고양시켜야 진정한 의미의 웰빙이다. 어느 경우에도 반목과 대립은 일을 맡긴 이들의 주문사항이 아니다. 지금 세상이 어렵다. 세계적 구도와 맞물린 이들 어려움은 저점 없이 추락하면서 빼도 박도 못할 만큼 중첩되어 있다. 공장은 가동을 멈추고 들녘에는 희망가 대신 한숨소리만 커져간다. 졸업해도 갈 곳이 없는 청년 백수와 그로 인해 넘쳐나는 신용불량자가 내수기반이 불안한 사회현실을 더더욱 어둡게 한다. 이 시점에서 ‘상생과 화합’ 이 아니면 어찌 민생을 일으키고 지역의 청사진을 현실에 제시할 수 있을까.

어둠이 짙을수록 불빛은 밝다. 길라잡이 삼은 불빛으로 우리는 먼 길 가는 도반이다. 평온할 때는 싸우더라도 어려울 때는 다가가고 뭉치고 등 두드려 주는 사회, 그게 우리가 꿈꾸는 세상의 상생과 웰빙이 아닐까. 대결은 정정당당해야 한다. 그 다음은 사심 없이 협력해야 한다. 小를 희생하고 大를 살리는 대승적 사회란 상대를 돌보며 넘어진 자를 손잡아 일으키는 사회이다. 금성산이 굽어보는 나주평야는 지평선을 울타리 삼아 넉넉하게 누워있다. 역사가 볼만한 나주는 생활환경 또한 어느 고을보다 풍요롭고 아름답다. 이 모두가 진정 후대에 넘겨야 할 나주만의 자산이 아닌가.

풍성한 볼거리에 마땅한 사람살이

생태하천으로 거듭난 영산강은 지난날의 악취 대신 부푼 꿈을 적시며 흐르고 있다. 영산강은 병색이 짙은 멍든 물빛이었다. 이제 거듭난 강은 푸른 생명의 요람으로 바뀌고 있다. 물빛이 맑아지면서 떠났거나 사라진 생태生態가 돌아오고 기약 없이 서 있던 영산강 등대에도 불이 켜지고 친자연이 넉넉한 흐름 위에 펼쳐질 것이다. 이리되면 나주는 사철노래가 가득한 웰빙성지가 아닐까.

나주는 이름부터가 비단길로 안내하는 산자수명의 실크로드다. 여기를 봐도 저기를 봐도 볼거리가 풍성하고 사람살이가 마땅한 복거(卜居)의 땅이다. 혁신 도시가 들어서고 금성산 정상을 열고 떠오르던 태양이 영산강의 푸른 물길을 타고 흐를 것이다. 고향에 돌아갈 나이가 되어 나의 행복감은 잠들지 않는 하늘의 별무리처럼 반짝인다. 어려운 때에 영산강은 화합과 상생을 가르치는 물길이었다. 그 흐름이 낙원을 여는 날, 나는 지팡이를 세워두고 구진포 돌아가는 물길을 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