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 시인(화가)

보길도를 찾는 길에‘띄운다’,‘떠서 가다’등의 어휘가 전광석화처럼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오며 가며 여러 풍경이 뱃길과 맞 바뀌기 때문일까. 해남 땅 끝 마을에서 보길도까지의 뱃길은 1시간 남짓의 거리. 물면에 오른 배는 느린 것인지 빠른 것인지 연신 14노트의 속력으로 바다의 흰 물살을 밀어내며 연신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탈것은 앞으로 나아가는 데 머리는 자꾸만 지나간 시간을 되감기 일쑤다. 주위 사방이 궁금하여 배의 상판에 올랐다. 배의 고물로부터 멀어지면서 점 점 점 지워져 가는 물거품들을 멀리까지 바라본다. 물거품은 계속 일어났다가 계속 지워져 간다. 왔다가 떠나가는 지상의 존재들이 모두가 저 같겠다 싶을 때 바람의 삽상함이 스미듯이 젖어온다.

사전에서 찾아본 ‘띄우다’의 풀이는 ‘(물이나 공중에)뜨게 하다’로 설명한다. 나를 실었지만 바다의 넓은 품을 추진해 나아가는 배가 왜소하다 못해 가냘프게 보였다. 가냘픈 선체의 상판에서 주위 사방을 젠 체하며 똘람거리는 인간들은 얼마나 애잔한가. 그 애잔함마저 잊어먹은 채 물이나 공기를 부려 이 질펀한 바다 위를 떠서 또 다른 공간으로 이동한다는 사실 자체가 황홀하다 못해 감격스럽다. 상체를 좌우로 흔들다가 하늘을 본다. 떠있는 몇 점 구름을 추월하며 여객기 한 대가 지나간다. 숫제 가는지 오는지조차 모르는 구름의 느릿한 여유가 여객기의 꽁무니를 감상하는 한가한 구경꾼만 같다. 구름도 선박도 비행기도 물이나 공기에 몸을 띄워 부지런히 제 길을 가는 길손들이다.

멀리 가까이에 섬들이 떠있을 뿐 바다는 심각히도 명상 중이다. 정지용 시인이 김영랑 시인을 찾았던 길에 이곳 남해의 섬들을 보며‘물오리나 잠방대는 둠벙’이라 했을 때의 그 물오리들이 지금 물면에 떠있기 위해 열심히 물 갈퀴질하고 있다. 바다라고는 그림으로나 감상하며 성장했을 충청도 옥천골의 한 사내에게 남해바다의 섬들은 실개천에 떠있는 물오리로 비쳐진 모양이다.

운명의 눈금을 셈하는지 붙박인 섬들이 저마다 침묵할 때 중천의 태양이 너그럽게 삼라만상을 내려다보고 있다. 태양 아래 섬들은 조을고 갑판 위에 선 우리는 누군가에게 모자를 흔들며 산타루치아를 부르며 목적지로 이동하는 낭만 가득한 바람들이다. 문득 바라보이는 방향이나 지점에서 태양이나 달의 운행이 한결같다면 더 큰 계획을 향하여 또 다른 지점으로 이동하는 때문일까.

살아가면서 나누는 세상 얘기는 우리네 현실과는 동떨어진 딴 세상의 것들이기 십상이다. 선박이든 비행기든 구름이든 일월이든 떠서 간다는 사실 하나가 이리도 황홀한 설렘일까. 배가 얼마간의 숨고르기를 한 후 보길도에 접안했다. 우리는 이곳에서 부여받은 시간만큼을 구경하고 날밤 새워 어울리고…… 그러다가 다시금 돌아가는 배에 오를 것이다. 생을 얻는 일은 생을 버리는 일. 쌍방에서 보면 모든 것이 반반이다. 발자국처럼 찍힌 것들을 연신 지워내면서 우리는 선박처럼 어딘가를 떠가면서 계속해서 새로워질 것이다. 석학이셨던 박종홍(朴鐘鴻) 선생께서 ‘죽음은 생의 마감이 아니라 생의 한 과정’이라 일갈하시던 반세기 전의 모습이 어제처럼 선연하다.

가라앉지 않으려면 계속해서 떠있어야 한다. 우리는 가라앉지 않으려고 지금 접안할 또 다른 기항지를 궁리하며 나아간다. 이 오랜 세월 저 많은 섬들이 바다에 빠져 죽지 않고 여직 떠있을 수 있었음은 가라앉지 않으려는 그 목숨 건 발길질에 있었다. 섬 땅에 착지한 우리는 섬 속의 섬이 되었다. 우리는 꿈꾸는 푸른 섬처럼 어딘가에 몸을 띄워 나아가는 유체이동을 궁리하고 있다.