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 시인(화가)

3월로 접어들면서, 알아보게 날씨가 포근해지고 하늘이 많이도 편안해졌습니다. 이런 때에 비단고을 ‘나주’를 생각하는 일은 상상만으로도 즐겁습니다.

인물 별자리, 이 나라를 뒤 덮을 만

지리적으로 나주에 닿으려면 ‘호남’에 대한 몇 가지의 관심거리부터 짚어가야 합니다. 백두산에서 척추 모양으로 뻗어 내린 백두대간은 남서방향으로 흐름을 잡은 갈비뼈 형상의 산맥들 중 태백산의 거대한 근육뭉치가 서남 방향으로 흐르다가 전주, 내장산, 광주, 나주에 오기까지의 지리적 경위, 충청남도 일부와 전라남북도를 아우른 경역으로서의 자연 지리적 위치, 그리고 영남(嶺南)이 고개의 남쪽이듯 호남(湖南)이 ‘호수’의 남쪽이라 했을 때의 특정지형지물로써의 호수의 지칭 등등 나주를 자리매김하는 부분 부분을 짚어내고 영산강 유역의 중심고을인 나주가 어떻게 소경(小京)이 되었고 경기나 서울지향인 문화가 형성되었는가를 살피는 일입니다.

호남문화는 다른 지역의 문화와는 달리 자연적, 역사적 조건이 이율배반적으로 형성되었습니다. 그런 때문인지 자연적 조건인 바다와 평야지대는 더운 짐 나는 풍요의 현장이지만 그 때문에 목민관이 저지른 가렴주구에 백성은 늘상 시달려야 했고 역사적 패배 또한 운명처럼 겪어야 했습니다.

나주가 배출한 인물들로 진입합시다. 고려태조 왕건의 두 번째 부인인 장화황후가 나주에 기반을 둔 오(吳)씨 처녀였다는 것과 황자 무(武)가 태조의 뒤를 이은 2대 임금 혜종이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주의 고을적 자부심은 분명해집니다. 이어지는 인물 별자리의 광채는 줄줄이 사탕처럼 이어지고 이 나라 전역을 뒤덮고도 남을만합니다.

김방경 장군이 홍다구의 모함으로 고문 받고 귀양을 가자 벼슬살이에 미련을 접고 환고향했던 정가신, 이 나라 최초의 해군참모총장이며 이성계와 위화도 회군은 단행했지만 조선조 건국에는 동조하지 않았던 지조의 명장 정지, 한글창제에서 보급에서 주요 서적의 찬수, 조선조 문물제도 등을 완비한 외교의 달인 신숙주, 성종의 명을 받아 생사를 넘어 중국 땅에서의 8,000리 길 견문기를 《금남표해록》에 담아낸 최부, 임란 발발에 창의기병을 제의하고 출병하여 여러 차례 이겼지만 대공세를 감행한 적에게 중과부적으로  패하고 진주성에서 아들 상건과 남강에 몸을 던진 대표적인 의병장 김천일, 거북선을 건조하여 이순신의 승리를 견인하는데 절대적인 공을 세운 탁월한 조선기술자 나대용, 담대한 지략가이며 외교가로 조선의 사신을 자청하여 청 태조의  콧대를 여지없이 꺾어놓은 정충신, 나주의 최고의 광채, 아니 조선 최고의 자존심이자 문호인 백호 임제(白湖 林悌) 등등. 특히나 임제 선생은 비록 39 세로 단명했지만 동서붕당을 개탄하고 속세의 공명을 비웃었던 대륙적 기상의 풍류 남으로 이 나라 최고의 멋과 정한을 지어내기에 충분했습니다.

까마귀도 내 땅 까마귀, 설렘을 느낍니다

자, 이쯤에서 나주를 다시 생각합니다. 나주는 광주와 목포를 연결하는 몸통 쯤 된다 하겠고 포목자락처럼 흘러내린 영산강 물줄기가 빚어놓은 그림 같은 고을입니다. 그리스인들이 올림퍼스 산을 우주의 중심으로 생각했다는 데 나주인 들에게도 그 같은 자리에 금성산이 있습니다. 수구초심 고향을 그리는 심성으로 살아가지만 나주는 저에게 반드시 그 이름값 할 날을 보여줄 것입니다.

천만리 떨어진 것도 아닌, 인근 지역 광주에 살고 있지만 외방지기가 되면 몸보다 마음이 먼저 차갑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까마귀도 내 땅 까마귀, 늘상 고향타령을 몸에 입에 달고 다니면서 어느 새 나주 땅에서 명멸해간 인물별자리 하나하나를 가만 가만 불러봅니다. 금세 가슴이 따뜻해지고 사춘기 같은 설렘을 느낍니다. 바로 그때 하늘에서 내려온 내 가슴의 별 하나, 조선 5000년의 최고 멋장이 백호 임제 선생입니다. 나는 지금 선생과 함께 금강팔정(錦江八亭)을 영산강의 느린 유속으로 소요합니다.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